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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19. 2018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 유형선의 강의 잘 하는 법

#1(상편), 강의는 논리(로고스)와 감성(파토스)이 중요하다


눈이 '예뻐' 강의를 시작하다!


그의 첫 이미지는 ‘선해 보인다’입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눈 때문이네요. 그의 눈은 꽤나 큰 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눈이 큰 동물치고 선해 보이지 않는 동물이 드물죠. 사슴, 소, 고양이, 강아지... 이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소’를 선택하겠습니다. 아무런 욕심이나 잔꾀를 부리려 하지 않는, 그냥 선함 그 자체인 ‘소’의 눈이 그의 이미지와는 잘 맞아 떨어지는 듯 보입니다.


그는 모보험회사의 교육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최소 월 40~50시간을 강의한다고 하니 강의로 밥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 그도 자신이 이렇듯 강의를 하며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영업사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교육팀 차장님에게 묻지마 스카웃(!)을 당함으로써 지금의 길을 걷고 있다 하네요.


정말 궁금했다고 합니다. 왜 일면식(一面識)도 없던 그 분이 자신을 교육팀으로 데리고 왔는 지 말이죠. 나중에 듣게 된 이유인 즉, 그의 눈이 ‘예뻐서’였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나 ‘수강태도가 너무 좋아서’였지 않을까요? 어쨌든 그는 자신의 크고 선해 보이는 눈 덕분에(혹은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강의를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강의를 천직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네요.



유형선 강사와 그의 가족들. 가족 모두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의 저자기도 하다



강사 유형선의 <강의력 UP 컨설팅 클래스>


그런 그가 1인 기업가가 많이 활동하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력 UP 컨설팅 클래스>란 강의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강의를 주업으로 한다 할지라도 실제 강의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 잘하는 법’을 이야기한다니 말이죠. 실제로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무조건 고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깜냥을 초과하는 일이라며 말이죠. 하지만 2년 간에 걸친 연구원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며 생각했죠. 그저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한번 해보겠노라고 말이죠. 그의 용기있는 변심(?)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월 10일(토) 오후 2시부터 거의 6시까지 무려 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 유형선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아주 가끔’ 강의를 하는 입장이라, 구미가 돋는 주제 그리고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강의가 아닐 수 없었죠.



그는 자기 소개, 잠깐의 아이스 브레이킹에 이어 강의의 한자 정의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講義(강의)란 ‘공동체(같은 공통의 주제 혹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집단)의 옳은 것을 믿고 구조물을 짜 전달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즉 단순히 남의 앞에 서서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청중들이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논리와 감성 그리고 믿음으로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강의라는 겁니다. 좀 어렵죠?


여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위해 그리스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중 하나인 <수사학>에서 아래와 같은 3가지 테마를 가져옵니다.



 * ETHOS(에토스)       믿을 만한 인품

 * PATHOS(파토스)     청중의 감성

 * LOGOS(로고스)       논증의 합리성



* LOGOS(로고스)


첫 번째로 LOGOS(로고스)는 논리의 증명, 즉 논증의 합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순서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즉 기승전결(起承轉結)이 확실해야 함을 말하는 거죠. 기(起)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고, 승(承)은 그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끌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轉)은 살짝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이야기에 새로움을 가미시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결(結)은 대단원의 마무리를 짓는 것을 말하죠. 그는 옛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기승전결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종일 헤매어도 봄은 어디에                         --------  ()

미투리(짚신끌고 천태산 올라도 구름 뿐이네      --------  ()

정월의 매화 그늘 밑을 서서히 걸을 새                --------  ()

벌써 봄은 가지 끝에 향내를 풍기누나            --------  ()



좋죠?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에 마음이 답답해져 있는데, 우연히 정원의 매화 나무 향기로부터 이미 봄이 곁에 와 있음을 발견한다는 이야기. 짧은 싯구 안에서도 기승전결이 잘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강의 또한 자신이 발표할 주제를 기승전결의 구조로 잘 만들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보다 논리적으로 청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겁니다.



* PATHOS(파토스)


두 번째는 PATHOS(파토스)입니다. 파토스는 그리스어로 열정이나 고통 혹은 감정을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페이소스라 불립니다. 많이 들어보신 단어죠? 유형선 강사는 이 파토스를 ‘연민이 느껴지는 슬픔’이라 표현합니다. 강의와 파토스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는 다시 시 한편을 예로 듭니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무명시인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입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이 시는 파리 지하철 공사에서 공모한 시 콩쿠르에서 8천편의 응모작 중 1등으로 당선된 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류시화 시인의 시 모음집 <시로 납치하다>에 실려 소개(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네요)되었는데, 처음에 오르텅스 블루는 자신의 시가 한국에 알려지는 것에 반대했다 하네요. 왜냐하면 <사막>이란 시에서 ‘너무나’란 단어가 자신이 겪은 절절한 외로움을 표현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를 경우 시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고 합니다.


<사막>이란 시를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야말로 절절한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파토스이자 페이소스, 즉 연민이 느껴지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죠. 만약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면, 또는 공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 강의는 청중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게 될 것입니다. 좋은 강의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분명 가슴을 적시는 강의는 될 것입니다.


청중들과의 공감을 위해 그는 강의에 자신의 힘들었던 시간,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들을 밝히고 공유할 것을 권유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사적인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될 경우, 강의의 집중도는 물론이고, 청중들의 마음을 여는 데 큰 힘이 될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하편에서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f.funcheap.com/dinner-lecture-cancer-crosses-color-line-sf/)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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