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2
최근 언론의 뉴스를 보게 되면 자주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류의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그 기사를 보며, 1990년대 초중반 혹은 2000년대 중반의 경기 좋았던 시절에는 국민의 70~80%가 설문조사를 통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한다고 답하지 않았었나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이란 단체에서 작년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총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총 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 50~150%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비율이 2009년 47.4%에서 2013년에는 41.3%로 약 6.1%포인트 감소했다고 하네요. 물론 중산층과 중위소득은 다소 차이가 있긴 합니다. 중산층이라하면 약간의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심리, 문화적 요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어쨌든 발표자료에 의하면 2013년 중산층의 비율은 41.3% 정도라 하니 10명 중 4명은 중산층 정도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율이 아닌 금액으로 들여다보죠. 자료상 중위소득은 약 3,70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여기에 중산층의 비율이라하는 50~150%를 대입해 보면 약 1,850만원~5,550만원 정도가 산출됩니다. 어라?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1,850만원(월 154만원)의 소득이라면 중산층? 물론 순수한 1인 소득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하겠지만, 가구소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개가 갸웃해지는게 사실입니다. 이왕 들어간 김에 조금 더 파볼까요? 2014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4인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월 163만원이라고 합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1,956만원, 조세재정연구원에서 발표한 1,850만원보다 약 100만원 가량 많네요. 자, 1,850만원도 중산층에 해당된다고 발표한 조세재정연구원과 1,956만원을 벌면 최저생계비 수준이라고 말하는 보건복지부,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요?
더 재미있는 것은 통계청 자료입니다. 통계청에서는 조세재정연구원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자료에서 중산층의 비율이 58.7%에서 60.1%로 1.4%포인트 증가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중산층의 비율이 더 증가했다고요? 더군다나 단순비교해도 조세재정연구원의 41.3%에 비해 무려 18.8%포인트가 높다니, 도대체 어떤 계산방식으로 이런 데이터가 산출되었는지 참으로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뭐, 다 좋습니다. 제가 오늘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주세는 중산층에 대한 범위나 규모 같은 것이 아니었으까요. 사실 중산층이란 말을 만들어 금액과 비율로 나누고, 소득규모에 따라 성적처럼 순위를 매겨 중간이네 아니네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닐까요? 물론 중산층을 정의함에 있어 경제적 부분만 쏙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중산층을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전상 중산층의 정의에 의하면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되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 집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제적 관점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관점 그리고 스스로 자주적인 중산층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중산층(中産層)을 중간이란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중산층과 중간층(中間層)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죠. 중간층이란 그저 중간에 위치한 지정학적 혹은 계급적 단계에 불과하지만, 중산층은 글자 가운데 위치한 ‘산(産)’의 존재 때문에 차별화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産)’은 ‘낳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다’라는 의미의 출산(出産), ‘재화를 만들어 내다’라는 의미의 ‘생산(生産)’에 주로 쓰이는 글자죠. 즉 중산층이란 모든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 사회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움은 물론,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맡은 바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화적 측면에서도 문화의 발생은 물론 그것이 온전히 퍼질 수 있도록 문화 생산과 문화 소비의 양면적 프로슈머(Prosumer)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산층을 소득으로만 계층화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산층이란 단어를 경제용어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중산층이란 스스로의 고유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머리와 손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그로 인해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있어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중산층이라 지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뿐 아니라 제 주위에 계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중산층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산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