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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25. 2019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를 읽고

49년, 3대에 걸친 민초들의 진솔하고 애절한 삶을 읽다


26년간 쓰여진 이야기를 10개월에 관통하다


1년까지는 아니지만 못해도 10개월은 걸린 듯 싶다. 물론 작정하고 읽으려 했다면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느라 본의 아니게 더 시간이 걸린 점도 있다. 20권이나 되는 책이 내가 읽는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진 않았으니까.


작년부터 중간 중간 시간날 때마다 장편 고전을 읽고 있다. 일이나 관심 분야의 읽어야 할 책 외에 학창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읽지 못한 채 마음 속 리스트에만 넣어 두었던 장편 고전들. 처음은 조정래 작가의 10권 짜리 장편 소설 <태백산맥>이었고, 이어 잡은 책이 바로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였다.


한국인으로 이 책을 모른다면 속된 말로 간첩, 아니 그렇다 해도 최소한 들어보기라도 했을 책이 바로 이 <토지>일 것이다.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소설로 읽는 한국 근대사’라는 극찬이 따라 붙은 소설. 궁금하긴 했었다. 가끔 TV 드라마로 접하기도 했지만, 뭐랄까. 그냥 평이하게 느껴져 제대로 재미를 몰랐다고 해야 맞을까.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비로소 작년 여름쯤 그 1편을 손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곤 정신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토지>의 박경리,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무려 26년 간 집필되었다고 한다. 1926년생인 박경리 작가가 43세부터 쓰기 시작해서 69세까지 썼으니 중년과 노년 초기까지의 시간 대부분을 이 소설에 쏟아 부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이 26년이지 인생의 1/3, 그것도 가장 생각이 왕성하고 성숙했던 이 시기를 <토지>에 사용했다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얼마나 혼신을 기울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써나갔는 지를 문장마다 혹은 문단마다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행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삶에 대한 고백, 지향, 갈구, 희생, 흐느낌 들은 그야말로 백미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찔함과 감동 그리고 긴 한숨을 전해준다.


<토지>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 직후인 1897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구한말에서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를 거쳐 8.15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어야만 했던 민중들의 삶의 애환, 갈등, 혼란, 복수 등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무대 또한 경남 하동군 평사리를 시작으로 진주, 서울 그리고 만주의 용정, 신경, 하얼삔 그리고 일본 동경까지 다양한 공간을 넘나 들고 있다. 하지만 더 대단한 건 소설 속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무려 6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처음 읽는 사람들은 마치 이름의 정글 속을 헤매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특히나 ~네, ~할매 란 표현도 그랬지만, 나중에 3대 째인 손자, 손녀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종종 글을 멈추고 그 가족 관계도를 떠올려야만 했다.


이 소설은 대지주이자 몰락해 가는 양반인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이름 없는 민초의 정서와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민족의 구체적 생활사 속에서 풀어헤치고 있다. 또 지난 시절 우리 민족이 겪은 힘든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어의 미적 특질을 잘 살린 작품으로 한국 소설사에서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 나무위키 중에서 --



나를 감탄, 감동시켰던 10가지 포인트


<토지>를 읽으며 들었던 수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다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나를 감탄하고 감동시켰던 포인트들을 10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890년대말부터 1945년까지의 민초들의 진솔한 삶, 그리고 투쟁


2. 인간들이 지닌 선과 악의 표출. 본래부터 악한 사람은 없지만, 정말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누군가는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그로부터 악은 태동되고 커간다. 김두수(김거복)는 그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3. 인간의 욕심은 한계가 없다. 가지면 더 가지려 하는 것이 본능인 걸까? 조준구의 행적을 보면 인간의 욕심의 끝이 어디인지, 그 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4. 양반과 농민 그리고 백정 간의 계급 사회의 존재. <토지>는 지주로 대변되는 양반(최참판댁과 같은. 하지만 김훈장은 가난한 양반이다)과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민들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마름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드물지만 천하디 천한 계급으로 멸시받는 백정들 있다. 백정의 딸 영선네와 혼인한 송관수와 그의 장남 송영광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그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살아간다.


5.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일어나게 되는 계급 사회의 몰락. 결국 자본주의란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돈으로 과거를 지우고 유지에 올라서는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김두만은 그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6. 3대에 걸친 복잡한 관계도. 작가는 어떻게 이런 관계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게다가 각 인물마다 살아있는 캐릭터의 개성과 감정선들. 마치 한 사람마다 빙의된 듯 감정이입이 될 정도다. 소설이 좋은 이유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간접경험을 통해 이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지>는 그런 면에서 다양한 감정이입을 선물해 주는 종합세트라 할 수 있으리라.


7. 민초들의 삶과 사랑. 아무리 계급적으로 천하다 할지라도 사랑은 싹튼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있다. 특히나 용이와 월선이와 사랑은 애절함이 넘쳐난다. 사랑하지만,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게다가 월선이 죽음을 앞두고 용이를 기다리는 순간, 그리고 그 마지막 재회는 뭉클함이 가득하다. 또한 일본인 오가타와 독립투쟁가 유인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총각 몽치와 유부녀 모화의 투박한 사랑 그리고 송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도 가슴을 시리게 한다.


8. 일제가 망해가는 틈새를 파고 드는 사상들의 이야기. 민족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장 큰 활동을 벌인 것은 동학이었다. 김개주, 김환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강쇠와 송관수, 김길상, 장연학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투쟁은 일본이 무너질 때까지 이어진다.


9. 의외로 막장 느낌도 있다. 초반 최참판댁의 하녀인 귀녀가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최치수의 아기를 밴 것처럼 모의를 한다. 그러기 위해 임이네 남편인 칠성이에게 몸을 맡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사모했던 강포수로부터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의는 실패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들이 몰랐던 큰 사실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귀녀는 감옥에서 죽어가게 되고, 죽기 직전 낳은 아이는 강포수가 데려가게 된다.


10. 옥에 티. 몽치의 본명인 이재수가 후반부에는 박재수로 성이 바뀌어 등장한다. 그럴 수도 있지.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



연재 완결이 된 1994년 이후로도 벌써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안타까운 건 <토지> 이후, 즉 해방이후 이야기인 <나비야 청산가자>란 제목의 소설을 쓰고자 했던 박경리 작가가 2008년 작고한 것이다. 그로써 <나비야 청산가자>는 영원한 미완결 소설로 남게 되었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토지>라고 하는 대작을 마침내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소설로 남지 않을까 싶다. 늦었지만 작고하신 박경리작가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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