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편), 강의는 논리(로고스)와 감성(파토스)이 중요하다
그의 첫 이미지는 ‘선해 보인다’입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눈 때문이네요. 그의 눈은 꽤나 큰 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눈이 큰 동물치고 선해 보이지 않는 동물이 드물죠. 사슴, 소, 고양이, 강아지... 이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소’를 선택하겠습니다. 아무런 욕심이나 잔꾀를 부리려 하지 않는, 그냥 선함 그 자체인 ‘소’의 눈이 그의 이미지와는 잘 맞아 떨어지는 듯 보입니다.
그는 모보험회사의 교육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최소 월 40~50시간을 강의한다고 하니 강의로 밥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 그도 자신이 이렇듯 강의를 하며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영업사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교육팀 차장님에게 묻지마 스카웃(!)을 당함으로써 지금의 길을 걷고 있다 하네요.
정말 궁금했다고 합니다. 왜 일면식(一面識)도 없던 그 분이 자신을 교육팀으로 데리고 왔는 지 말이죠. 나중에 듣게 된 이유인 즉, 그의 눈이 ‘예뻐서’였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나 ‘수강태도가 너무 좋아서’였지 않을까요? 어쨌든 그는 자신의 크고 선해 보이는 눈 덕분에(혹은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강의를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강의를 천직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네요.
그런 그가 1인 기업가가 많이 활동하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력 UP 컨설팅 클래스>란 강의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강의를 주업으로 한다 할지라도 실제 강의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 잘하는 법’을 이야기한다니 말이죠. 실제로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무조건 고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깜냥을 초과하는 일이라며 말이죠. 하지만 2년 간에 걸친 연구원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며 생각했죠. 그저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한번 해보겠노라고 말이죠. 그의 용기있는 변심(?)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월 10일(토) 오후 2시부터 거의 6시까지 무려 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 유형선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아주 가끔’ 강의를 하는 입장이라, 구미가 돋는 주제 그리고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강의가 아닐 수 없었죠.
그는 자기 소개, 잠깐의 아이스 브레이킹에 이어 강의의 한자 정의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講義(강의)란 ‘공동체(같은 공통의 주제 혹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집단)의 옳은 것을 믿고 구조물을 짜 전달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즉 단순히 남의 앞에 서서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청중들이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논리와 감성 그리고 믿음으로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강의라는 겁니다. 좀 어렵죠?
여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위해 그리스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중 하나인 <수사학>에서 아래와 같은 3가지 테마를 가져옵니다.
첫 번째로 LOGOS(로고스)는 논리의 증명, 즉 논증의 합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순서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즉 기승전결(起承轉結)이 확실해야 함을 말하는 거죠. 기(起)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고, 승(承)은 그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끌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轉)은 살짝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이야기에 새로움을 가미시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결(結)은 대단원의 마무리를 짓는 것을 말하죠. 그는 옛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기승전결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좋죠?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에 마음이 답답해져 있는데, 우연히 정원의 매화 나무 향기로부터 이미 봄이 곁에 와 있음을 발견한다는 이야기. 짧은 싯구 안에서도 기승전결이 잘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강의 또한 자신이 발표할 주제를 기승전결의 구조로 잘 만들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보다 논리적으로 청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PATHOS(파토스)입니다. 파토스는 그리스어로 열정이나 고통 혹은 감정을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페이소스라 불립니다. 많이 들어보신 단어죠? 유형선 강사는 이 파토스를 ‘연민이 느껴지는 슬픔’이라 표현합니다. 강의와 파토스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는 다시 시 한편을 예로 듭니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무명시인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입니다.
이 시는 파리 지하철 공사에서 공모한 시 콩쿠르에서 8천편의 응모작 중 1등으로 당선된 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류시화 시인의 시 모음집 <시로 납치하다>에 실려 소개(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네요)되었는데, 처음에 오르텅스 블루는 자신의 시가 한국에 알려지는 것에 반대했다 하네요. 왜냐하면 <사막>이란 시에서 ‘너무나’란 단어가 자신이 겪은 절절한 외로움을 표현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를 경우 시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고 합니다.
<사막>이란 시를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야말로 절절한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파토스이자 페이소스, 즉 연민이 느껴지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죠. 만약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면, 또는 공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 강의는 청중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게 될 것입니다. 좋은 강의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분명 가슴을 적시는 강의는 될 것입니다.
청중들과의 공감을 위해 그는 강의에 자신의 힘들었던 시간,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들을 밝히고 공유할 것을 권유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사적인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될 경우, 강의의 집중도는 물론이고, 청중들의 마음을 여는 데 큰 힘이 될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하편에서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f.funcheap.com/dinner-lecture-cancer-crosses-color-line-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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