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향점은 결코 목표가 아닌, 방향이 되어야 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 빠져(?)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여자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2년 여가 지난 작년 11월 중순, 그녀를 만났습니다. 약간 마른 듯 싶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드네요.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2차에서 2번 모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본인 말에 의하면 10월말 결과 발표를 접한 후 지금까지 멘붕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다 하네요. 노무사, 변리사... 참으로 취득하기 어려운 자격증이기는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분명 누군가는 합격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것이겠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2년간 정말 열심히 준비했더군요. 특히 두 번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16~18시간씩 공부했다 하네요. 밥 먹는 시간은 무조건 10분 이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4시간에 한번 씩만 다녀왔다 하고요. 더 기가 막혔던 건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슬픈 생각을 통해 일부러 울었다는 겁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잠도 깨고, 정신도 맑아져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네요...
이제 35세. 참 애매한 애매한 나이이긴 합니다.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습니다. 약간의 농담투로 ‘취집’을 생각하고 있다네요. 노무사 자격증을 못 딴 것에 대한 도피나 회피일까요? 가만 듣다보니 그건 아니더군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노무사를 목표로 했지만, 그것은 최종 목표가 아닌 과정이었습니다. 노무사가 되면 일단 기업에서 현장 경험을 한 후, 다음 단계로 정치쪽에서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네요. 정치? 다소 의외였습니다. 당연히 ‘왜?’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녀는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헉... 다시 한번 더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불평등을 해소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옵니다.
그녀는 2가지 측면에서 불평등을 보고 있었습니다. 올 초 그녀의 아버지가 불의의 심장 마비로 돌아가신 후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운용하시던 회사에 세무 감사가 들이닥쳤다고 하네요. 그런 상황에서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세무사 또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감사에 대응할 수 없었다 하네요.
그녀는 상당히 분통해 했습니다. 그들이 마치 아귀(!)처럼 다 가져갔다고 말이죠.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세무사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노무사로 자리잡고 있었더라면, 그런 험한 꼴을 그대로 당하고 있진 않았을 거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마음 속으로 더욱 결의를 다졌다고 하네요. 일단 노무사가 된 후, 정치쪽으로 진출해 ‘권력’을 얻고, 그 힘으로 사회의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말이죠. 이는 힘없는 자들이 맞게 되는 불평등의 측면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권력을 얻게 되면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도 힘 써보고 싶다 합니다. 그녀는 직장 생활을 하며 직, 간접적으로 여러 불평등을 경험했습니다. 승진, 일,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평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겪어야만 했죠. 그녀가 노무사가 되면, 제일 먼저 기업에서 일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의와 분노 그리고 약간의 우울함에 빠져 있어 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쉴새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게 되면(특히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자신의 만족뿐 아니라 주위의 칭찬과 부러움까지 함께 듣게 됩니다. 아마도 그녀가 노무사에 합격했더라면 그랬을 겁니다. 인간 승리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겠죠. 노무사 이후에는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기업에서 일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다시 정치쪽으로 길을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목표들이 다시 계획되었을 것이고,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을 겁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볼까요? 목표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실패자가 되고 마는 걸까요? 노무사가 되어 기업에서 일하고 난 후, 정치쪽에 도전(예를 들어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되고자 했을 때)했다가, 최종적으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그걸로 끝인 걸까요? 아니 지금처럼 첫 단계인 노무사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녀의 인생은 실패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절대 아닙니다. 목표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래서 우리의 머리 속에 주입시켜 놓은 당위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하지만, 개인적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인생도 중요하지만, 더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생각과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표(目標)가 목표라 불리는 이유는, 이루고자 하는 그 대상(標)이 눈(目) 앞이 아닌, 바로 눈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위만 바라본 채 (죽어라고) 뛰어 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바로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목표가 눈 옆이나 아래에 있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목표가 아닌 걸까요? 저는 그것을 방향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방향은 하나의 점이 아닙니다. 마치 선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조금 더 넓게 생각한다면 면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점들이 존재합니다. 만약 그녀가 사회의 불평등을 없애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노무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수 많은 점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녀는 그 방향으로 한걸음씩 내딛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가고만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든 모두가 환영할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인생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인생이 더 즐거울 수도 있을 겁니다. 생각지 못했던 희열이 엉뚱한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성공이란 목표를 이루었을 때만 쓰여지는 단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성공일 수 있습니다. 작은 성공이라고 성공이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또한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즉 인생의 여정을 즐기며 가던 어느 날, 삶의 마지막 날을 맞게 되었을 때 과연 그 느낌은 어떨까 하는. 다소의 아쉬움은 남을 것 같긴 합니다. 더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일들이 분명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생각은 확실할 듯 합니다. 후회만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왜? 내가 원하는 방향, 추구하는 방향을 계속해서 걸어 왔고, 현재도 그 여정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 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도 성공적인 삶이고, 만족스러운 삶인데 더 높은 것만을 바라보며 뛰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녀가 목표보다 먼저 자신 만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가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진짜 방향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맞다면, 힘을 빼고 천천히 자신의 박자에 맞추어 자신의 온전한 걸음걸이로 한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진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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