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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ug 03. 2017

동화를 따라 떠나는 환상적인 여정

#18, 힐링 동화의 엄지 척! 고전(古典),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로버트 잉팬 그림/원재길 옮김/살림어린이





이 책은 




이 책은 어린이용(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정도 수준의) 그림책이다. 1908년에 첫 출간되었으니, 무려 200년이 넘은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뭐 고전이란 용어보다는 그저 ‘옛날 이야기 책’이라 표현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어린이용이니까.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 일테지만, 그래도 내가 어린이용 그림책을 지금 이 나이(?)에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읽은 걸 후회하거나 읽는데 사용한 시간을 아까워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다. 이런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한 책을 접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영광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스해지고, 포근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행복한 여정이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옮긴이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니! 이렇게 모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단어 하나하나의 쓰임새가 꼭 알맞으며,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즐거운 감정들을 이렇게 완벽하면서 적절한 표현으로 살려 낸 작품이 다 있다니!”

맞다. 이야기는 살아 움직일 정도로 생생하고, 이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작가의 표현은 얼마나 수려하고 감칠맛, 그리고 따스함으로 가득한지. 어디 그뿐인가. 한 개의 장마다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메시지는 마치 선인들이 조용하고 나긋하게, 그리고 은연 중에 서서히 알아가도록 만드는 깨우침까지 주고 있다. 쉽게 읽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인생의 깊은 지혜를 얘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장으로 맛보는 환상적인 장면들


아래에 옮겨 놓은 인용구는 겨울이 다가옴으로 따스한 남쪽 나라로 이동하려는 제비들에게 이 책의 주인공인 물쥐가 가지 말고 여기에서 함께 지내자며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인용구만 읽어도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감성이 얼마나 섬세한 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적절하고 수려하게 표현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총 4명(마리?)이라 할 수 있다. 듬직하고 배려심 많은 물쥐, 사랑스럽고 귀여운 두더지, 책임감 강한 오소리 아저씨 그리고 좌충우돌 말썽꾸러기 두꺼비.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재밌고 따스하며 때로는 스펙타클함과 동시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물론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동물을 의인화했지만, 중간에 실제 사람도 등장하다보니 그 경계가 묘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동화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 또한 당연한 재미가 된다.


여름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강둑을 묘사한 장면, 수달이 눈 그친 아침에 원시림에서 본 풍경을 들려주는 장면, 두꺼비가 감옥으로 끌려가는 장면, 두더지와 물쥐가 목신을 목격하는 장면, 집을 나갔던 어린 수달이 아빠와 다시 만나는 장면, 바닷쥐가 지중해를 여행한 일을 들려주는 장면, 주인공 동물들이 족제비들을 물리치는 장면 등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멋진 장면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멋진 장면으로 위의 장면들을 손에 꼽는다. 하나같이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두더지와 물쥐가 아기 수달을 구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만나는 풍경과 목신을 목격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환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 이런 영상을 만든다면 그 영상도 멋지겠지만, 이 책의 문장으로 맛보는 장면 또한 환상적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호주의 세계적 화가인 로버트 잉펜이 그린 삽화들은 이 책과 아주 잘 어울린다. 마치 그림을 보고 작가가 글을 썼다고 해도 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만약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강추다. 꼭 일독을 권한다. 어른이들을 위한 힐링 동화로 엄지 척!이다.               



곱씹어 볼만한 좋은 인용구     



들쥐가 제비들에게 물었다.


“떠나는 걸 계획하고 준비하는 게 재미있다고? 바로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어. 때가 되어 이 좋은 곳을 떠나가야 한다면, 너희들이 사라진 걸 아쉬워할 친구들 그리고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아늑한 집을 떠나게 되는 거잖아. 그래서 너희들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서, 온갖 골치 아프고 불쾌하고 색다르고 낯선 일들과 맞닥뜨리게 될 게 확실해. 그런데도 자기들이 별로 불행하지는 않은 것처럼 행동하겠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해 보거나 곰곰이 생각해 본 뒤에, 그러고서도 꼭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면...”     


두 번째 제비가 설명했다.


“그래, 네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해. 먼저 우리는 가슴 속에서 달콤한 불안감이 꿈틀거리는 걸 느껴. 그리고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지난 일들이 하나씩 차례로 되살아나. 지난 일들은 밤에는 잠잘 때 꿈속에서 날개를 퍼덕거려. 낮에는 우리와 함께 하늘을 빙빙 돌고 원을 그리며 날아다녀. 그러면 우리는 더는 못 참고 서로에게 물어보고 의견을 나눠서, 그 모든 게 진실인지를 확인해. 그러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여러 장소의 냄새와 소리와 이름들이 서서히 되살아나서, 우리에게 손짓하며 어서 오라고 불러.”      


세 번째 제비가 말했다.


“어느 해던가 ‘계속 남아 있으려’했던 적이 있어. 이곳이 너무 좋아져서 망설이다가, 다른 친구들이 나를 놔두고 떠나가게 내버려 두었어. 몇 주일은 아주 재미있었지. 그런데 그 뒤로는 그렇지 않았어. 아, 밤이 너무 길어서 얼마나 따분했는지 몰라! 낮에도 와들와들 몸이 떨리고 집에 햇빛이 들지 않더라고! 공기가 너무 습하고 차가운 데다가, 멀리까지 나가 봐도 벌레 한 마리 없었어! 아무리 애써도 소용이 없었어. 더는 버틸 배짱이 없어지더라고. 그래서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추운 날 날개를 펴고, 세차게 부는 동품을 타고 내륙으로 날아갔어. 커다란 산맥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폭설이 쏟아졌어. 죽을 힘을 다해 산을 넘는 데 성공했어. 저 아래로 펼쳐진 새파랗고 잔잔한 호수를 향해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갔어. 다시 따뜻한 햇살이 등에 와 닿았는데, 그 순간에 맛본 황홀한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처음으로 먹어 본 통통한 벌레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지난날은 악몽 같았고, 앞날은 더없이 행복한 휴일처럼 여겨졌어. 그 뒤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여러 주에 걸쳐 순조롭고 느긋하게 날아갔어. 용기가 생길 때는 꽤 오래 꾸물거렸지. 하지만 늘 나를 부르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어. 이미 한 번 경고를 받은 상태잖아. 또 다시 명령을 거부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     


다른 두 마리 제비들이 꿈꾸는 얼굴로 동시에 지저귀었다.


“그래, 맞아. 남쪽에서 부르는 소리! 남쪽 나라의 노래와 빛깔과 눈부신 대기! 너희들도 기억날거야.”      


물쥐가 제비들을 시샘하며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늘 이리로 되돌아오는 이유가 뭐야? 이렇게 초라하고 시시하고 하찮은 시골에 무슨 매력이 있다는 거지?”     


첫 번째 제비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때가 되면 또 다른 소리가 우리를 부른다는 걸 몰라서 그래? 무성한 왕포아풀(볏과에 속하는 풀), 촉촉이 젖은 과수원, 따뜻하면서 곤충들이 자주 드나드는 연못, 어린잎을 먹는 소, 건초를 만드는 풍경, 처마가 완벽한 집(제비들이 둥지를 짓기에 좋은 집) 주위에 몰려 있는 농장 건물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부른다는 걸 모르니?”     


두 번째 제비도 한마디했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동물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세 번째 제비가 덧붙였다.


“때가 되면, 우리는 이곳 영국의 시냇물에 동동 떠서 조용히 흔들리는 수련이 보고 싶어지면서 다시 향수병에 걸려. 그런데 오늘은 모든 게 어슴푸레하고 흐릿해서 아주 멀게만 느껴지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피가 다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야.” (207-210P)     



바다쥐가 물쥐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네 말인데, 나와 같이 가도록 하세, 젊은 친구. 한번 흘러가 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야. 여전히 남쪽 나라가 자네를 기다리고 있잖아. 모험을 떠나서 자네를 부르는 소리를 귀담아듣도록 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지나가 버리기 전에! 뒤에서 문이 탁 닫히고, 앞으로 씩씩하게 첫발을 내디디면 그걸로 끝이야. 그 순간에 자네는 낡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들어서게 되는 거라고! 먼 훗날 술잔 바닥이 마르고 연극이 끝나면 터벅터벅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고요한 강가에 앉아 넉넉하면서 아주 멋진 추억들을 벗 삼으면 되잖아. 자네는 젊으니까 길에서 나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거야.” (224P)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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