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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y 19. 2017

사람을 믿지마라, 그럼에도 결국은..

영화 <불한당>을 보고



'나쁜 남자 신드롬'과 '느아르 영화(Film Noir)'


한때 나쁜 남자 신드롬이 유행했었습니다. 나쁜 남자란 단어 그대로, (이런)나쁜! 남자(놈)를 말하죠. 나쁘다는 것 무엇을 의미할까요? 해석에 의하면 ‘나쁘다’라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 좋지 않다, bad, poor

 - 옳지 않다, worng

 - 해롭다, harmful, injurious     


나쁜 남자 신드롬에서 ‘나쁜’이 내포하는 의미는 위의 3가지 모두에 해당될 듯 싶습니다. 좋지도 않고, 옳지도 않은데 거기에 더해 해롭기까지 한, 그런 의미로 말이죠.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웬지 끌리게 되는 그런 남자, 아마 이것이 바로 나쁜 남자 신드롬의 정의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일상이 아닌 영화에서 나쁜 남자 신드롬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아무래도 ‘느아르 영화(Film Noir)’가 아닐까 싶습니다. ‘느아르’란 단어는 불어로 검은 색(black)이란 뜻으로, 주로 암흑가를 무대로 한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을 가리켜 프랑스 비평가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일명 다크 필름(Dark Film)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네요.     


느아르 영화를 떠올릴 때 머리 속에 먼저 그려지는 것들은 아마 이런 장면들일 겁니다. 어둡고 조금은 암울한 폐 건물, 허름한 공간, 지저분한 주위 환경, 자욱한 담배연기, 굴러 다니는 술병들, 우울한 분위기, 강렬한 혹은 긴장감을 주는 락 음악, 자동차의 무한 질주, 브레이크의 파열음, 남자들 간의 무자비한 혈투, 머리를 울리고 심장을 때리는 총소리 그리고 피 흘리며 누워 있는 한 남자의 무표정하면서도 살짝 흔들리는 까만 눈동자. 아마도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에게 ‘홍콩 느아르’로 널리 알려졌던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장지구>, <용호풍운>, <무간도>나, 대표적인 ‘한국 느아르’라 불리우는 <달콤한 인생>, <친구>, <해바라기>, <아저씨>, <신세계>, <우아한 세계> 등을 생각하면 쉽게 ‘느아르 영화’에 대한 감이 오실 겁니다.     


영화 <영웅본색>


영화 <달콤한 인생>


<불한당>, 나쁜 놈들이 '그득그득' 등장하는 영화


변성현 감독의 신작 영화 <불한당> 또한 전형적인 ‘느아르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런 장면들이 런닝타임 내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영화의 부제는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이런)나쁜 남자(놈)들이 판을 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더할 나위없이 나쁜 남자 신드롬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불한당(不汗黨)’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강도’, ‘파렴치(破廉恥)하게 남의 제물(祭物)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行悖)를 부리는 무리’를 뜻합니다. 한자상으로는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고 하네요. 하나는 '아무리 나쁘고 포악한 짓을 하더라도, 눈물은 커녕 땀 하나 흘리지 않을 정도로 냉혈한 같은 무리'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땀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족속'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만약 후자를 불한당에 대한 진짜 정의라고 본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엔 불한당깨나 많을 듯 싶어 보입니다만...     


제목과 부제처럼 이 영화에는 나쁜 놈들이 ‘그득그득’ 등장합니다. 몇몇을 빼 놓고는 모두 다 나쁜 놈들이라고 봐야합니다. 주인공인 쌍두마차, 한재호(설경구)와 조현수(임시완)은 당연히 나쁜 놈들입니다. 다만 조직의 2인자인 한재호는 원래부터 나쁜 놈, 그리고 잠입 경찰인 조현수는 큰 사건을 겪으며 나쁜 놈이 되어 간다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죠. 또한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병철 회장(이경영), 고병갑 상무(김희원) 그리고 심지어는 경찰 강력계 천팀장(전혜진)까지 쫓고 쫓는 자의 입장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나쁜 놈들임엔 틀림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쁜 놈들에 의한, 나쁜 놈들을 위한, 나쁜 놈들의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라. 그럼에도 결국은...


그렇다면 전작으로 <나의 PS 파트너>라는 말랑말랑한 로맨스 영화를 선보였던 변성현 감독은 왜 이런 나쁜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남자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흠, 제 생각엔 아무래도 역시나 나쁜 남자 신드롬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고요, 더 나아가 본인이 영화를 통해 나쁜 남자가 되고 픈 작은 열망을 표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변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며 스토리보다는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만화적인 장면(look)과 남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멜로(요즘말로 소위 브로맨스)에 치중했다고 하는데요, 즉, 나쁜 놈들끼리의 관계—그것이 브로맨스든, 우정이든 간에—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주인공인 두 사람, 한재호와 조현수의 믿음과 배신이 이야기의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영화 내내 그들은 배신과 신뢰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게 되는데요, 특히 이런 말들을 통해 그들의 서로에 대한 긴장감은 아주 높아지게 됩니다.     


 - 한재호 :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내가 누굴 믿는게 가능할 것 같니?”


 - 조현수 : “그래도 난, 형 믿어요.”

                “아직도 나 의심하는 거예요?”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의 가장 장점은 느아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만화적 설정과 신선한 카메라 워킹, 독특한 화면들이 꽤나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쏙쏙 빠져드는 느낌이 들죠. 하지만 이 보다 더 큰 장점은 두 주인공의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의 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설경구와 임시완은 1967년생, 1988년생으로 무려 21살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묘한 브로맨스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요,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믿으려 하고, 또한 믿는 가운데서도 배신을 걱정하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고자 하는 그런 미묘한 감정의 선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배어나오죠.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 나쁜 놈들의 역할에 충실하게 됩니다. 관계에, 감정에 흔들리긴 하지만, 서로 처한 환경에 맞추어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 나쁜 남자로 돌아가게 되죠. 전형적인 나쁜 남자 신드롬의 구현이라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탄탄한 시나리오, 가끔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인상적인 만화적 설정과 장면, 튀는 액션들, 두 주인공의 진한 브로맨스와 배신, 까메오로 깜짝 등장한 허준호의 카리스마 눈빛 연기, 고상무 김희원의 순박(?)한 멘트들.. 이 영화에는 다양한 볼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느아르를 좋아하고, 나쁜 남자에 매력을 느끼는 그리고 조금은 톡특한 액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불한당>은 탁월한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선택은 될 것이라 보여집니다.





* 이 영화 감상문은 <브런치>에서 준비한 시사회를 본 후 작성한 것입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브런치>에 감사 드립니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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