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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r 26. 2018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3편)

#21, 채사장의 <열한 계단>을 읽으며 - 이상적 인간 "체 게바라"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1편)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2편)



이상과 현실 사이


청년은 포병장교로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는 포병장교로 지원했는데, 그 배경에는 현대 언어분석 철학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 자신을 실험해 보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세계대전에 포병장교로 참전했고, 포탄이 난무하는 최전방 관측소에 자원해 복무했죠. 그렇게 수많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살아남아 결국 <논리철학논고>라는 위대한 창작품까지 만들어 내게 됩니다.


청년은 대학시절부터 비트겐슈타인같은 담대함을 닮고 싶어했습니다. 또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을 것이라 말이죠. 하지만 그는 군대라는 곳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꿈꾸던 군대와 현실의 군대는 달랐기 때문이죠. 부대는 그저 생활의 공간이었고, 현실을 살아가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심합니다. 자신의 이념적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해 임시로 이 곳에 온 것처럼 행동하겠노라고.


그러자 군생활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됩니다. 윗사람들은 매사에 그의 수동성을 탓하며 적극성, 능동성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에 부응하지 못하며 결국 자질구레한 일만 담당하는 정훈장교로 밀려나게 되죠. 그 곳에서 무의미한 시간만 보내던 그는 우연히 안병장을 만나게 됩니다. 사회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던 안병장은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코드가 맞는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지게 됩니다.



대표적 이상적 인간, 체 게바라


군대 부적응자였던 그와 다르게 안병장은 부대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임, 후임 할 것없이 그를 좋아하고 따랐죠. 그런 그에게 한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든 그의 전투화는 항상 깨끗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청년이 묻자 안병장은 이렇게 답합니다. 처음엔 군대란 곳이 힘들고 의미없다고 여겨져 그저 시간만 때우려 했다고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보람은 물론 성취도 없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역해 사회에 돌아가면 2년의 시간들이 버려진 시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렇게 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이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겠다 결심했고, 먼저 자신의 전투화부터 제대로 닦자 했다는 겁니다.


청년은 그런 안병장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합니다. 군대뿐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는 권위주의, 관료주의, 전체주의적 폭력주의에도 그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때 마침 안병장이 이상적 인간이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물어 오자, 그는 20세기 남미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체 게바라는 1928년 5월 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건축가인 아버지와 스페인 귀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트 라파엘 게바라 데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로 보통 ‘에르네스토’라 불렸는데, ‘체(Che)'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혁명군에 가담하면서부터였죠. ’체‘는 아르헨티나어로 ’어이‘, ’친구‘, ’동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네요.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로 자라 납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어릴 적 앓은 천식이 계기가 되어 의학을 전공하게 되죠. 그리고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1951년, 24살의 체 게바라는 선배 한명과 함께 남미 종단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에서 우연히 남미 토착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 각국의 군사정권과 손 잡은 미국의 침략적 자본주의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7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체 게바라는 자신이 결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죠. 또한 자신이 본 억업과 착취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필요하며, 무력을 통한 혁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2년 후 과테말라를 거쳐 멕시코에서 오랜 동지가 되는 피델 카스트를 만나게 되죠. 피델과 함께 혁명군을 이끌며 쿠바에서 전쟁을 시작한 체는 마침내 2년 만에 군사정권을 물리치고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쿠바를 안정적으로 이끌려는 피델에 비해, 남아메리카를 사회주의로 통합하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이 회복된 세계를 꿈꾸던 체 게바라는 여러 면에서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다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당시 사회주의 혁명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던 아프리카의 콩고로 향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간신히 몸을 피해 다시 남미의 볼리비아로 밀입국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혁명은 쉽지 않았죠. 미국 CIA와 볼리비아 군사정권에게 쫓기며 무려 10개월 동안 밀림을 헤매던 체 게바라는 총상까지 입은 채 체포됩니다. 그리고 허망하게도 사살되고 말죠. 그의 나이 고작 마흔이었습니다.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가 되자


체 게바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그가 이상주의자로써, 특히 인간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노동의 신성한 의미를 깨달아 일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죠. 이를 위해 절제를 강조했고, 스스로도 엄격한 생활을 했습니다. 구겨진 군복, 구멍 난 양말은 물론이고 행동면에서도 늘 앞장 서서 일했으며, 전투 중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죠. 그는 그야말로 이상을 꿈꾸던 이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짧은 생애를 통해 그는 세상의 억압받고 소외된 민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남겼습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너의 자유와 권리는 딱 너가 저항한 만큼만 주어진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가슴을 찾아 헤맬 줄 알아야 한다그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심지어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은 지 10일 후, 피델 카스트는 쿠바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체 게바라의 신념의 가치인간성의 가치사고의 가치도덕성의 가치정서의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그의 가치는 인류 보편적의 가치입니다.”



청년은 안병장과 체 게바라를 통해 이상이라는 여섯 번째 계단에 오릅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4편)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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