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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26. 2017

라일락 꽃향기에 취해

가는 봄에 위로의 향기를 주는 라일락에 관한 시 3편


새벽 출근, 그리고 밤 늦은 퇴근.

축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파트 초입에서 나를 맞이해주는 이가 있습니다.

1년 중에서 이맘 때인 4월말, 길어야 5월초까지의 딱 2주 정도만 나를 반겨주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라일락 꽃, 그리고 그 진하디 진한 향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 향기 속에는 나를 이리 오라는 애절한 손짓이 담겨져 있습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굳이 꽃에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대지 않아도 그 향기는 머리를 거쳐 온 몸으로 퍼져 갑니다.

마치 인생의 첫 한잔의 술이, 첫 담배가 온 몸에 퍼지듯, 라일락 향기 또한 사람을 취하게 만듭니다.


행복합니다.

이런 봄이라서.

라일락 꽃의 연보랏빛 설레임은 물론,

라일락 향기에까지 한껏 취할 수 있어서.


그제 밤 늦은 퇴근길에는 이 좋은 라일락 향기를 힘들어 하고 있는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어

구석에 삐죽 튀어 나와 있는 가지 하나를 몰래 꺽었습니다.

미안해. 딱 이번 한번만.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내 또한 금새 향기에 취했습니다.

라일락 꽃 가지를 물컵에 담가 놓았습니다.

진한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 향기를 맡으며 잠이 듭니다.

자다 깨도 향기는 여전히 자욱합니다.

잠이 한층 더 맛있어 집니다. 꿀잠, 아니 향기잠입니다.

맞잡은 아내의 손의 온기에서도 그 향내가 배어 있는 듯 합니다.


행복합니다.

이런 봄이라서.

라일락 꽃의 연보랏빛 설레임과

그 향기가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워주어서.





라일락     


                                - 정두리 -      


가지마다 숨겨진

작은 향기 주머니     

이름 석 자 뒤에도

묻어나는 냄새     

향기로만

나무가 되려는 나무     

소올솔

작은 주머니가

올을 풀어서     

봄 하늘을

향긋하니 덮어 버렸다.       





라일락 그늘 아래서     


                                   - 오세영 -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라일락꽃     


                              - 도종환 -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kr.pinterest.com/mizrak1984/flowers-%C3%A7i%C3%A7ekler/)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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