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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l 04. 2017

가난한 결혼,
그리고 돈을 모은다는 것(1편)

외벌이로 사는 법


1996년 3월 31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네요. 무슨 날이냐고요? 제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턱시도(말로만 들어보던)를 입고 예식장으로 걸어 들어갔던 날입니다. 당시 제 옆에는 아리따운 한 여자가 하이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빛나고 있었지요. 그 자리에서 29살 동갑내기(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외모 상으로는 제가 큰 오빠뻘...) 두 남녀는 평생을 약속했고, 21년이 흐른 지금도 오순도순 소꿉장난하듯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결혼자금, 700만 원


당시 저는 결혼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수중에는 고작 700만 원이 전부였고요. 그런 빈털터리(?) 상태에서도 용케 결혼을 할 수 있었죠. 물론 아내와 처갓집에서 허락이란 용단(!)을 내렸기 때문이고, 또한 아주 다행스럽게도 신혼살림을 차릴 지역이 경기도 송탄(지금의 평택)인 까닭에 전세가가 저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회사에서 300만 원을 대출받고, 아내의 혼수금 중 1,000만 원을 보태 2,000만 원에 신혼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이었다면 그야말로 지하단칸방의 사글세로 시작했거나, 아예 결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저와 결혼을 결심한 아내도 참 대단하네요. 정말 아무 가진 것도, 별 볼 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결혼 후 저는 송탄 외곽에 위치한 공장으로, 아내는 서울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대개 남편보다는 아내의 회사가 가까운 곳에 방을 얻지만, 저희는 어쩔 수 없이 그 반대를 택할 수 밖에 없었죠. 제가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오후 5시 반, 집에 와 서둘러 밥과 국 또는 찌개를 만들거나 차립니다. ‘저녁으로 뭘 준비하지?’하는 것도 당시 매일하던 고민 중 하나였지요. 그리곤 7시 반쯤 맞추어 집 근처에 위치한 시외터미널(당시는 광역버스란 것이 없었습니다)로 아내를 마중나갑니다. 조금 기다리다보면 아내를 태운 시외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한마디 합니다.


“일하느라 힘들었지? 맛있는 김치찌개 만들어 놨어~^^”


돌이켜보니 당시의 순간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네요. 가난했고, 아무 것도 가진게 없었지만 젊음, 청춘, 사랑, 애틋함, 행복, 소소함 들이 저와 아내의 마음 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 꼭 다시한번 겪고 싶은 아스라한 시간들이네요.



험난한 외벌이의 삶, 하지만..


전업주부, 아니 저녁만 차리는 반(半)주부로서의 신혼생활은 10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사랑스런 2세가 생기면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이었죠. 아침, 저녁으로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행복했지만, 그때부터 저희 가계부에 쌓여가는 자산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맞벌이에서 본격적인 외벌이의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쭉 외벌이로 살고 있습니다. 이듬해 4월 첫째가 태어나고, 바로 이어 그 이듬해 9월에는 둘째가 우리 품안에 안겼죠. 연년생으로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내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두 아이가 어리다보니 더욱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돈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아내는 경단녀(경력단절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고요.



어느 덧 결혼 한지도 21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송탄이 아닌 용인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외벌이의 삶이지만, 워낙 아내가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해 준 덕분에 지금은 경제적 부족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일정 자산도 모아놓은 상태고요. 물론 기준을 얼마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회적 기준이 아닌 제가 보는 수준에서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출(빚)이 ‘0’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 더 자유롭다 할 수 있죠.



외벌이로 만들어낸 경제적 여유에 대한 3가지 비결


21년 전, 고작 1,700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생활. 지금 이렇듯 경제적으로 여유롭게(물론 제 기준입니다!) 지낼 수 있게 된 비결을 꼽으라면 저는 다음 3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아내의 절약 신공.

둘째, 복리 상품 투자가 아닌 복리식 투자.

셋째, 흐름에 맞는 투자. 지속적인 투자 공부.



다음주 칼럼에서는 위 3가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가난한 결혼, 그리고 돈을 모은다는 것(2편)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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