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24
지난 토요일 제가 운영하는 경제/경영/인문의 밸런싱 프로그램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의 9월 오프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번 과제는 ‘버킷 리스트 30가지 발표하기’ 였죠. ‘버킷 리스트’, 잘 아시죠? 우리 말로 해석하자면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의 목록’ 정도 되겠네요.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살아오며 한두번 이상은 작성 해보셨을겁니다. 그리고 종이 위에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마음 속으로 생각해 놓은 일들이 최소 열가지 이상은 되실겁니다. 그쵸?^^
'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단어는 2007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로 유명해졌는데요, 당시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두 노장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죠. ‘버킷 리스트’란 단어는 ‘죽다’라는 속어인 ‘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교수형을 집행할 때 올가미를 목에 건 죄수가 양동이(bucket) 위에 올라서면, 사형집행인이 그 양동이를 걷어 찬다(Kick the bucket)는 의미로써 이 ‘버킷 리스트’란 말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유래만 놓고 본다면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단어라 하겠습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두 노인은 죽음을 앞둔 채 병원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하고, 못다한 일들을 실행하기 위해 마침내는 병원을 탈출하죠.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 하나씩 이뤄가는 ‘버킷 리스트’는 이렇습니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화장한 재를 깡통에 담아 경관 좋은 곳에 두기 등등.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할 수 있을 때 바로 지금 당장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라는거죠.
오프모임에서 <에코라이후> 멤버들의 ‘버킷 리스트’ 발표를 들으며 재미있는 사실 몇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의외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이었죠. 항목별로 보면 유사한 부분도 많지만, 전체적인 줄기로 보면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버킷 리스트에 목표라는 개념을 포함시킴으로써 꼭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책임감이 배어져 있었고, 반대로 여자의 리스트에는 목표가 아닌, 주로 사는 동안 꼭 해보고 싶다는 희망들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뭐라고할까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남자는 숫자 혹은 달성여부로 표현되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지만, 여자는 자신의 마음(내면)이 이끄는 일들을 목록에 포함시킨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위의 큰 차이 외에도 남자는 집, 돈, 자격증과 같은 소유에 대한 항목을 리스트에 넣고 있지만, 여자는 소유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돈의 목표를 정한 후 그 액수를 언제까지 벌어, 그 돈으로 식구들이 함께 살 집을 사는 것은 물론 부모의 집까지 사서 선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반면, 여자의 경우는 소유가 아닌, 무엇을 하고 싶다, 느끼고 싶다, 어느 곳에 가고 싶다,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등 주로 체험하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남자와 여자의 이러한 차이는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 과 태도 그리고 사회환경 등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도 남자인지라, 제 버킷 리스트도 달성해야 할 목표 위주로 짜여진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목표액수는 물론, 꼼꼼하게 언제까지 달성해야 한다는 기간까지 정해놓았지요. 하지만 이번 오프 모임을 통해, 특히 여자분들의 발표를 통해 제 버킷 리스트도 다시 한번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표가 아닌, 죽기 전까지 반드시 꼭 하고 싶은 일들, 즉 체험하고,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은 그런 일들 위주로 말입니다. 아, 그리고 리스트를 다시 작성하기 전에 영화 <버킷 리스트>의 모건 프리먼이 잭 니콜슨에게 편지를 통해 전하는 이 말은 꼭 참고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인생에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이 조건을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기준이자 원칙으로 삼는다면, 보다 내실있고 따스하며 의미있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화창한 낮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이제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네요. 이런 가을, 결코 다시 만나지 못할 2015년의 가을에, 저와 함께 의미 있는 버킷 리스트 작성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글을 마치며, 영화 한편만 더 추천할께요. 김래원이 열연한 2006년작 <해바라기>인데요, 영화에서 김래원은 감옥에서 출소하면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작은 손수첩에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한가지씩 경험한 후 목록에서 지워나가죠. 그 일들이 결코 특별한 것들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죠. 호두과자 먹기, 김밥 싸 들고 소풍 가기, (문신 지우고) 대중목욕탕 가기, 선물하기 등등. 하지만 그에게 이런 일들은 삶의 기쁨이자 큰 행복입니다. 이런 평범한 일들을 하나씩 이뤄나갈 때마다 보여주는 김래원의 아주 행복한 미소를,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