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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02. 2018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4편)

#21, 채사장의 <열한 계단>을 읽으며 - 자본주의 본질 <공산당선언>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1편)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2편)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3편)



누군가의 돈을 번다는 건


군을 전역하고 맞이한 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처음 발을 디디게 된 사회에서는 니체도, 체 게바라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청년이 배우고 공부했던 정의, 신념, 철학, 이념은 신기루와도 같았습니다. 현실은 오롯이 자본주의란 단일 종교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철저히 경제적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돈을 벌어 차도, 집도 사고 가정까지 꾸밈으로써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 다짐하죠. 그러기 위해 재테크에 열중하며 빚을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법에도 눈 뜨게 됩니다. 그런 그를 옆에서 바라보던 누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투자를 통해서 누군가가 돈을 번다는 건, 다른 측면에서 누군가가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네가 돈을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사고, 그에 대한 이자를 세입자의 월세로 지불하고 있다면, 그 월세만큼 세입자의 노동을 착취한 것일 수도 있잖아. 모두가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는 없어. 누군가가 일하지 않고 이익을 얻는다면, 다른 어디에서 누군가는 자기 노력의 대가를 빼앗기고 있는 거야.”     


청년은 반박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라고. 시스템이 변하지 않을 거라면, 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라며 화를 냅니다. 누나는 안타깝게 말합니다. “동생이 짧은 시간동안 많이 변했구나.”라고.     



자본주의의 본질 <공산당 선언>


그는 생각합니다. 과연 내가 변한걸까?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그는 사회 시스템, 즉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발길을 끊었던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도서관에서 그가 펼친 책은 19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 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만큼 자본주의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은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본과 노동의 현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은 크게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론적 측면으로는 자본주의와 계급 갈등에 대한 내용을 분석하고, 실천적 측면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자본주의의 주인공은 자본가, 즉 부르주아 계급이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

2) 부르주아 계급의 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의 노동으로부터 나온다. 고로 부르주아는 부의 증대를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더욱 더 핍박한다.

3) 마침내 프롤레타리아는 생존을 위해 봉기하고,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세상에 이르게 된다.     


비록 공산주의 도래에 대한 예언이 틀렸음에도, 그들이 제시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1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씁쓸한 진실입니다.     


“노동자는 이제 기계의 부속물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쉽게 획득한 기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산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자신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존수단으로 제한된다.”     


청년은 ‘현실’이라는 일곱 번째 계단에 올라섰지만, 자본주의의 현실 앞에 방황을 거듭하게 됩니다.          



삶에 감사해


그러던 어느 날, 직장동료들과 떠난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에서 큰 사고를 당합니다. 천만다행으로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동료를 잃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그는 직장도 그만둔 채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됩니다. 그는 현실도, 이상도, 방황까지도 어쩔 수 없이 멈춰야만 했습니다.     


이때 삶의 위안이 되어준 것은 우연히 듣게 된 아르헨티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Gracias a la vida)’였습니다. 그녀의 음성은 귀가 아닌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듯 했습니다. 그녀는 깊고 풍부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삶에 감사해’라고요.     


삶에 감사해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어

흑과 백을 온전히 구분하게 하고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게 하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내 님을 찾을 수 있게 했네.     

삶에 감사해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어

밤과 낮에 우는 귀뚜라미와 카나리아의 소리를 들려주었고,

망치 소리물레방아 소리개 짖는 소리빗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 귀에 새겨 넣게 했네.     


삶에 감사해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소리와 문자를 주어

어머니친구형제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가 걸어갈 영혼의 길을 밝혀줄 빛이 되었네.     


                                                   --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해)’ 중에서 --     


소사의 노래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속삭입니다. 삶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고통까지도 인내하라고 말이죠. 그게 바로 용기라고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현실을 묵묵히 걸어가되, 언젠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이상도 함께 품고 가라고 소사는 조언합니다. 또한 운 좋게 멈춰설 기회를 얻었으니 이 시간을 활용해 그동안 놓치고 온 것들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라고요.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삶이 진정 우리에게 주고 싶어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소사는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이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 노래합니다. 그녀의 노래 ‘그 사소한 것들(Aquellas Pequenas Cosas)’의 가사를 잠깐 읽어 보시죠.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건

언젠가 스쳐지나갔던 사소한 기억들.

함께 걷던 골목길에 핀 장미

낡은 서랍 속의 편지

그것들은 마치 도둑처럼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살그머니 우리 곁에 다가와서는     


바람이 낙엽을 이리지러 흩날리듯

우리의 마음을 휘저어 놓겠죠.

그러다가 문득

그 기억들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면

더 이상 함께일 수 없는 우리는

눈물짓고 있겠죠.     


                                      -- ‘Aquellas Pequenas Cosas(그 사소한 것들)’ 중에서 --          


그는 소사의 도움을 얻어 삶이라는 여덟 번째 계단에 올라 섭니다.          



(5편에 계속)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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