'미역국을 끓이며' - 3년의 기록
오늘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그리고 특별하게도 둘째 딸아이의 생일과 중복된 겹경사의 날이기도 합니다.
아내와는 결혼한지 올해로 벌써 14년째를 맞이합니다.
아내의 생일날에 대부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준비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또한 아내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 선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내의 생일날이면 딱 한가지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미역국입니다.
미역국 만큼은 새벽에 일어나 제 손으로 끓여 한 숟가락이라도 아내에게 먹이고 출근을 합니다.
오늘로써 10년 정도, 한 10번 정도는 그렇게 한 듯 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어제 저녁 불려 놓은 미역을 살짝 데친 후,
준비 해 놓았던 소고기와 함께 넣고 끓였습니다.
매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역국은 쉬운 듯 어렵습니다.
맛이 나는 듯 하다가도 먹어 보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끓였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제 손으로 모든 것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조금 부족한 듯 싶어도
쌀밥과 함께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최대한 정갈하게 밥상을 차립니다.
오늘따라 잘 된 하얀 쌀밥을 밥그릇에 담으며,
마음 속으로 한마디 해 봅니다.
‘나랑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자.’
5시 50분이 다 되어 생일밥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출근시간이 가까운 지라 마음이 바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잠에 빠져있는 아내를 깨웁니다.
부시시 일어나는 아내를 이끌어 식탁으로 데리고 나옵니다.
아내가 미역국물 한 숟가락을 뜹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물어 봅니다.
"어때, 맛있어?"
아내의 한마디.
"응, 맛있어."
마음이 푹 놓입니다.
다행입니다.
이것으로 저의 소박한 미션은 제대로 완수된 듯 합니다.
항상 모자라고 부족한 남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듯 아내를 위해 몸소 준비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는 것에,
스스로의 만족과 위안이 됩니다.
이 때문에 매년 아내의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이는가 봅니다.
미역국을 끓이며
긴 미역줄기를 먹기 좋게 자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잘린 줄기만큼 우리들의 시간이 잘려 나갈 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기우 때문이었습니다.
삶의 시간들이 영원하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미역줄기만큼이라도 제대로 된 삶의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물에 한껏 부풀려진 미역줄기만큼 행복도 부풀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미역국은 제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이 작은 기쁨이 있기 때문에,
내년 이맘때 저는 다시 미역국을 끓이고 있을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애정을 가득 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2009년 9월 15일 -----
큰 냄비의 뚜껑을 열어봅니다. 잠들기 전 물에 담가 두었던 미역이 많이 불려져 있습니다. 그 미역을 꺼내 물에 세 번 정도 깨끗이 씻과 물기를 빼낸 후 한쪽에 놓아둡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놓았던 소고기 한덩이를 볶기 시작합니다. 금새 부엌은 비릿한 소고기 냄새로 가득찹니다. 얼추 익었음을 확인하고 먹기 좋을 정도로 자릅니다. 그 후 미역을 넣고, 들기름을 조금 넣은 후 다시 볶습니다.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미역, 소고기 냄새가 어우러져 입맛을 자극합니다. 3,4분 정도 볶은 후 이번에는 찬물을 붓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고 본격적으로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옆에선 압력밥솥이 뜨거운 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흰 쌀밥도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이 밥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만드는 밥입니다. 엄마를 위해서 말이죠.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니 처음에 투명했던 국물이 이제는 뿌옇게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살짝 맛을 봅니다. 오~ 완전 맹탕...입니다. 국간장을 2 숟가락 정도 넣습니다. 그리고 소금도 조금 넣어 봅니다. 조금씩 미역국 본연의 맛이 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끓이면 지금보다 더 진한 국물맛을 낼 것입니다.
오늘(금요일)은 1년에 하루 밖에 없는 아내의 생일입니다.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그리고 그 전에도 매년 똑같이 미역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아들이 저 대신 아내의 생일 밥을 지었기 때문이죠. 실은 어젯밤 엄마의 생일선물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아들에게 대신 밥을 하면 어떻겠냐고 살짝 꼬드겼습니다(?). 그러자 흔쾌히 좋다고 하더군요. 고민 해결과 동시에 자신의 용돈까지 아낄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으니까요. ^^;;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일어난 아들에게 쌀의 양, 쌀 씻는 법 그리고 물 양 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손에 물 묻는 것조차 싫어하던 녀석이 나름 열심히 하더군요. ‘이렇게 하면 돼?’하며 질문까지 하고요. 아들 덕분에 새벽의 부엌이 적적치 않았습니다. 매년 혼자했던 아내 생일날의 아침 식사준비가 아들과 함께 하니 더욱 즐거웠습니다. ^^;;
밥상을 차릴 쯤 아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딸과 조카까지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았습니다. 압력밥솥의 뚜껑을 열자 눈부실 정도로 하얀 쌀밥이 활짝 웃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밥과 미역국을 담습니다. 최대한 이쁘게 담고자 나름 신경쓰면서 말이죠. 저도 식탁에 앉아 미역국을 한 술 떠봅니다. 음...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런대로 선방은 한 맛입니다. 그렇긴 해도 어느 누구도 미역국 맛있게 끓였다며 얘기해 주진 않는군요. 쩝... 아내에게 오늘 밥은 아들이 지었노라고 이야기해주자 꽤나 감격스러워합니다. 역시 남편보단 아들이 더 좋은가 봅니다... 흑흑...
식사를 마친 후 출근을 서두릅니다. 평상시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옵니다. 혹시 늦지 않았었냐며 걱정을 해줍니다. 생각보다 길이 밀리지 않아 여유있게 도착했다고 하니 다행이라 하네요. 이런 저런 얘기 후 아내는 한 마디를 남기며 전화를 끊습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수고는 뭘... ^^;; --
----- 2011년 8월 27일 -----
다시 5년이 지났습니다.
5년 전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연년생인 딸은 이제 막 19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저희 부부 또한 올 3월 20주년 결혼 기념일을 보냈고요.
세월 참 빠릅니다. 쏜 살 같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네요.
올해도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입니다.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내는 미역국이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몇 번을 물어보고,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을 물어보았지만,
대부분 미역국이 유일한 생일 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네요.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면서 한편으로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 이만큼 살기도 어려웠을테니까요.
요즘 대형마트에서 주말 알바를 뛰는 아들이,
엄마가 가끔 인터넷으로 가방을 보는 것을 알고는 통 크게 가방 사라며 10만원을 내밉니다.
아내가 함박 웃음으로 받습니다. 아들 돈이라 그런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머니 속에 깊숙이 넣어 둔 채, 그 돈으로 가방 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왜냐고 묻자, 조용히 답합니다.
‘아들이 준 돈인데 어떻게...’
이게 엄마의 마음인가 봅니다. 남편이 주는 돈과는 확연히 무게감과 그 의미가 다른가 봅니다.
미역국은 정말 희안한 음식입니다.
처음 끓일 때는 그저 밋밋하기만 한데, 끓이면 끓일수록 그 감춰진 맛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미역에는 일정 온도 이상에서 일정 시간 이상을 끓여야만
그 봉인된 특별한 맛을 드러내는 센서(?) 같은 것이 있나 봅니다.
또한 그 시간만큼을 들여야만 만드는 사람의 애정과 정성이 그 국물 맛에 담겨지는 듯 합니다.
그래야만 미역국 본연의 숨겨진 맛이 드러나게 되도록 세팅되어 있나 봅니다.
미역국과 더불어, 꼭 같이 준비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얗디 하얀 쌀밥입니다. 쌀밥은 알다시피 백미로 만듭니다.
저희 집에서는 순수한 쌀밥을 1년에 거의 4번만 먹습니다.
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생일날이 바로 그날이죠.
다른 날에는 반드시 현미밥이나 현미에 잡곡을 섞은 현미잡곡밥을 먹습니다.
현미밥을 먹기 시작한 지도 15년 이상 된 듯 하네요.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 아토피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거의 과자나 탄산음료 그리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지 않았지만,
유치원에서 그리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그런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몸에서 아토피가 올라오고, 가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병원도 다녔지만, 차도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 식단에 변화를 주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가 현미밥이었습니다.
아, 처음 먹은 현미밥, 정말 먹기 힘들더군요. 뭐랄까요. 반모래 씹는 느낌이라 할까요?
물론 처음엔 조금만 섞고 점차 혼합비율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처음 먹는 현미는 그다지 당기는 식감, 맛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럴진대,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이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심하게 불평 안하고 열심히 먹더군요.
그 결과 아토피는 자취를 감췄고, 그 이후 우리 가족의 밥은 말하지 않아도 현미밥이 되었습니다.
현미가 익숙해지다보니, 지금은 오히려 식당에서 주는 쌀밥이 어색할 때도 있죠.
역시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쌀밥과 미역국을 차려놓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르기 전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즉흥적으로 생각났거지만, 김 가루로 아내의 흰 쌀밥 위에 하트를 만들어 봅니다.
헐 쉽지 않네요. 제대로 된 하트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거면 안 한만 못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마무리를 짓고 식구들을 부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자신의 밥을 보더니 이게 뭐냐고 묻습니다.
우물쭈물하자, 아내가 이내 알아차리고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러며 한마디 합니다.
“에구, 정말 오글거리네~”
같이 웃으며 저도 한마디 합니다.
“나도 그래~”
아들은 이 두 노인네의 엽기적(?) 행각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래 그럴땐 침묵이 답이다, 아들아.
올해 미역국을 끓이며 짧은 시간이지만 소원을 빌었습니다.
가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하면, 건강은 그다지 중요한 사안이 되지 못하지만,
일단 건강을 잃게 되면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가족 모두가 지금처럼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느끼고 누리며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미역국을 먹으며 말이죠.
그리고 내년에도 미역국을 끓이며 행복한 1년을 보낸 것에 감사하며,
다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듯 건강과 행복이 무한 반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욕심아닌 욕심을 부려봅니다.
----- 2016년 9월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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