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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07. 2017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 같은 것



'1코노미(1conomy)'와 얼로너(Aloner)


작년 가을 한 케이블 방송에서 <혼술남녀>란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거의 드라마를 보진 않지만(하지만 최근 <도깨비>만큼은 홀딱 빠져서 봤습니다.^^) 제목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요, 알아보니 ‘혼자서 술을 마시는 남녀라는 의미’라 하더군요. 혼자서 술을 마신다? 왜 혼자 술을 마시지? 그리고 ‘혼술’이란 것이 과연 드라마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 즈음부터 각종 언론에서 ‘혼’이란 접두사를 붙인 각종 단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혼밥(홀로 밥먹기)’이었고요. 여기에 더해 혼술, 혼영(홀로 영화보기), 혼행(홀로 여행하기) 들의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아, 혼곡(曲)도 있더군요. 이건 홀로 노래방 가서 (선곡한 후) 노래부르는 것이랍니다. 이런 신조어들도 특이했지만, 혼밥의 일정 수준에 오른 사람을 ‘프로 혼밥러’라고 부르는 것에는 뭐랄까요, 젊은 친구들의 조어능력 하나만큼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매년 소비트렌드를 예측하여 발표하는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는 이러한 나홀로 ‘혼’족의 행동들을 새로운 키워드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들의 소비행태를 ‘1코노미’라 부르고 있는데, ‘1코노미’란 ‘1인’과 ‘이코노미(Economy)’라는 단어를 조합한 것으로, 소위 ‘1인 경제’라 할 수 있겠죠. 또한 이렇게 혼자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얼로너(aloner)'로 명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최근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들의 뜨거운 마케팅 타겟이 되고 있다 하네요. 왜냐하면 기성세대에 비해 취미나 여가생활 등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파워 컨슈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얼로너의 1~3단계


사실 이러한 혼밥, 혼술은 우리나라가 아닌, 옆나라 일본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일본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개인화가 이러한 전형적인 일본 문화를 만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혼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을 뿐 아니라 눈치 또한 보지 않고요. 하지만 한국은 혼자서 하는 것에 대해 웬지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서는 관계에 밑바탕을 두고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혼밥이나 혼술이 드물었던 거고요.


자, 그렇다면 왜 지금은 이렇듯 ‘혼’이 성행하는 걸까요? 단순히 일본처럼 개인화가 유행하며 일본의 문화를 쫓아가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보면 일정 부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제시하고 있는 얼로너의 1~3단계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 얼로너 1단계 : 혼밥, 혼술은 기본 - 편의점 명절 도시락과 1인 식당(특히 1인 고기집)의 인기

* 얼로너 2단계 : 당당히 혼영, 혼행, 혼곡(曲) -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나홀로 해외여행


참고로 ‘스테이케이션이’란 쾌적한 환경(집과 같은)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정적인 취미생활, 즉 독서, TV시청(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기), 게임 등을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네요. 얼로너 3단계는 뭘까요? 바로 이겁니다.


* 얼로너 3단계 : 나 홀로 덕(후)질 -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의 일치), 성덕(성공한 덕후)


‘덕후(또는 오덕)’란 단어에 대해 아시나요? ‘덕후’란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써, 원래 집이나 댁(당신의 높임말)이라는 뜻이지만 주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분야에 몰두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오타쿠가 폐쇄적 의미가 강한 반면에 ‘덕후’는 보다 긍정적이며 전문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점차 혼밥, 혼술은 물론이고 혼영, 혼행이 늘어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얼로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덕후’까지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할 수 있습니다. 덕후들은 덕질을 통해 덕업일치를 이루기 바라며, 최종적으로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길 원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그런 사례들(뷰티 유튜버 씬님, 윤짜미, 포니 등)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고요. 이렇게 본다면 오타쿠라고 하는 일본 문화가 일정부분 한국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듯 싶습니다.



한 손에는 젓가락,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트렌드 리포트의 분석에 의하면 얼로너들은 어쩔 수 없이 군중 속에 있다 하더라도 정녕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 즉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 하고 스스로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 이들은 혼밥, 혼술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사회학자들은 현대의 경쟁관계가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급기야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든 자기 만의 독립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의 표출이 ‘혼’ 문화를 가져온 것이죠.


‘관태기’란 신조어가 있습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권태로움을 느낀다는 의미로, 최근 젊은 세대들이 SNS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입니다. 얼로너들은 어찌보면 ‘관태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여전히 끊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SNS에 더 열중합니다. ‘좋아요’와 ‘팔로워’의 수치가 자신의 인간관계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죠.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SNS 소통하고 있는 이 모습이 어찌보면 얼로너들을 상징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혼곡과 같은 ‘혼’ 문화가 더 심화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유행하다 사라질지 명확하게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무한경쟁의 사회가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얼로너들은 더 많아지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각종 ‘프로 혼○러’들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죠. 혼밥, 혼술이 주류인 사회, 어떠신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은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드라마 <혼술남녀>에 등장하는 대사 일부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혼술의 진짜 의미가 어떤 것인지 말이죠.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일상을 꿋꿋이 버티기 위해서다. 누군가와 잔을 나누기에도 버거운 하루, 쉽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혼술을 한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http://cafe.naver.com/ecolifuu(경제/인문 공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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