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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15. 2017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

#8, 노교수의 배움 이야기, <학문의 즐거움>


<학문의 즐거움, Joy of Learning>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방승양 옮김/김영사




어디선가 우연히 들었던 이 책의 제목. 한번은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어 구입하였다. 무슨 내용일까? 제목의 고색찬란함과 더불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단지 일본사람이 저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더 많이 일었다.


책이 다소 얇은 편이다. 페이지수는 약 230P 정도 되지만 책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 어제 밤에 손에 잡고, 오늘 오전에 다 읽었으니 불과 하루도 안 걸린 셈이다. 평소 나의 느린 독서속도를 감안한다면 이건 아우토반에서도 과속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


이 책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란 일본 수학자의 자서전이다.  1970년 <복소 다양체의 특이점>에 대한 연구로, 수학의 노벨상(노벨상에는 물리학, 화학, 의학은 있지만 수학분야는 없다..)이라는 필드상을 받았으며, 이 공로로 일본 문화 훈장까지 수상하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하버드 대학 및 일본 교토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수상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어려운 학문 중의 하나인 수학연구를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이며, 그 깨달음을 인생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고자 펜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수학도 열심히 하다보면, 인생 성공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뭐.. 그런건가? ^^;;


이 분, 1931년생이니 만 나이로 지금 딱 86이다. 많이 늙으신 분이다. ^^; 출간년도를 보니 1992년... 흠... 내가 읽은 책은 2001년도 31쇄판이다. 꽤나 오래된 책임에 분명하다.


자, 변죽은 그만 울리고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제일 처음 생긴 궁금증. 이 노(老)수학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학문의 즐거움(Joy of Learning)이란 거창한 제목을 통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배움에서부터 창조까지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을 어느 정도는 잊어 버리게끔 되어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이제부터 그 이유를 밝히겠다.


위에서처럼 사람은 왜 배우는가?란 의문을 먼저 던진 저자는, 책 중간도 아닌 머리말에서 확실하게 그 답을 밝히고 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 라고. 또한 덧붙여 말하기를, 학문은 즐거운 것, 기쁨을 맛보는 것인데 왜냐하면 학문에는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의 즐거움과 기쁨이 배여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배우게 됨으로써 생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생각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를 통해 인생의 지혜가 쌓인다는 쌓인다는 것이다. 즉, 아래와 같은 선순환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배움  →  생각  →  창조  →  지혜


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생각과 창조의 부분에 대해 많은 공감을 했다. 생각이 많아진 요즘, 깊고 꾸준한 생각을 통해 문제를 고민하고 개선점을 찾는 과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지 ‘창조’라고 하는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조금씩의 개선--일본인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가이젠(改善)--이 삶의 방향과 질을 차츰차츰 변화시킨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과 창조는 하나의 연관어이자 필요충분조건이 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창조의 기쁨 중의 하나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즉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22P)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창조를 이루어 내야만 하고, 창조를 위해서는 생각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며, 그 생각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움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저자가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아주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소심심고(素心深考)


본문 중에 눈에 확 띄는 단어 하나가 나왔다. 소심심고(素心深考)라는. 해석하자면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창조하라’는 의미이다. 소심(小心)과 소심(素心).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작은 마음과 소박한 마음이라. 소심(小心)의 일반적 의미는 ‘생각이 좁고 편협하여 넓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심(素心)은 ‘본디 지니고 있는 마음’으로, 변하기전 원래의 자기자신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즉, 소심심고(素心深考)란 ‘원래의 자기자신으로 돌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되, 보다 깊고 넓게 생각하라‘란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심(素心)이란 단어는 초심(初心)의 동의어라 할 수 있겠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였던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는데,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자연’은 2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모순된 사회와 정치체제를 개혁하여 원래대로의 순수한 사회, 정치체제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순수한 인간성 회복을 이른다. 어쩌면 루소의 주장과 저자가 말하는 ‘소심심고(素心深考)는 시공의 차이는 존재할 지언정 같은 맥락의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든, 소심심고하든 중요한 것은 원래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니즈(Needs)와 원트(Want)의 차이


need와 want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을 인용해 보자.


‘니즈’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외부 상황을 판단해서 나온 필요성이며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경험한 것과 얻은 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온 필요성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에 비하여 ‘원트’는 자기 내부에서 나온 필요성이며 시간적으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욕망이나 결핍을 내포한 필요가 원트이다.(152P)


정리하자면 객관적 필요성이 ‘니즈’라면, 주관적 필요성은 ‘원트’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욕망의 유무 혹은 욕망의 강약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실히 원한다면 그것은 ‘원트’에 해당되는 것이며, 거래상 어떠한 손해가 나더라도 어떠한 것을 탐한다면 그것은 ‘원트’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시한번 저자의 말을 인용해 보자.


니즈는 이성에 의한 판단에서 생긴 필요, 욕망은 현재 자기 속에 있는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경우에 따라서는 참을 수 없어서 폭발할 정도의 정념으로부터 생기는 필요라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153P)


저자는 인생의 변화와 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욕망이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즉, 어떠한 것을 하거나 이루는 데 있어서 욕망,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갈망, 절실함, 애절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아가는 말이기도 하다. 소심심고하여 가슴에 더욱 새겨야 할 말이다.



인연(因緣)


불교에 ‘인연(因緣)’이란 말이 있다. ‘인’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해서 외적인 것이 ‘연’이다. 내적 조건인 ‘인’과 외적조건인 ‘연’이 결합해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69P)


저자가 이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그야말로 인연(因緣)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안으로는 스스로의 배움에 충실하여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하며, 밖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에 충실하여 자신에게 없고 부족한 점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생의 변화와 성공을 향해 나아가라고 저자는 마치 할아버지처럼 조용히 타이르고 있다. 그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한 인간의 삶은 인연에 지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것, 가까운 친구에게서 배운 것,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로 자기 자신 속에 축적되어 ‘인’을 만든다. 그 ‘인’이 ‘연’을 얻어서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길이 만들어 진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만 느껴진다.(69P)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http://cafe.naver.com/ecolifuu(경제/인문 공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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