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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Nov 04. 2015

소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서문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이 시간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어진 70년 혹은 80년의 시간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누구에게든 ‘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다. 그저 인생은 인생이며, 내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과 처지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며, 그 안에서의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히 포기하고 안주하며, 자신 만의 절대본질이 아닌 상호 비교를 통해 상대성 행복을 안위로 삼는다.  


맞다. 그 또한 행복일 수 있고, 기쁨일 수 있다. 비록 자신 만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이 방법처럼 마음을 평온히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도 드물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자신의 마음 속에 온전히 거할 때만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든 세상도 내 마음만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꽤나 괜찮은 삶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들은 변하지 않는다. 관성의 법칙처럼 한번 일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은 계속해서 앞으로만 나아가려 할 뿐 방향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렵다. 방향을 바꾸는 것,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주어진 힘보다 배 이상의 또 다른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으면 사실 불가능하다. 삶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이나 조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바뀌어지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결실을 이루어내기위해 투입되어야 할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끝모를 시간이 우리를 매번 좌절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매년초 새로운 변화를 이루기 위해 소기의 목표들을 설정하지만, 연말이 되었을 때 아쉬움의 한숨이 흘러 나오는 이유이다.    



소심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많은 사람이 이러할진대, 그 중에서도 소심한 사람들은 삶은 어떠한가. 소심한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고민은 물론 거기에 덧붙여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이 세상의 모진 바람과 차가운 냉기에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관계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며 삶의 안간힘을 쏟고자 하는 약자이다. 가슴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욕망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풀지 못한 채 서러움과 아쉬움에 스스로를 탓하기만 하는 사회적 주변인이기도 하다.  


소심한 사람들이 이 불평등이 만연하는 사회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몫을 제대로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차피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만들어 가야만 한다면 소심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의 본질과 재능, 지능을 모두 다 한껏 발휘하고 사회적 인정까지 받아가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나는 소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소심 때문에 40년이란 시간을 고통 받아 왔고, 사회적 관계와 나의 위치 속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고민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남처럼 당당하고 때로는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는 전사(戰士)처럼 싸우는 모습들을 부러움과 질투가 담긴 눈길로 쳐다보기만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처럼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좌절감과 질책은 나를 더욱 더 깊은 한숨의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나는 무능력자였으며, 치료가 불가능한 소심병 중증 환자가 되었다.  


소심은 어느덧 내 본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내 삶을 소비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소심한 나의 모습을 인지한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수 많은 시도를 했다. 소위 자기계발이란 부분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자기계발 관련 책들에서 요구하는 자신감과 적극성을 키우기 위해 저자들이 제시하는 갖가지 방법들을 시행해 보았으며, 소심을 극복하기 위한 마인드 조절법은 물론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과 습관 그리고 사고방식까지 따라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나일뿐, 결코 다른 내가 될 수 없었다. 소심은 어느덧 내 본질이 되어 있었다.




2006년 책을 통해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변화와 꿈을 거론할 수 있었고, 서로의 고통과 고민 그리고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곳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각자의 삶의 방향과 목표,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관계적 손익을 따지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나 큰 기쁨이었다. 이 곳은 신천지이자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자연스럽게 연구원까지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에서 마침내 변화경영연구소의 4기 연구원이 될 수 있었다. 1년 동안의 연구원 생활을 거치며 나는 내 자신의 가장 큰 이슈이자 딜레마인  ‘소심’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심에 대해 줄기차게 생각하고 고민해 오고 있으며, 소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글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좋은 방법들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부터 풀어나갈 글들은 그 고민과 생각에 대한 작은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답이다!'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소심한 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성과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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