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독서방 서울-안동 연합 모임을 다녀와서
온통 빨갛고 노란 원색의 낙엽들이 아스라이 하나둘씩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짧아 아쉬움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을날의 막바지,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지난 주말, 1박 2일로 경북 안동에 다녀왔습니다. 아주 아주 중요한 행사가 하나 있었죠. 바로 에코독서방 안동점과의 합동 연합 모임이 안동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에 대한 시작은 6개월 전인 지난 5월 경기도 안성에서 열린 에코독서방 오프에서였죠. 그때 에코독서방 안동점의 세 분이 참석하면서 가을에는 안동에서 모임을 하자는 이야기(관련 글 ‘매일 축제처럼 살 수 있다면’)가 나왔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 제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요. 기대를 듬쁙 안고서 말이죠.
그리고 6개월이 지난 11월 초의 주말, 가을 햇살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가을의 마지막 모습을 확실히 즐기라는 듯, 화사함이 온 누리에 가득 차 있었죠. 오후 3시 좀 안되어 서울팀 5명과 안동팀 2명이 봉정사(鳳停寺) 입구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낙엽을 밟으며 봉정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난 7월 유네스코에서 세계 7대 사찰(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중 하나로 선정한 절이자,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한 당시,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을 보고 싶다는 희망에 따라 안내되었다는 절. 오래된 건축물들과 더불어 불타는 듯한 단풍들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해설사 분의 이야기를 들으랴, 사찰 구경하랴, 단풍 즐기랴 너무 바쁘더군요. 의외였던 건 절에서 음악회 개최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이른바 ‘산사 음악회’라는 건데 안동에서는 주말이면 절, 서원마다 이런 문화 프로그램이 일상화되어 있다 하네요. 다른 일정이 없다면 음악과 함께, 산사와 가을의 정취를 즐겨도 참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임청각(臨淸閣, 보물 182호).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 선생의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10명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자,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99칸의 집으로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이라고 합니다. 당시 하인의 수만 408명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2016년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청각은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언급할 정도로, 임청각은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살림집이었던 만큼 고택체험도 해볼 수 있다 하네요.
저녁 6시가 가까워오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최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라 하는 월영교(月映橋)로 갑니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해진 월영교.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걷기 위해 나와 있습니다. 다소 서늘한 낙동강의 강바람이 얼굴을 스칩니다. 맑고 시원하네요. 천천히 다리를 건너니 양쪽으로 호반 나들이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강을 따라 산책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떨어지는 낙엽들과 함께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네요. 시간만 많다면 그냥 천천히 걷기만 해도 절로 힐링이 될 것 같습니다.
월영교의 야경을 뒤로한 채, 이제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갑니다. 안동에는 간 고등어 정식, 헛제삿밥과 같은 유명 먹거리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죠. 바로 ‘안동 찜닭’입니다. 안동 구시장 내로 들어가면 안동찜닭 골목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다 찜닭 가게들이 위치해 있죠. 우리는 그중 한 집의 2층으로 올라갑니다.
드디어 안동팀도 전원 합류했습니다. 총 12명이 밝은 얼굴로 앉았습니다. 식사가 나오기 전 간단히 자기소개를 합니다. 처음 보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에코 카페에서 독후감과 댓글로 만났기 때문에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더 앞섭니다. 잠시 후 푸짐한 찜닭이 나옵니다. 역시 안동찜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각을 자극합니다. 살짝 달달한 맛과 함께 적당히 매운맛, 그리고 감칠맛이 혀를 희롱합니다. 모두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먹는데만 집중해야지요.
식사 후 풍산읍으로 자리를 옮겨 고택을 리모델링하여 카페로 만들어 놓은 ‘풍전’이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합니다. 읍내에 이런 멋진 곳이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멋진 풍광과 세련됨이 살아있는 공간이네요. 이곳에서 에코 특유의 ‘반말 게임’을 합니다. 어색함을 없애고 금방 친해지는 데는 역시나 이 게임이 최고입니다. 몇 번 순번이 돌자 모두 형, 누나, 언니, 오빠 그리고 동생이 됩니다. 57세(에코 나이 기준) ‘왕언니’ 청라 누나도 아주 즐거워 보이네요.^^
10시쯤 일어나 숙소로 이동합니다. 숙소는 안동점 운영자인 알콩달콩의 친정집입니다. 시골집인데 현재는 비어 있다 하네요. 상을 차린 후 40도짜리 안동소주를 한잔 받아 마십니다. 캬~ 그러자 누군가가 그러네요. 안동 보드카라고 말이죠. 사람들의 얼굴을 보다 보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 처음엔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다가 이제는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얘기 나누고 할 수 있다니 말이죠. 더군다나 서울과 안동이라는 지역적 제약을 넘어, 이렇듯 교류할 수 있다는 건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의 안동 오프에 이어, 이번 11월의 안동 오프. 말로만 회자되었던 일들이 실제 현실이 되어 즐기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기쁨이자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인 양 우리들의 수다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내일 일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잠을 청해야만 했죠.
이튿날은 더 화사하고 따스한 날이 이어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부용대(芙蓉臺)를 시작으로,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썼다는 장소인 옥연정사(玉淵精舍), 그리고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인 병산서원까지 눈 호강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하회마을 입구의 한 식당에서 안동 명물인 간고등어 정식을 정신없이 ‘흡입’했습니다. 아침을 먹은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어쩜 이렇게 잘 들어 가는지... 식사 후 하회마을을 천천히 돌다 보니 벌써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워집니다. 서울팀 2명은 버스 예약 시간 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이별의 허그를 하고 터미널로 향합니다.
이후 몇 명은 꼬꼬 누나의 안내로 최근에 청와대를 모델로 지어졌다는 경북도청을 방문했습니다. 검무산을 배경으로 너른 벌판에 지어진 도청사는 그야말로 제가 봐도 명당자리에 위치한 듯싶더군요. 화려해 보이는 까닭에 너무 비싼 돈을 들여 지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점은 시민들이 언제든 와 즐길 수 있도록 공간들을 잘 배치해 놓았다는 겁니다. 웬만한 장소보다 더 좋을 듯싶더군요. 실제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도 제법 되었고요.
도청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안동에서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지난 1박 2일의 시간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받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감동이었습니다. 사실 에코 독서방으로 연결된 작은 끈이 아니었다면, 우린 그저 남남으로 살아갔을 겁니다.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겠죠. 하지만 이런 관계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이렇듯 만남을 통해 서로를 직접적으로 보고 느끼게 됨으로써, 우리의 관계는 앞으로 더 돈독해지고 깊어지게 될 겁니다. 관계는 관계하는 것만큼 관계다워지는 것이니까요.
헤어지기 전 안동점 운영자 알콩달콩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는 서울과 안동의 중간 지점에서 다시 한번 연합 모임을 가지자고 말이죠.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관계의 씨앗은 따스한 마음의 온기와 관심을 받음으로써 새싹을 틔우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화사한 꽃으로 피어남으로써 우리의 관계에 진한 향기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의 만남을 고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수고와 관심, 배려를 아끼지 않은 에코독서방 안동점의 알콩달콩, 토마 후나 형, 꼬꼬 누나, 청라 누나, 아침햇살, 편안함 누나, 금결아빠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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