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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20. 2020

당신의 마음 속 아름다운 정원은
무엇인가요?

심윤경 작가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끝내 툭, 하고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물론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나이가 되어서 그런거라 애써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동구의 이 한마디는 마침내 나의 감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머니우리 둘이 노루너미 가서 살까.”



이 책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년간의 그 평범할 수도 있지만, 가슴 아프고 처절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뚝뚝한 멍충이이자 3대 독자인 효자 아버지, 애정가득한 마음과 몸짓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살림꾼 엄마, 엄마를 못잡아 먹어 매사 안달인 할머니 그리고 생각은 넓지만 이를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한동구. 여기에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스런 7살 어린 여동생 한영주가 태어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면 이 책에는 2가지의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시대적 배경으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란 시간대의 복선이 깔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 시기는 대단한 혼란기였다. 1979년 10월 26일,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37년간 대통령(5~9대) 자리를 놓지 않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심복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지며 생을 마감했다. 이후 민주주의가 찾아오리라 기대했던 국민들의 희망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해 군부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됨으로써 그저 꿈으로 그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으며, 동구의 담임이었던 박영은선생님의 고향이 전라도 광주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고부 간의 갈등이다. 이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피치못할 구성일 수 있다. 3대 독자인 효자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아니, 가장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아내를 구박하고 때로는 폭력까지 행사한다. 마음 깊은 곳에는 애정이 있을 지언정 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마치 표현하면 자신의 존재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시어머니인 할머니는 거의 며느리를 핍박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냥 온갖 욕설과 몸짓으로 엄마를 괴롭힌다. 이런 고부 간의 갈등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시시각각 그 절망적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갈등에는 해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조금씩 양보하거나, 누군가가 희생하거나 그럴 때 어느 정도의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이야기 종반부에 네 가족은 갈등의 극단을 치닫는다.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긴장감이 독자들을 압박한다. 그러지 않아도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마무리마저 비극으로 끝난다면 너무나 가슴 아플 수 밖에 없는데... 그건 싫다. 무언가 해피엔딩의 실마리를 줘다오. 심윤경 작가는 그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가쁜 숨을 돌릴 수 있어서.


나는 68년생이다. 주인공인 한동구는 어림짐작으로 70년생으로 보인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왔다는 의미다.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다. 이야기가 더욱 더 공감되는 이유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빨갱이를 향한 멸공이란 주제로 포스터를 그리던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지 않으면 안되던 시절. 이러한 시대 공감이 이 소설에 더욱 빠지도록 만들었다. 불과 이틀 만에 책장을 다 넘길 수 있었으니까.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으로 우울해하는 어린 동구에게 박영은 선생님은 아버지의 입장에 대해, 알기 쉽도록 설명해준다. 동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황에 맞춰, 그 관점이 되어 그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자신이 커서 그토록 사모하던 박영은 선생님을 신부로 맞이했는데, 안타깝게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던 엄마와의 갈등이 생겨버리고, 자신은 그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마저 자신을 밀쳐 내는 그런 상황. 얼마나 표현이 잘 되었는지 이해도 이해지만, 웃음까지 유발하는 구절이다. 이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손에 잡은 가치가 느껴질 정도다.


또한 감성을 건드리는 좋은 구절이 상당히 눈에 띈다.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어렵더라도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 해.”


할머니에게는 희망이 없거든.


할머니우리 둘이 노루너미 가서 살까.”


할머니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나는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가 부러워졌다하지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한동구의 할머님과 부모님께.


안녕하세요저는 3학년 7반 한동구의 담임 박영은입니다.

이렇게 제가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동구의 할머님과 부모님께

두 가지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는 지금 들으시는 것처럼 동구가 이제 글을 매우 잘 읽는다는 것입니다.

동구는 매일 수업이 끝난 후 저와 한 시간씩 공부를 했습니다.

동구는 매우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읽고 쓰는 데 거의 불편이 없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도록 집에서 도와주십시오.

또 하나는 동구가 훌륭한(이 부분이 어려웠다어린이라는 것입니다.

동구는 가족들을 무척 사랑하고친구들과도 아주 사이가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따뜻하고 어른스러워서 담임인 저도 동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동구가 자라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79년 12월 15

담임 박영은 드림


엄마를 보지 못하는 것박 선생님이 찾아올 수 없는 것영주의 자취가 없다는 것그 세 가지가 시골 생활의 어려움이다.


어제 아버지께서 엄마한테아주 조그맣게할머니한테는 들리지 않게 당신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아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어머니가 당신을 속상하게 하더라도 당신이 참아줘난 당신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엄마가 무척 기쁘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가슴을 울리는, 아프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만나 참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말도 안되지만, 2020년 현재의 한동구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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