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12
예전 칼럼에서 생물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경제학의 정의에 의하면, 경제학은 우선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이 100%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의 인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즉 자원에는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원을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여기서 나오는 공통적, 일반적 법칙을 규명하여 이론화시킴과 동시에 사회의 여러 경제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라 말하고 있죠. 근데 쫌 어렵죠?^^
타오르는 불 위에 잘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며...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상당히 먼 과거로 가 보겠습니다. 기원전 7~8만여년 정도쯤 지구상에 살고있던 ‘우가차차’란 원시인을 만나러 가보죠. 우가차차는 무지막 바위골의 한 동굴에서 그의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습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해가 뜨고 아침이 오면 사냥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사냥에 성공하면 동굴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배가 불러지면 다시 내일의 사냥을 위해 잠을 청합니다. 혹 잠이 안오면 동굴 안쪽 벽면에 동물들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는 내일의 사냥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다시 아침이 오고 돌도끼를 든 우가차차는 사냥을 떠납니다. 남편이 사냥을 나간 사이, 그의 아내 ‘치치우가'는 동굴 주변의 과일을 따러 다닙니다. 만약 남편이 사냥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서 예비식량을 구해 놓아야 할테니까요. 해가 서쪽으로 늬엿늬엿 질 무렵, 우가차차가 알아듣기 어려운 콧노래 비슷한 것을 흥얼거리며 동굴로 돌아옵니다. 오호라, 어깨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네요. 보아하니 오늘은 제법 큰 놈 사냥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오늘뿐 아니라 며칠 동안은 먹을 것 걱정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타오르는 불 위에 잘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우가차차 부부는 행복을 느낍니다.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이동해 보죠. 이번에는 기원전 2만여년전 쯤으로 옵니다. 약 5만여년의 기간동안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가장 큰 변화는 농사와 목축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원시인 ‘우가차차’와 같은 남자들이 야생에서 동물을 사냥해 온 것으로 먹고 살았지만,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수의 감소뿐 아니라 동물들 또한 살기위한 진화를 하다보니 더 이상 사냥만으로 먹고 살기 어렵게 된거죠. 그러던 중 동굴이나 움막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던 여자들이 우연히 쌀이나 밀과 같은 곡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험삼아 조심스럽게 먹어보니 오예~! 먹을만 한 정도가 아니라 꽤나 좋은 식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처음에는 그저 과일처럼 따먹기만 했지만, 관찰에 관찰을 거듭, 곡식을 심고 키우는 방법까지 발견하게 되며, 이때부터 비로소 농사가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으로 인해 이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사냥을 위해 동굴이나 움막을 떠돌던 유목생활이 사라지게 되고, 한 곳에만 머물러 사는 정착생활이 기본으로 자리잡게 된거죠.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
농업의 발달은 곧 문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의 흔적은 대략 기원전 1백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농업이 시작된 시기를 약 2만년전으로 본다면 인류는 98만년의 시간을 시간을 사냥꾼으로 살아왔고, 정착생활을 하며 농부로써의 삶을 살아온 시간은 인류시작의 1/50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철학자로 유명한 윌 듀란트(Will Durant, 1885~ 1981)는 『역사 속의 영웅들』에서 이러한 농업의 시작, 곧 문명의 발달로 인해 남자와 여자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98만년을 야만적인(?) 사냥꾼으로 살아온 남자들이 온순한(?) 농사꾼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여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물론 농사를 짓는데도 남자의 힘이 많이 필요할 수 밖에 없지만, 사냥만큼 절대적이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윌 듀란트는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라고 주장합니다. 상당히 공감되는 말이죠?^^ 또한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고 하며, 현대까지도 남자들이 집에 머물려 하기 보다는 자꾸 밖으로 돌려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사냥의 DNA가 남자들의 몸 속 어느 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하네요.
원시인 우가차차 가족과 농사의 시작을 통해 본 원시시대의 경제적 관점은 딱 1가지입니다. 먹느냐 굶느냐하는 생존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원시인 우가차차는 사냥을 해야 합니다. 사냥을 잘 하기위해 돌도끼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화살과 같은 첨단무기(?)도 발명하게 되죠. 돌에 이어 청동 그리고 철까지 발견, 활용하게 되면서 사냥무기를 더욱 발전시키게 되고요. 이처럼 원시시대에는 A. 매슬로우가 말한 5단계 인간의 욕구 중 1차적 생리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먹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고, 그것으로 끝이니까요.
그렇다면 현대의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과거에 비해 경제활동은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의식주의 문제는 기본이 되었으며, 우리 주위에서 먹지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50~1960년대에 유행했던 보릿고개란 말 또한 이제는 국어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으니까요. 대신 자본주의가 점점 심화되면서 현대의 경제적 활동은 오롯이 ‘돈’으로 대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에 즉, 돈에 의해 돌아가는 경제체제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황제의 역할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돈’만 있다면 그리고 많다면 얼마든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자본가들에 의해 수많은 공장이 세워지고, 공산품에 대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거죠.
현대의 백화점, 대형마트를 가보면 그 위력을 더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없는게 없습니다. 생활필수품에서부터 시작하여 매우 비싼 명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은 물론이고,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 할지라도 여러 기업에서 경쟁적으로 출시한 제품들이 서로 자신을 사 달라며 유혹하고 있죠.
과거의 경제학이 1차적인 생리적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현대의 경제학에서는 인생을 사는 동안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여러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을 그 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문제란 다른 말로 바꾸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소유에 대한 욕망을 돈을 통해 어느 정도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돈만 충분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그 이상의 소비와 소유가 가능해지고, 그럼으로써 얼마든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관점의 인간의 욕망이란 부(富)의 축적을 의미하며, 부자의 삶을 꿈꾸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