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서민 경기의 안타까운 불일치성
(1편에 이어..)
경제수치에는 함정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나 언론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돌파함으로써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가정해 보죠. 그럴 경우 경기가 좋아지고, 모든 국민이 다 잘 살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여기에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 분배에 대한 이슈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똑같이 5만 달러인 ‘선진국’ A, B 두 나라가 있다 해보죠. A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 반면에, B나라에서는 너무나 살기 어렵다며 한숨만 계속 쏟아져 나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A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고루 5,000만원±α 의 소득을 올리는 것에 비해, B나라에서는 ‘초대형 슈퍼 울트라 캡쑝’ 갑부가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 갑부 혼자 국민소득의 1/4에 해당되는 엄청난 소득을 올리다 보니, 다른 국민들은 거의 대부분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이해되시죠?
놀랍게도! 위의 이야기와 거의 유사한 예를 가진 그런 나라가 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나라죠.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제1의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삼성전자. 지난 3월 삼성전자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인 1주당 2,134,000원을 기록했습니다. 최근에도 주가의 상승세는 꺽이지 않고 있는데요, 워낙 큰 회사다보니 삼성전자 한 회사가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대단합니다. 지난 3월 17일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코스피(KOSPI) 내 시가총액 비중은 약 21.3%였으며, 이는 전체 2위부터 12위까지인 SK하이닉스, 현대차, 삼성전자우, 한국전력, 네이버(NAVER), 포스코(POSCO),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신한지주, 삼성생명, KB금융의 시총을 모두 합한 것(21.6%)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대단하죠?
주식시장에서뿐 아니라 대한민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2016년 GDP는 약 1,637조 정도 됩니다. 삼성전자의 2016년 매출은 약 202조 정도로, 삼성전자 한 회사가 대한민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12.3%나 됩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 삼성그룹으로 볼까요? 삼성그룹의 작년 매출은 약 359조원으로, GDP 대비로 보면 21.9%입니다. 엄청나지 않나요? 삼성이란 브랜드가 한국 경제의 22%, 조금 더 보태 1/4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만에 하나 삼성이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따라서 쓰러질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며, 혹자는 이를 빗대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까지 부르는 거죠.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임직원수는 얼마나 될까요? 작년 9월 기준으로 약 95,000명 정도이며, 삼성그룹 전체로 보면 25만 4천명 정도라 합니다. 이 임직원들이 삼성 브랜드의 어마어마한 매출과 이익에 대한 혜택을 받고 있다 볼 수 있을 겁니다. 한 가구당 가족수를 4명이라 할 때 약 100만명 정도라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 총 인구수(약 5,100만명)를 감안한다면 1.96%, 채 2%도 안되는 인원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겠습니다(물론 삼성의 협력업체 분들까지 감안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로 볼 때 협력업체에 여유있는 이익을 주며 거래하는 대기업은 결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결코 삼성그룹을 질투하거나 혹은 공격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다른 산업이나 기업이 부진할 지라도 삼성그룹이 잘 나갈수록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쑥쑥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정부나 언론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과거에 비해 나이지고 있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공표할 겁니다. 맞지요, 수치상으로는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끼게 되는 체감 경기는 어떨까요?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들이 경기가 나아지거나, 좋아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호주의 진보 경제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그의 저서 『성장숭배,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에서 경제성장이란 단지 한 해에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얼마나 늘었는 지에 대한 극히 평범한 생각에서 나온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마치 영험한 마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을 읽어 보시죠.
성장에 대한 우리의 강박관념은 사람들이 영험한 마력이 있다고 믿는 주물(呪物)을 받들고 모시는 집착이나 애착처럼 보인다. 소득 증대는 세상 사람들이 갈구하고 궁리하는 인생의 목표 그 자체가 되었지만, 과연 우리들은 40년 혹은 50년 전에 비해 지금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경제성장이라는 관념은 이제 사람들을 흘리는 망상으로 둔갑해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조직하고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망상체계(체계화된 망상)로 진화했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더 이상 경제성장이 우리 삶의 해법이 될 것이란 생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을 통해 지금보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지라도,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지기란 어려울 것이라 보기 때문이죠. 즉 지금과 같은 장기불황의 시대에서는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분배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그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신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 글로벌 경제의 문제점은 불평등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를 통해 엄청난 자본수익을 얻고 있는 글로벌 자본가들로부터 자본세 등의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렇게 걷은 세금을 고루 분배함으로써 더 심화되어 가고 있는 불평등을 줄이는데 써야 한다고 말이죠.
성장이 먼저인가, 아니면 분배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명제는 결코 쉽게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둘 중 하나 만을 고를 수도 없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어느 정도의 비율이 적정한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성장과 분배에 대한 고른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어느 한쪽의 편향적 사고 만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죠.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본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바꿔야만 합니다. 경제성장은 장기 불황 시대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현 경제체계에서 그저 성장만 추구하는 정책은 결국 소득 불균형의 심화만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불편한 사실이자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계속 고성장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개인들의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이 경제성장에 대한 진실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cte7109.tistory.com/637)
* 이 글은 핀테크기업 '레이니스트'의 온라인 매거진 <뱅크샐러드>에 수록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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