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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Oct 27. 2015

주례 서 주세요!


지난 토요일, 회사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후배가 본사 교육팀에 근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에 유대관계가 좋기 때문인지 몰라도 지점장, 부서장들을 비롯한 꽤나 많은 회사 관계자(?)들이 왔더군요. 최근 다녀본 직원 결혼식 중에서는 가장 많이 회사 사람들을 마주친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짝, 회사 모임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동안 여러 결혼식을 다녀보았지만, 이 결혼식만큼은 제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자리였습니다. 왜냐고요? 여기에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마터면(!) ‘주례 선상님(?)’의 자리에 제가 서 있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어찌된 사연이냐고요?^^      


사실 이번에 결혼한 신랑, 신부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의 2기 멤버들입니다. 이들은 재작년 10월, 2기에 지원하여 1년간 같이 공부를 했죠. 아, 남자는 제 회사 후배이고, 여자는 복지관의 물리 치료사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사이였고요. 처음부터 남녀로써 스파크가 일었던건 아니었고, 같이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쯤 지나 커리큘럼 관계로 통화를 하다 우연히 작은 불씨가 생겼고, 그로인해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더군요.     


그리고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1년 과정이 끝나는 마지막 자리에서 터뜨렸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거의 멘붕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조그만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그야말로 완전범죄(?)였단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침착할 수 있었는데요, 왜냐면 다행(?)스럽게도 일주일 전, 귀띔으로 미리 들었기 때문이었죠. 안 그랬다면 저 또한 ‘이게 뭔 일이래~’ 했을겁니다.     


처음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머리 속에 든 생각은 ‘이 녀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연애질을!’ 였죠. 하지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오히려 서평도 잘 쓰고, 과제도 충실히 잘 이행했더군요. 뭐 그렇다면야... 그리고 이렇게 모임 안에서 만나 건강하게 사귈 수 있다면 오히려 잘 된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게다가 <에코라이후>가 경제공부를 기본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니만큼, 이들은 서로가 보유한 자산은 물론이고(첫 오프수업에서 자신의 보유자산을 공개하니까요), 서로의 경제관까지 확실하게 공유했으므로, 최소한 경제적인 문제로 다툴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만남을 장려해도 좋을 듯 싶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양가 상견례에 이어 결혼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달여 전 쯤 후배가 저를 찾아와 머쓱거리며 한가지 요청을 하더군요. ‘주례를 서’ 달라고요. 제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미쳤냐!”


제 나이 아직 이팔청춘...은 아니고, 뭐 그래도 젊은 40대... 아직 주례 선상님(?)의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후배 또한 각오하고 온 듯 주례 서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자신들이 만나 결혼까지 하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저인만큼, 꼭 주례를 서야한다고 강조를 합니다. 그러자 살짝 ‘그래도 되나?’란 생각이 고개를 내밀더군요. 이 넘의 팔랑귀 같으니라구... 쩝.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요.     


집에 와 아내에게 자랑 반, 재미 반으로 이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갑자기 정색하며 말하기를, 무조건 주례를 서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엥?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자 ‘아, 그럴 수 있겠구나.’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 아내는 결혼식에 오는 일반 하객들 보다는, 회사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분명 회사에서 저보다 더 높은 직급의 사람뿐 아니라 부서장, 지점장들도 올텐데, 그들이 주례 선상님의 자리에 제가 서 있음을 보게 된다면 웬지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더군요.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제 팀원이 결혼하는데, 가서보니 다른 부서의 팀장(직책은 같으나 실제로는 입사 후배인)이 주례를 서고 있드라? 게다가 혹시라도 임원까지 와서 본다면? 뭐, 저야 주례를 보면 경력에 큰 획을 긋는 뜻 깊은 일일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후배가 그다지 듣기 좋지 않은 말을 들을 여지는 충분히 있겠더군요. 그런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알려준 아내의 조언이 고마웠습니다. 결국 주례는 정중히 거절했고, 후배는 자신의 대학교수님께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묘하게(?) 잘 어울리는 커플!^^)

     

두 사람은 강북의 아주 작은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회사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첫 신혼살림을 번듯한 아파트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빚 없이 시작하고 싶어 혼수까지 최대한 줄여가며 작은 방을 구했다고 합니다.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조금 어렵게 시작해야 그 어려움을 알게 되고, 그런 기억들이 나중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되었을 때 좋은 추억으로 겹겹이 쌓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갓 결혼한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절약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며 열심히 살려는 두 사람의 알찬 행동과 사고가, 분명 그들을 사회적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니 그 보다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마음의 부자로 만들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비록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삶에 있어서는 자본, 즉 돈이 결코 1순위가 아님을, 오히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1년 간의 경제공부를 통해 잘 배웠기 때문입니다.





※ 공지사항 한가지!

40대에 주례를 설뻔했던 차칸양(접니다!^^)이 진행하는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4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경제공부를 토대로, 경영과 인문을 접목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작지만, 그럼에도 큰! 변화를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또한 경제관이 유사한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분들도 신청 바랍니다. 단, 중도에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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