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20
오늘은 간만에 경제용어 공부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혹시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와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들어본데다 내용까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면, 당신은 어디가도 빠지지 않을 경제박사~! 혹 모르신다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아는게 이상한 걸 수도 있거든요. 저렇게 어려운 용어를 어떻게...^^
위의 두 용어는 소비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하나씩 알아볼께요. 먼저 ‘파노플리 효과’는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 유사한 급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아진다는 환상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소비의 사회』에서 강조한 개념인 ‘파노플리(Panoplie)’는 애초에 기사의 갑옷과 투구 등의 한 벌의 세트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서 느끼는 집단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입해야 하는 쇼핑 리스트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이 현상은 구매한 물건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경제적 부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소위 명품(名品)에 대한 식지 않는 인기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상류층 소비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비 행태로 인해 값비싼 귀금속류나 고급 자동차, 유명 미술품 등은 요즘처럼 경제 상황이 악화된다 할지라도 그 수요가 감소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최고급 사치품을 구입하는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명품은 자본주의 게임의 경품이다
이 두 경제용어를 통해 우리는 ‘명품’이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는데요, 여러분은 명품하면 어떤 단어들이 연상되시나요? ‘고가의’, ‘고급’, ‘외국 브랜드’ 그리고 ‘사치’, ‘허영’...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설마 ‘꼭 필요한’, ‘유용한’, ‘실속있는’ 등의 단어들이 연상되진 않겠지요? 아마 명품을 향한 성별의 편차는 있을겁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좀 덜하지만, 여자들의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개 정도’는 소유하고픈 욕망이 있는 듯 싶습니다. 사실 돈만 많다면 명품이 대수겠습니까? 집앞 수퍼마켓 가듯 명품매장에 가서 맘에 드는 것 집어오면 끝일테니까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명품은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죠.
우리는 ‘명품’이란 단어가 진짜 ‘명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럭셔리 브랜드 상품’이라 표현해야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명품이라 부르는 이유는 명품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사회 혹은 미디어가 창출한)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명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반인들과 자신을 구별하고, 더 나아가 신분상승과도 같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명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려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우리가 명품을 원한다는 것, 그리고 한 두 개라도 소유하고픈 욕망은 부자, 즉 가진 자가 되고픈 소망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신분상승 체험하기’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명품은 소비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확실한 아이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본주의란 소비에 의해 지탱되고 커나가는 자본주의를 의미하는데요, 여기에서 소비는 미덕이고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비자본주의에서는 소비를 가장 잘 그리고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소유한 재화의 양과 질이 그 사람의 신분과 정체성을 결정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은 부자가 되기를,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기를 욕망하는 것입니다. 『나는 명품이 좋다』의 저자 나카무라 우사기는 이런 소비자본주의에 대해 “나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란 ‘부자라는 영광의 골을 향해 맹렬하게 싸우는 게임’이다. 그리고 명품은 그 게임의 경품이다.”라고 비장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중에서도 소비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본주의에서 소비는 혈액과도 같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활발한 소비를 통해 사회가 선순환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지금의 극심한 불황도 소비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죠.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소비도 활성화된다면 다시 호황의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소비가 영원히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또한 계속해서 불황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걸까요?
대답은 ‘Yes & No’입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 불황이 이어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경기는 자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소비자본주의에서 소비는 엄밀히 말해 혈액이라기 보다는 ‘거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세상의 자본주의 경제기반은 튼튼한 편이지만, 그 위에 높이 쌓여진 고층빌딩들은 ‘거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꼭 필요한 필수품 외에 각종 넘쳐나는 물건들, 즉 ‘거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백화점, 대형마트의 팔리지 않는 수많은 상품들은 어디로 갈지? 거의 다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 불태워집니다. ‘거품’ 경제는 ‘거품’을 통해 ‘거품’처럼 부풀려지게 됩니다. 물가가 왜 이토록 비싸졌는지 아시나요? 이렇게 버려지는 비용까지도 가격 안에 포함되어 책정되기 때문이며, 결국 소비자들이 온전히 그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죠. 왜 여러 회사에서 이렇게나 짧은 주기로 경쟁하듯 신제품을 쏟아내야 하는걸까요? 그리고 구형이 되버린 스마트폰들은 왜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폐기되어야 하는걸까요? 사회적 낭비이고 거품 아닐까요? 이번엔 패션을 예를 들어보죠. 패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소비자본주의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소비를 확대하기 위한 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패션은 유행을 만들어내죠. 유행이 지났다는 것은 그 상품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말과도 같으며, 결국 그 상품이 향하는 곳은 쓰레기장이 되고 맙니다. 철학자 김용규는 『철학까페에서 시 읽기』에서 패션이 만들어 내는 유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유행은 그것이 의상이든, 가구든, 주택이든, 자동차든, 언뜻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입니다. 생산자가 지속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사용가치가 남아 있는 물건이라도 새 상품을 위해 폐기 처분하는 통로가 필요한데, 유행이 바로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때문이지요. 또 소비자는 유행하는 새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소유와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이란 쾌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유행은 끊임없이 제품을 생산해내야 하는 기업의 생산 메커니즘과 소비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비 이데올로기가 어울려 창출한 후기 자본주의의 자체 생존 방식에 불과합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멈출 줄 모르는 컨베이어 시스템 앞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새는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부단히 소비하는 구조적 장치로 전락했고, 그들의 삶은 조작된 욕망 앞에서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하루살이처럼 무의미한 소모품으로 퇴락했지요.
소비자본주의를 살아가며 소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본주의가 우리를 모르는 사이에 소비 중독에 걸린 환자처럼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소비와 소유를 통해 얻는 기쁨이 정말 행복인지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