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21
우리는 지금 불황과 저성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업은 물론 개인사업, 자영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서 빨리 경기가 좋아져야만 지금의 고통이 해소 혹은 완화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말은 곧 정체되어 있는 경제가 성장한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 또한 예산 증액, 소비촉진,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자,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제성장, 오늘은 이 경제성장이란 키워드에 대해 다른 각도로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개 한 국가의 경제성장은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으로 측정되는데요, 이는 국적 상관없이 국내에서 이루어진 모든 생산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GDP 수치를 전년도와 비교, 증감된 비율을 우리는 ‘경제성장률’이라 부르죠. 즉 경제성장률이란 국내총생산이 얼마나 증가하였는지를 알아보는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GDP를 총 인구수로 나눌 경우 1인당 GDP가 되는데, 이 수치는 한 나라의 국민이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는 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1인당 GDP가 약 4만 달러를 넘어서면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아래의 표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를 1970년부터 현재까지 정리해 놓은 표입니다. 간단하지만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e-나라지표)
먼저 경제성장률부터 살펴보죠. 1970년부터 외환위기 바로 전년도인 1997년까지 무려 28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거의 두 자릿수에 육박했죠. 실제로 11번은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고, 1973년에는 무려 14.8%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성장률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성장률은 -5.5%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는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외환위기 때문이었죠. 당시 IMF에서는 고작(?) 195억 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고강도 긴축 및 고금리 유지, 기업을 비롯한 금융권 구조조정 등 한 국가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부정적인) 지나친 사항들을 요구했었죠. 그 덕(?)에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가 많이 망가진 거고요.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이후 경제성장률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기록하기 힘들어졌는데, 이는 과거가 소위 굴뚝으로 대변되는 산업화 사회로 모든 산업분야가 고르게 성장하는 사회였음에 반해 2000년대부터는 IT와 같은 고집약적, 고부가가치의 전자, 인터넷, 금융 등 일부 산업만이 주로 성장하는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포탄이 전 세계를 강타하자, 성장률은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게 됩니다. 2008년 2.9%, 2009년에는 0.7%로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만 면하게 되죠. 그 이후부터는 3%대, 그리고 올해는 2% 중반의 저성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1인당 GDP를 살펴볼까요? 경제성장률과 비교하여 대한민국의 1인당 GDP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70년~97년까지 매년 7~8%대의 성장세를 보이다 외환위기였던 98년에는 전년도보다 96만 원 감소한 1,463만 원을 기록함으로써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그리고 평균 4~5%대의 성장 후 금융위기에는 다시 08년 2.1%, 09년 0.2%로 성장이 정체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이후로 3%대의 성장을 하지 못함으로써 정부에서 원하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죠.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 추이를 살펴봤는데요, 저는 경제성장에 대해 2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이제 고성장의 시대는 끝났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70~90년 중반까지 고성장을 기록했다가 외환위기를 거친 후 중간 성장 그리고 금융위기를 통과하며 이제는 저성장에 들어섰음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과거의 고성장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무역이 활성화됨으로써 미국과 유럽이 선도하고, 나머지 국가들도 그에 발맞추어 시작된 것인데요, 여기에는 중국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낮은 인건비가 전 세계 제품의 원가를 낮춤으로써 소비자본주의가 정착하는데 한 몫을 했다 할 수 있죠. 하지만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가자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보다 낙후 된 국가로 글로벌 공장들이 옮겨가고 있으며, 이제는 아프리카 개발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죠. 만약 아프리카까지 개발된다면 그때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달뿐 아니라 금성과 화성도 개발해야만 되는 것 아닐까요? 그 와중에 자행된 수많은 환경파괴는 과연 경제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위해야만 하는 걸까요?
둘째, 만약 고성장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서민들을 위한 풍요의 시대가 오긴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인 소득 불균형이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1984년 한국의 1인당 GDP(명목)는 193만 원이었지만, 약 30년이 흐른 2014년에는 2,945만 원을 기록했죠. 무려 15배를 넘는 성장입니다. 이 수치로 따진다면 모든 국민이 30년 전에 비해 15배는 더 윤택하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걱정 근심이 많아지고 삶도 팍팍해지지 않았나요? 과연 이것이 경제성장이 준 선물인 걸까요?
또한 경제수치의 함정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설사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돌파, 언론에서 아무리 선진국에 들어섰다 샴페인을 터트릴지라도, 국민 모두의 소득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열 사람이 있는데 한 명은 100억을 벌고, 나머지 아홉 명은 1,000만 원 밖에 벌지 못하더라도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10억입니다. 수치만 보면 정말 잘 사는 나라, 슈퍼 울트라 프리미엄 선진국인 셈입니다. 호주의 진보 경제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그의 저서 <성장숭배 –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에서 경제성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한 해에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극히 평범한 생각에서 나온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장에 대한 우리의 강박관념은 사람들이 영험한 마력이 있다고 주물(呪物)을 받들고 모시는 집착이나 애착처럼 보인다. 소득 증대는 세상 사람들이 갈구하고 궁리하는 인생의 목표 그 자체가 되었지만, 과연 우리들은 40년 혹은 50년 전에 비해 지금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경제성장이라는 관념은 이제 사람들을 흘리는 망상으로 둔갑해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조직하고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망상체계(체계화된 망상)로 진화했다.
우리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경제성장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성장만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현재의 경제체계에서 그저 성장만 추구하는 정책은 결국 소득 불균형의 심화만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고루 잘 사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저 노후연금으로 기십만원 더 준다고 해서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습니다. 만약 정부에서 고성장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들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됨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이 경제성장에 대한 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어쩌면 저성장의 시대에는 맹목적인 고성장보다는, 힘들더라도 조금 더 같이 잘 살기 위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나눔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