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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13. 2019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엄마도 그 엄마의, 그리고 그 엄마도 엄마의 딸이었음을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우연히 집게 된 소설. 워낙 유명하지만 그랬기에 읽지 않았던 책. 웬지 제목부터 다소 식상하게 느껴졌던 책.


하지만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나의 마음과 감정을 치고 들어오는 스토리의 파고는 꽤나 높고 격정적이었다. 그렇게 3일 만에 책을 관통했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여운은 무척이나 컸다. 특히나 ‘3장의 나, 왔네’와 ‘4장의 또 다른 여인’을 읽는 동안 감정의 쏠림은 쉴 새없이 상하좌우를 치달았고, 종내 뜨거운 눈물과 함께 작은 흐느낌을 몰고 왔다. 어머니란 위치, 엄마란 자리. 희생의 대명사...


소설의 시작을 여는 첫 문장과 마무리를 담은 에필로그의 첫 문장은 이러했다.



프롤로그 -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름 : 박소녀

생년월일 : 1938년 7월 24일생(만 69세)

용모 :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 지하철 서울역 (13P)     


에필로그 -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어쩌면 이 책은 엄마를 잃어버린 후 일어난 9개월 간의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설정일 뿐 전체 내용은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시대적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빠른 시집을 가게 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며 늙어가는 인생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엄마가 엄마인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희생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비망록(備忘錄)이라 할 수 있다.


아무쪼록 여기 걱정은 말고 네 한몸 건사 잘하길 바란다. 어미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형철이에게로 시작한 엄마의 말은 네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서 어미가 미안하다,로 감정의 급물살을 탔다. 네가 편지지에 또박또박 엄마의 말을 받아적을 때 너의 엄마의 손등엔 굵은 눈물이 툭, 떨어지곤 했다. 너의 엄마가 불러주는 마지막 말은 늘 똑같았다. 아무쪼록 밥은 굶지 말고 다니거라. 엄마가.(23P)


그의 엄마는 한겨울인데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을 추수 때 낫을 잘못 써서 엄지 쪽 발등을 다쳤는데 아물지 않아 앞이 터진 신발을 찾다보니 슬리퍼였다 했다. 그의 엄마는 숙직실 문 앞에 슬리퍼를 벗어놓고 들어와, 늦지나 않었는지 몰르겄다!며 그 앞에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내밀었다. 엄마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91P)


이제 문패만 달면 되겠구나. 문패는 꼭 이 돈으로 해라. 그가 문패값이 든 봉투를 받아든 채로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는 빈손을 마주 비볐다.

  -- 엄마가 미안하다, 니가 집을 사는디도 아무 것도 못히줘서.(126P)


자나깨나 자식 걱정에 모든 걱정과 근심을 쏟는 엄마. 우리는 그 엄마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 엄마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자식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는 하며 살았던 걸까?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춘을 두고 오빠! 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도 네가 오빠들에게 갖는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인간이란 깨달음은 곧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구나,로 전환되었다.(37P)


엄마를 잃어버린 자식들의 슬픔과 고통도 만만치 않겠지만, 더한 것은 자신의 부주의로 아내를 눈앞에서 놓친 남편의 마음일 것이다. 평생 또한 아내를 그저 자신의 옆사람 정도로,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 하찮게 여겼던, 그래서 바람까지 피었던 남편. 하지만 그런 남편을 향해서도 엄마는 마지막 마음을 전한다. 자신보다 3일이라도 먼저 가라는. 그래서 자신이 그 뒷자리까지 깨끗이 마무리하고 뒤따라 가겠다는.


당신은 나보다 먼저 가시요이. 그러는 것이 좋겄어. 이 시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 헙디다마는 우리는 온 순서대로 갑시다이. 나보다 세 살 많으니 삼년 먼저 가시요이.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든가.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는 못살겠시믄 큰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도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어서 당신이 헐 줄 아는게 뭐 있소이? 안 봐도 뻔하요이. 말수도 없는 늙은기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하겄나.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 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163P)


딸이 참지 못하고 수화기 저편에서 어--어어어 소리내어 울었다. 당신은 송아지 같은 딸의 울음소리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들었다. 딸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딸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198P)


세 살 기억만 남은 엄마는 서울역에서부터 걷고 또 걷는다. 자신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그러면서 문득문득 나는 기억 속에 큰 아들이 살았던 첫 집, 근무했던 동사무소를 배회한다. 파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지난여름 지하철 서울역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겐 세 살 적 일만 기억났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걸을 수밖에 없었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 (중략) 세 살 때 기억만을 품고 나는 지쳐서 주저앉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네.(254P)


그러면서 떠올린다. 자신의 엄마를. 그러면서 희망한다. 엄마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기를.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 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P)



엄마를, 부.탁.해.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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