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이 더욱 그리워지는 2017년 추석에,
올 추석은 예년과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시간의 흐름도 그대로고, 추석의 분위기 또한 거의 변한 것이 없는데 말이죠...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제게 있어 소중한 두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말에 눈을 감으신 아버지. 그리고 올해 6월 저 먼 곳으로 떠나신 장모님. 이 두분이 더 이상 같은 하늘아래 계시지 않기에 본가와 처가를 방문한다는 설레임은 물론, 아무런 감상조차 느끼기 힘듭니다. 모두가 좋든 싫든 들뜰 수 밖에 없는 이 명절에...
연명지
바람이 불어왔고, 십이월
창밖의 모든 일이 당신 탓이라는 듯 익숙하게 창문을 닫아거셨네요
평생 말을 아끼시던 습관처럼
숨이 멀어지는데도 눈조차 뜨지 않으셨어요
아버지의 팔을 만지면 슬픔과 후회가 뿌리부터 곪아
눈물을 끌 수가 없어요
아버지의 손가락은 늘 베어져 있었지요
아픔을 감추려 전화도 짧게 끊으시던
염려와 미안함이 전해지던 마른손을 오래 접어둘래요
잘 도착하셨어요?
창안에 남겨진 우리들 같은 흉터를 보듬으며
언젠가, 안녕
아버지.
시인이자 제 형수이기도 한 연명지 시인은 작년말 아버지를 떠나 보내며 ‘잘 도착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요, 아버지. 잘 도착하셨고, 잘 지내고 계시나요? 장모님도 그곳에서 20년이 넘게 만나고 싶어하시던 장인어른을 만나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시나요? 잘 계신다면 물론 다행이겠지만, 그럼에도 당신들이 점점 더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두분의 미소, 온기, 좁았지만 그럼에도 넓었던 품이 너무나도 그리운 추석입니다.
연명지 시인 또한 올초에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녀는 그 이후의 시간 어머니를 더 많이 만나고 있다 합니다. 병상에 혹은 집에 아픈 몸으로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돌아가신 이후에는 어디든, 어느 곳에서든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유로워지신걸까요? 그렇다면 참 다행입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세상을 누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는 자신의 저서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포르투칼 리스본의 한 공원 벤치에서 우연히 어머니를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십오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말이죠. 그녀는 살아있던 때와 똑같은 모습과 말투로 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단다. 존, 너는 너무 잘 잊어버려. 이걸 알아야해. 죽은 사람은 몸이 묻힌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맞아요. 아버지는 분당의 메모리얼 파크에, 장모님은 처갓집 뒷산에 누워 계시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더 자주 당신들을 떠올리고 만나곤 합니다.
- 스산한 바람이 살짝 스쳐갈 때,
- 사람과의 이야기 중 문득,
- 글을 쓰려 생각을 펼치던 와중에 불현 듯,
- 이른 새벽 출근을 재촉하며 하늘의 달을 마주할 때,
- 아내가 어머니의 추억을 생각하며 눈물을 반짝일 때,
- 힘들어 한숨을 쉴 때,
- 책에서 아버지, 장모님이란 단어를 마주할 때,
- 길을 걷다 떨어지는 낙엽이 발에 걸릴 때,
-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일들을 떠올릴 때,
- 친구, 동료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발을 디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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