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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l 13. 2017

첫사랑,
그것이 비록 큰 아픔이었을 지라도

#16, 젊음, 열정, 안타까움, 아스라함.. 소설『영초언니』를 읽고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눈에 뜨인 이 책 『영초언니』. 추천인에 소설가인 황석영, 조정래의 추천은 물론 손석희, 유시민 그리고 김어준의 이름까지,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 바로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때문이라니. 과제처럼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이 있음에도, 이 책이 나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어서 『영초언니』의 삶의 여정을 쫓아가 보라고.     



긴급조치 제9(1975.5.13.~1979.12.7.)


<김상진 할복자살사건>을 계기로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에서 1975년 5월 13일 선포된 긴급조치로써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및 사실의 왜곡·전파행위 금지 

△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 기타 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금지 

△ 수업·연구 또는 사전에 허가받은 것을 제외한 일체의 집회·시위·정치 관여행위 금지 

△ 이 조치에 대한 비방행위 금지 

△ 금지 위반내용을 방송·보도·기타의 방법으로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소지하는 행위 금지 

△ 주무장관에게 이 조치의 위반 당사자와 소속 학교·단체·사업체 등에 대해 제적·해임·휴교·폐간·면허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부여 

△ 이런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 등.      

약 4년여 동안 지속된 긴급조치 9호 시대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로서 8백여 명의 구속자를 낳아 <전국토의 감옥화> <전국민의 죄수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 책은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경험했던 두 여자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 열망에 대해 담담하게 때로는 뜨거운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젊음, 사랑, 청춘, 열정, 뜨거움, 희망, 절망, 아스라함, 안타까움, 억울함, 괴로움, 슬픔, 오기, 반항 들이 이 소설 안에 오롯이 녹아져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터질 것만 같은 열망과 소리침에 나의 가슴까지 뜨거워지기도 했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내 지나간 청춘, 젊음의 시절(두 여자가 겪었던 그 시절과는 너무나 다르긴 했지만)을 다시한번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내가 대학 초년생 시절을 보냈던 1987년. 이 해는 박정희정권 시절과는 비교조차 안되겠지만, 전두환정권 말기로써 전국적으로 민주화 항쟁이 드세게 일어났던 시기였다. 대규모 촛불시위로 박근혜 퇴진 및 구속을 이루어 낸 최근처럼, 당시에는 호시탐탐 정권 연장을 노리던 전두환정권을 상대로 대통령을 직접 국민의 손으로 뽑는 직선제를 요구하며 수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이에 전두환은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국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6월 10일에는 전국 18개 도시에서, 그리고 26일에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최대 인원인 100만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엄청난 최루탄을 쏟아 부으며 도시 자체를 마치 화생방 훈련장으로 만들었지만,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이러한 시위는 마른 숲에 불길이 번지듯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고, 조만간 대한민국 전체가 뜨거운 불길로 가득 태워지게 될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얼마 후인 6월 29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는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인다는 대국민 항복선언을 함으로써 마침내 상황은 종결될 수 있었었다. 국민의 승리이자 민주화의 승리였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0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마침내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두달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은 직접 선거를 통해 박정희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 온 군사정권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민정당 후보로 나온 노태우가 36.6%의 지지표를 얻음으로써 13대 대통령이 되고 만 것이다.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로 뛰쳐 나와 목놓아 외쳤던 정권 교체의 함성이 그만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 것이다. 1987년,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시기상조였던 걸까?          



이 책의 주인공 천영초, 서명숙은 그들의 젊음의 시간을 민주화 투쟁을 위해 바친다. 그러다 서명숙은 자신의 부모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비겁(다르게 표현하면 지극히 정상적인)한 삶을 택하고자 하지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됨으로써 결국 정치범으로써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박정희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열정과 투쟁, 그리고 희생을 알아주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젊음을 바친 것일까?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피끓는 민주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소설의 대부분은 젊음을 바쳐 투쟁과 항쟁을 거듭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쩌면 젊음 그 이후의 이야기인 지도 모른다.      


옥살이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서명숙은 흠모했던 첫사랑 엄주웅과 다시 관계가 이어지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된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던 엄주웅과 여러 가지 개인적, 가정적 문제로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영초언니 또한 비범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따스함을 가지고 있던 정문화와 평생을 약속하지만, 결혼 후 전혀 가정경제를 챙길 줄 모르던 남편과 헤어져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만다.     


만약 이들에게 행복에 대해 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답을 할까?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할까? 책 속에서 천영초는 유일했던 행복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캐나다의)우리집 정원에서 보는 노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넌 모를거야. 커다란 떡갈나무가 집 마당에 있거든. 봄이 되니 그 큰 나무에 여린 새순도 돋고. 아, 명숙이 네가 이 풍경을 봐야 하는데…. 나, 정말이지 행복해. 아무 것도 안 하고 거실에 앉아서 정원만 바라봐도 이렇게 행복한걸. 이런 행복은 난생 처음이야...”     


서명숙은 영초언니의 행복하다는 말에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행복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사실 행복이란 영초언니의 말대로 별 것 아닌 지도 모른다. 노을, 풍경, 커다란 떡갈나무, 여린 새순, 소중한 생명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삶 그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건 이런 사소한 행복을 누릴 여유조차 영초언니가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삶은 비극인 지도 모른다.     


서명숙과 전화통화를 하고난 지 일주일 후 영초언니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다치고 만다. 그토록 영민하고 똑똑할 뿐 아니라 남을 배려함과 동시에 감성으로 충만했던 영초언니가 그만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정부분 회복은 하지만, 과거와 같은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게 안타까운 삶이 흘러간다.               


이 책이 그린 것은 옛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이다세상에 대한 첫사랑으로 불타올랐던 청춘같은 대상을 두고 첫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설명할 길 없는 불운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영초언니를 대신해대책 없이 씩씩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여쁜 그 첫사랑의 떨림과 짜릿함을 전해준 서명숙이 내게 물었다짧고부질없으며결국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단 말인가나는 대답한다없다!  

                                                                                                                        -- 유시민(작가)          



이토록 영초언니의 삶이 아쉽고 안타깝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유시민 작가(책에도 그의 이름이 잠깐 등장한다)는 위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젊음을 바친 첫사랑이 우리의 삶에 미친 의미는 지극히 위대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 위대한 것은 없노라고.


사실 후회하면 뭐하겠는가. 자신의 열정을 바친 젊음이라면, 그 또한 그대로 찬란히 빛나던 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결국 한줌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결국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서 아찔하고 떨렸던 첫사랑의 순간마저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삶은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지내져 온 것에 불과할테니...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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