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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Oct 06. 2016

흰머리를 통해 중년을 돌아보다

중년이란 멋진 전성기이자 행복한 마무리를 염두에 두어야 할 시기



언제부터인가 삼십 후반부터 하나 둘씩 흰머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옆머리는 물론 중간머리쪽에도 상당히 많은 흰머리가 자리를 잡았다. 한달에 한 두 번 정도 길어진 머리를 깍기 위해 미용실에 가면 항상 빠지지 않는 주인 아주머니의 멘트가 있다.


“흰머리가 많이 느셨네요.”


“그런가요?” 하며 슬쩍 웃어 넘기지만, 거울 속 씁쓸한 웃음을 짓는 내 눈가에 자글자글 지어지는 잔주름들이 지금의 내 나이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어 준다.



어제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웬지 머리 속이 가려웠다. 살짝 긁고 있는 와중에 드는 생각. 아, 또 흰머리가 나려나 보구나. 흰머리가 날 때는 머리가 가렵다고 하더니, 요즘 자꾸 머리가 가려운 이유가 이것 때문이구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보구나....


몇 년 전쯤, 미국으로 건너간 대학 친구가 휴가를 내 한국에 들어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유독 새치가 많았다. 전체 머리카락 중에 최소 1/4은 새치일 정도로 하얀 부분이 많았었다. 그런데 그날 만났던 친구의 머리는 의외로 새까멨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대학교 때보다 더욱 젊어 보였다. 어떻게 된거냐 물어보니, 그 친구 왈,


“새치에 흰머리까지 너무 늘어,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염색했다.”


그랬구나.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고는, 흰머리를 감추기 어려운 나이가 되고 말았구나. 예전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시는 어른들을 보며,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왜 일부러 머리를 염색해야만 할까.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게 아닐까. 귀찮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작위적으로 머리를 까맣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예전의 젊음을 스스로에게 느끼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염색을 이용해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이제는 나도 나이를 제법 먹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흰머리는 중년으로 접어 들었음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신체적 신호이다. 물론 스트레스나 혹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나이가 들어가면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다. 어디 흰머리 뿐이랴. 노안(老眼), 무릎 결림, 소화 장애도 대표적인 중년을 상징하는 대표적 증상이다. 인간의 신체는 태어나서 대부분 20대 중반까지만 성장하고 그 후부터는 일정기간 유지를 하다가 30대 중반을 지나가면 그때부터 조금씩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신체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다만 각고의 노력과 꾸준한 습관을 통해 최대한 늦출 수 있을 뿐.


흰머리는 감상에만 젖게 만들지만, 실제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전적으로 실감하도록 만드는 것은 상처에 대한 회복 속도이다. 20대 그리고 30대만 하더라도 손이나 발, 무릎 등에 생채기가 났을 경우 잠시 아팠다가 언제 나았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상처가 아물었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졌음을 알게 된다. 약을 먹거나 바르지 않으면 그 속도는 더욱 더디어 진다. 상처 부분에 딱지가 앉는 것도 느리고, 그 딱지가 떨어져 다시 새 살이 돋는 것 또한 매우 느리다.


지금은 기회가 없어 안하고 있지만, 몇 년전까지 매년 한 번 정도는 헌혈을 했었다. 헌혈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나와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를 대비한 사전 예비조치이기도 했다. 30대까지만 해도 헌혈을 하고 나도 몸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단지 주사기를 꼽았던 팔 주위의 통증만 조금 남아 있을 뿐 몸은 헌혈 전과 비교해 어떤 차이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름을 느낀다. 헌혈을 하고 나면 그 날은 다소 어지럼을 느낀다. 웬지 모르게 힘이 빠져 있다는 것을 몸의 반응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헌혈 후 어지럼증이나 무기력증은 빠져나간 만큼의  피의 양을 보충하기 위해 몸 안에 비축되어 있던 에너지를 비장(脾臟, 지라), 간, 골수 등의 조혈기관(造血器官)들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라 한다. 젊었을 때는 몸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일부를 주더라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중년에 접어들면 장기(臟器)들도 예전보다 성능이 많이 떨어져 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증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년은 여러 가지 다양한 신체적 이상증상들이 빼꼼이 머리를 드는 시기이자 노년으로 가는 길목의 초입에 해당된다. 싱싱하다 못해 펄떡이는 젊음들을 보노라면 부러움과 함께 가벼운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의 사고의 깊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으며, 그 넓이가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음의 매력이 행동이라면, 중년의 매력은 숙성의 맛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진정한 사고의 성숙인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인생으로 가는 두 번째 여행이 필수적이다. 가만히 앉아 나이가 듦으로 맞아지는 중년에게 지혜는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알렌 치넨<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은 따라서 각 개인간의 독특한 개성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행운을 찾기 위해 그들의 가족이 주는 안락함과 한계를 떠나는 것처럼 중년들은 개성화를 위해 사회의 금기나 확신을 버린다.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잇는 역할 전복이 일어난다. 이것은 죽음과 사악함 그리고 비극과의 대면을 의미한다.


중년은 노년, 나아가 죽음까지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아 있는 미래를 주의 깊에 관찰하고, 자신에 대한 성찰에 몰입해야만 한다. 그것이 알렌 치넨이 말하고 있는 개성화이다. 지금까지가 사회적 관계 속의 남을 고려하여 사는 삶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나를 중심에 두고, 나의 본질과 소명을 찾아가야 할 시기이다. 인생의 반 가까이가 지났지만, 어찌보면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부터이다. 멋진 전성기와 함께 행복한 마무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시기인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 최소한 멋들어진 세레모니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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