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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24. 2019

애니깽이란 단어가 전하는 참을 수 없는 인생의 무거움

김영하의 책 <검은 꽃>을 읽고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사라진 것은 없었다피리 부는 내시와 도망중인 신부옹니박이 박수무당노루피 냄새의 소녀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혁명가의 이발사까지모든 이들이 환한 얼굴로 제물포 언덕의 일본식 건물 앞에 모여 이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선명할까이정은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그의 폐 속으로 더러운 물과 플랑크톤이 밀려들어왔다군홧발이 목덜미를 눌러 그의 머리를 늪 바닥 깊숙이 처박았다.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 1905년 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1904년 조선을 발아래에 둔 일본은 내친 김에 중국을 넘어 러시아까지 넘보며 전쟁을 치르게 된다. 폭주하는 일본의 강력한 세력 아래서 조선은 그저 아무런 힘없는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그런 이들을 유혹하는 뉴스가 있었다. 저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 그것도 미국이 아닌 들어본 적도 없는 멕시코라는 나라에서 일꾼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4년만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어 돌아올 수 있다는, 그래서 그 돈으로 조선에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편히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봄날 아지랑이와 같은 소식이었다.



1905년 4월 5일 제물포항에서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의 대부분은 일반 농민과 노동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대한제국의 퇴역군인 200여 명과 몰락한 양반계급(유길준의 삼촌인 유진태 등), 무당신부내시대륙식민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승선시킨 도둑걸인부랑아 등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그들은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주들과 4년 계약을 맺었지만사전에 고지받은 계약의 조건은 대부분 거짓이었고 그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 해설 <유랑하는 인간세계의 개인>(서희원 문학평론가중에서


미국 하와이 이주민들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결국 그들 만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멕시코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아니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이 그들의 이야기인지는 책을 펼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검은 꽃>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 되었다. 1905년에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밀림에서 증발해버린 일군의 사람들그들은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았다나는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적 허구를 덧붙인 소설이다. 거의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제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속 인물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소설 속에서의 이름이나 역할, 실제 삶의 경로들이 조금씩 채색되거나 윤색되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리얼리티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나 특징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고 있는 사고, 생각의 틀들이 매우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져들게 된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에. 그리고 장면 곳곳에서 울컥하게 된다. 삶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하면서.


이 책의 제목 <검은 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검은 꽃’이란 단어만 봐도 괜시리 마음이 우울해지는 듯 하다. 맞다. 저자 또한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아니 소설을 구상하면서부터 ‘우울’이란 단어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인생역정은 험난하고 고난했으며, 우울의 늪 속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우울은 더욱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듬에 대한 우울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감 상실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돌아갈 나라조차 없는 백성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향은 너무 멀고여비는 감당할 수 없게 비싸고돌아가봐야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결정적으로 그들이 그리워하던 나라는 식민지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 해설 <유랑하는 인간세계의 개인>(서희원 문학평론가중에서



1033명의 험난했던 고통의 인생유전은 모든 사람이 그렇듯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는 그들의 마지막을 이렇게 담담히 그리고 건조하게 전하고 있다. 아, 이 부분은 생략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마치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토록 인생이란 것이 파란만장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인간은 사실 독한 인종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인은 더 독종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버티고 살아낸다. 그러나 왜 이래야만 하는가. 이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 내가 선택한 옵션은 아니지 않은가.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약 그 시간을 살아가며 이들의 처지가 되었다면, 그래서 일포드호에 타게 되었다면 그래도 이들처럼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소설 속 어떤 인물의 삶을 쫓아갔을까? 김이정? 조장윤? 김석철? 권용준? 박광수? 이종도? 이진우? 최선길? 글쎄다.. 참 쉽지 않은 독백이다.


마지막으로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이 책 <검은 꽃>뿐 아니라 김삼열의 희곡 <애니깽(1988>, 김선영의 장편 <애니깽(6권, 1990)>, 김호선의 영화 <애니깽(1997)>, 그리고 가장 최근에 제작된 송일곤의 영화 <시간의 춤(2009)>을 통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이라봐야 10년 전 영화이긴 하지만, 시간을 내서 <시간의 춤>을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sds9119)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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