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Jun 29. 2015

김어준의 양복 이야기

균형 찾기 #11

딴지일보 총수, 『닥치고 정치』의 저자이자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김어준. 그의 다른 저서 『건투를 빈다』에 보면 꽤 유명한 양복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많이 아실테지만 그리고 조금 길긴 하지만, 그의 화법을 빌어 다시한번 들어보시죠.

백만 원짜리 양복에 꼬질꼬질한 반팔 티셔츠 받쳐 입고 배낭, 들쳐 멨다.
그날부터 4주 연속, 공원벤치에서 잤다.

    1-1. 하루 예산 5달러에 넝마 패션으로 배낭여행 하던 20대 시절 어느 여름날 오후, 파리 오페라 극장 대로변에서였다. 그날 밤 파리를 뜰 예정이었기에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어슬렁거리던 차에 쇼윈도 속 양복 한 벌이 느닷없이 시야에 꽂혔다. 세상에. 한눈에, 매료, 됐다. 그때껏 양복 소유한 적도, 그러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미 내 몸은 매장에 들어가 옷부터 집어 들고 있었다. 걸쳐봤다. 이럴 수가. 극도로, 쌈박하다. 아싸, 신난다. 그제야 태그, 확인했다. 가격, 백만 원 남짓. 허걱. 남은 예산 전부다. 집에 두고 온, 내 모든 복식의 총합보다 비싸다. 일정, 두 달이나 남았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백만 세가지. 쭈그리고 앉아, 5분간, 고민했다. 그리고, 샀다. 백만 원짜리 양복에 꼬질꼬질한 반팔 티셔츠 받쳐 입고 배낭, 들쳐 멨다. 그날부터 4주 연속, 공원벤치에서 잤다. 물론 그 양복 입고서.

    

1-2. 돌아보면, 내 인생의 소비 기준이 결정된 게, 바로 그 5분간이다. 한 푼도 없다면? 잠은, 노숙이나 밤차로 가능하겠지. 식량은, 비상 라면 겨우 일주일치. 그럼, 어떻게든 벌어야 한단 거네. 그게 가능할까? 보장된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즐거움, 흔하던가. 천만에. 옷 한 벌에 이렇게 흥분한 적, 있던가. 처음이다. 그렇다면 절약한 백만 원을 향후 두 달간 숙소와 식량에, 합리적으로 소비한다면, 그럼 지금 당장의 이 환희는, 고스란히, 보상받을 수 있는 건가. 그러게. 그럴 순 있는 건가. 이 대목에서, 주춤했다. 처음 가져본 유의 의문이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고유한 기쁨은, 이 순간이 지나면, 같은 형태와 정도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 아닌가. 누릴 수 있을 때, 그 맥시멈을, 누려야 하는 거 아닐까. 불안한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니 내가 맞서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맞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샀다. 식량은, 로마 숙소 삐끼와 부다페스트 암달러상으로 해결했다. 역시 그 양복, 입고서.

    

1-3. 미래란, 애초에, 불안한거다. 누구도 모르니까. 그 공포가 금융 시스템 탄생의 주역이다. 그거 통제코자 저금하고 펀드 사고 보험 든다. 당장의 즐거움 중 일부는 그렇게 이자율과 수익률로 계량되어 유보된다. 차후 인출될 현금으로 그 희열, 보상받으리라 믿으며. 그렇다면, 그 쾌락 중 과연 얼마를 털어, 예치할 것인가. 이 교환 가치의 개인적 기준을 관장하는 게 바로 세계관이다.

    

P.S. 그 양복은 ‘보스’다. 그땐 그 브랜드가 뭔지도 몰랐다. 이젠 몸이 불어 입지 못하지만 옷장 속 넘버원 아이템은 여전히 그놈이다. 지금도, 쳐다보기만 해도, 흐믓하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첫경험


그는 말합니다. ‘미래란, 애초에, 불안한거’라고. 그리고 덧붙여 말합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고유한 기쁨은,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라고. 맞지요? 전혀 틀린 말 아니지요? 저는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참 우울했습니다. 김어준이란 사람이 도전정신이 강하고 강단이 있으며 대단히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찌질하고, 소심하며, 현실에 아주 잘 길들여진(=찌든) 나약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만약 저런 상황을 맞는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떨 것 같은가요? 김어준씨처럼 과감히 지르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리란 생각이 듭니다만... 뭐 사실, 그럴지라도 그게 정상 아닐까요? ^^; 아마도 그의 말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백만 세가지, 아니 백만 열가지도 넘을테니까요.

    

사실 이 선택은 개인적 가치관에 대한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양복을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그 양복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의 ‘첫 경험’에 대한 값어치로 보는게 맞을 것입니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첫 경험’은, 결코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소중한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위의 글을 읽으며 우울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저(혹은 여러분)와 김어준이란 사람의 개인적 가치관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죠.

    

위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시켜 보자면, 양복은 첫 경험이자 가장 소중한 순간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는 삶에 이런 순간들을 많이 경험해야 하고, 기억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0만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머릿 속에 주옥과도 같은 경험들이 얼마나 많이 입력되어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겁니다. 그저 돈만 많은 사람(혹은 돈만 추구하는 사람)의 배는 따땃하고 부를지언정 마음 한구석은 항상 공허한 구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작지만 알차고 빛나는 경험들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삶은 먹지 않아도 배부를만큼, 풍요로움 그 자체라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카르페 디엠 = '하루를 수확하라'

삶은 순간의 합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의 저자 칼 필레머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을 ‘순간을 즐겨라’라는 의미대신 ‘하루를 수확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현자들, 즉 나이 많으신 분들의 말을 빌어, 우리가 매일 수확하지 않아 잃게되는 ‘기쁨, 즐거움, 사랑, 아름다움들이 너무도 많으며, 이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며 저지르게 되는 가장 흔한 실수이자 가장 아쉬운 실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탈무드에도 다음과 격언이 등장하고 있죠. “우리는 즐기지 못한 모든 주어진 기쁨들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요.

    

『책은 도끼다』의 저자이자 광고쟁이 박웅현씨는 삶은 순간의 합이라 말합니다. 이 말은 곧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순간을 모아 1시간이 만들어지며, 이 시간들을 모아 하루가 만들어집니다. 하루의 다양한 순간들을 어떻게 수확하느냐에 따라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가 됩니다. 인생의 현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루 안에 ‘기쁨, 즐거움, 사랑, 아름다움’이 흘러 넘치니 놓치지말고 잘 수확하라고요. 그럴 때 하루는 풍요로워짐과 동시에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고요.

    

하루를 잘 수확하는 법에도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한 인생 현자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잘 새겨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고 싶은 교훈은 주변을 둘러보라는거야. 주변에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 즐거움이 있다네. 아름다운 것들을 보러 세계를 다닐 필요도 없어.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어. 그저 창가에 서서 가만히 졸고 있는 강아지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내다보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매일 소소한 것들에서 수많은 기쁨들을 느끼지. 얼마 전에 세금 신고를 하느라 세무서에 갔는데, 그곳 야외정원에 앉아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봤어. 그저 가만히 앉아서 사진 속 근사한 계곡이며 아름다운 강들을 불러냈다네. 이렇게 가까이에서 작고 빛나는 것들을 찾아내야 해.”

    

    

    

    

매거진의 이전글 생물적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의 욕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