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명반 N.EX.T 2집
1995년인가보다. 직장에 들어갔다.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공장이었다. 전공이 생물이라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를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공장에는 4년제 대졸자보다 현장 직원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를 잘 맺느냐의 여부가 공장에서 쉽게 연착륙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선배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QC가 아닌 현장에 배치되었다. 바로 주야간 근무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1주일씩 주간과 야간 근무가 바뀌는 근무체계에 몸이 적응되지 않았다.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근무시간. 원래부터 잠을 참지 못하는 난 툭하면 졸기 일쑤였다. 게다가 당시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던 시절. 특히 서울에 직장이 있던 여자친구를 만난 후 바로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날은 밤새도록 졸기 일쑤였다. 앉으면 졸음이 밀려 왔기 때문에 대부분 서 있었지만 그래도 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다행스러웠던 점은 현장 직원들이 이런 나를 그래도 이쁘게 봐주었다는거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친구들부터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까지 내가 졸고 있으면 살짝 와서 이야기를 걸어 졸음을 쫓아주거나, 어떤 때에는 졸고 있는 나를 위해 대신 나의 일을 처리해 주는 경우까지 있었다.
물론 현장에 계신 분들과 금방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 또한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졸 직원들은 신입으로 들어온다 할지라도 금새 진급하여 자신보다 높은 직급이 됨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자신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처럼 한 부서에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부서 혹은 다른 공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정을 줘봤자 소용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친해지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생겼다. 현장 직원 중 한 분이 자신의 중학생 아들에게 컴퓨터를 사줬는데, 문제는 아들이 컴퓨터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시간이 되면 자신의 집에 와서 컴퓨터를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해 온 것이다. 그야말로 좋은 기회였다. 퇴근 후 그 분 댁을 방문하여 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다. 그리고 저녁도 얻어 먹으며 그 분과 이러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 분과 친해지자 다른 사람들 또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스해졌다.
당시 공장 내에는 집이 지방이거나 먼 현장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다. 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기숙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리고 가끔 집에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술을 마시거나 혹은 야간 근무가 끝나고 집에 가기 귀찮을 경우(당시 나는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에는 아예 기숙사에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야간 근무가 끝난 후 기숙사에서 잠을 잤고 오후에 깼었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일단 일어나 멍 때리고 있는데,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CD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신해철(정확히는 N.EX.T)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CD Player를 통해 들어 보았다. 오~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그 동안 좋아했던 노래와 음악들은 많았지만, 가요로써 감동 받기는 처음이었다. 노래 한곡 한곡이 절묘했고 울림이 있었다. 그 CD가 바로 N.EX.T 2집이었다.
1. The Return of N.EX.T (Instrumental) (1:02)
2. The Destruction of the Shell:껍질의 파괴 (10:53)
3. 이중인격자 (5:52)
4. The Dreamer (5:01)
5. 날아라 병아리 (5:09)
6. 나는 남들과 다르다 (5:57)
7. Life Manufacturing:생명 생산 (2:50)
8. The Ocean:불멸에 관하여 (6:43)
이 앨범이 발표되고 <날아라 병아리>가 꽤 히트했지만,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노래는 <The Ocean:불멸에 관하여>였다.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파도 소리와 함께 시작되고, 중간중간 계속해서 파도 소리가 백코러스처럼 신해철의 목소리와 잘 어울림과 동시에 웅장함, 서정성 그리고 락적인 요소들이 그야말로 비빔밥처럼 묘하게 잘 어울린 노래였다. 그 날 하루만 수십번을 들었나 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듣고 있어도 역시나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들을 때마다 무언가 다른 새로움을 전달하는 묘한 끌림이 있는 곡이다.
신해철은 천재였다. 물론 더 뛰어나고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The Ocean:불멸에 관하여>, 이 한 곡만 가지고도 나는 신해철을 진짜 천재라고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날 이후 나는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히트곡이 많긴 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곡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더욱 찾아 듣게 되었다. 그 노래들을 적어 본다.(히트곡은 제외했다)
<The Ocean:불멸에 관하여>
<나에게 쓰는 편지>
<길 위에서>
<The Dreamer>
<아버지와 나 Part1>
<인형의 기사 Part2>
<민물 장어의 꿈>
<일상으로의 초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
1년 전, 그의 갑작스러웠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동갑내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그의 천재성을 접할 기회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처럼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존재의 부재는 깊은 공허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의 노래 하나하나에는 나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여러 일상의 소소한 느낌 들이 담겨져 있다. 다른 가수의 노래들 또한 그러한 곡들이 있긴 하지만, 신해철의 노래들이 더욱 그러한 이유는, 그의 노래에는 유독 더 많은 추억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덕분에, 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할 수 있었고, 기억을 만들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추억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