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이 된다는 것
아직 법적인 나이로는 만48세지만, 통상적인 나이로는 2017년 1월 1일부로 오십이 되었습니다. 50,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나이입니다. 살짝 아니, 많이 당황스럽네요.
누군가는 반백의 나이라고 말합니다. 오십, 많은걸까요, 아니면 아직 적당하다 할 수 있는 나이인걸까요? 솔직히 10년 전 불혹의 나이인 40세를 맞이할 때보다 더 당혹스럽네요. 불혹(不惑)을 맞으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의혹이 없어지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세우게 되는 나이가 40이라고? 오히려 의혹이 더 많아지기만 하는데?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10년을 지나오면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여전히 세상은 의혹과 의문 투성이입니다. 뭐랄까요, 점점 더 안갯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오십은 불혹을 뛰어 넘어 지천명(知天命), 이제는 하늘의 뜻(命)을 알게되는 나이랍니다. 사실 내 한몸 건사하기조차 힘든데 세상에나, 하늘의 섭리까지 깨닫게 된다니요...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요? 그렇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불혹, 지천명, 이순과 같은 단어들은 공자(孔子, BC 551 ~ BC 479)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등장하는데요, 공자는 여기에서 자기 학문과 수양에 대한 발전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오십유오이지우학)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 (삼십이립)
서른 살에 자립했으며
四十而不惑 (사십이불혹)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게 되었다
五十而知天命 (오십이지천명)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六十而耳順 (육십이이순)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으며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일흔 살에 마음 내키는 대로 했으나 법도를 넘지 않았다
사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인간의 수명은 잘해야 40~50대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보다 더 낮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에 반해 공자는 무려 73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말 장수한 셈이지요. 공자는 아마도 자신의 삶에 비추어 위처럼 말한 듯 싶습니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뜻을 자립했으며, 40세에 미혹되지 않게 되고, 50대에 천명까지 알게 된 것 아닐까요? 더불어 60세에는 세상의 이야기를 잘 듣게 되었으며, 마침내 70세에는 자유로운 영혼까지 가지게 되었다니 정말 대단한 삶을 살다간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생은 전혀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일단 당시에 공자처럼 장수한 사람조차 드물었을테니까요.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도 무려 2,60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이제 현대인들의 수명은 공자를 뛰어 넘어 90세 시대, 더 나아가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장수의 여건이 조성된 것이죠. 그럼에도 공자가 말한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은 여전히 우리에게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우리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자처럼은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 그의 생각이라도 쫓아가고자 하는 노력 말입니다.
가만히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면,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지학은 어느 정도 실천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를 통해 지속적인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 이립은 글쎄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많이 늦은 나이인 50이긴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공자가 말한 이립, 불혹, 지천명을 터득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자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립조차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이립을 넘어 불혹의 문턱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면 지천명까진 아닐지라도 혹시 불혹의 일부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뭐 그도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스스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 사실에 만족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죠.
이렇게 배우고 스스로 익힐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 오십이 많은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도전하고 또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요즘 마흔을 두 번째 스물이라 부른다지요? 그렇다면 저는 오십을 두 번째 스물다섯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마음껏 도전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스물 다섯,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이제 막 제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진짜 스물다섯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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