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에서 연애, 결혼, 출산까지
지난 여름, 2박 3일 일정으로 베트남의 경제수도인 호찌민(Ho Chi Minh)을 출장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웬지 호찌민이란 도시이름이 입에 붙지 않고 어색했는데, 알고보니 원래 이름은 사이공(Saigon)이었다 하네요. 베트남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76년,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구(舊)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호찌민(胡志明)을 기리기 위해 도시이름을 개명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로 공산당이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중국처럼 자본주의를 도입, 개인과 기업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으며, 경제부흥을 위해 애쓰고 있죠. 그 예로 최근 베트남 정부에서는 외국자본 유치에 상당히 적극적인데, 과거에는 외국인 지분률이 3%만 초과하더라도 각종 규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49%이하까지는 국내기업과 동일한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을 완화함으로써 보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베트남은 인건비와 자원이 풍부하고 저렴할뿐 아니라 젊은 노동력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베트남의 인구분포를 들여다보면 35세 이하 젊은이의 비중이 무려 65%에 달할 정도로 높아, 나라 자체가 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외국 투자자들의 눈에 매력적인 나라로 비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수 있겠죠.
베트남 출장을 다녀온 이유는 회사에서 가방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과거 중국에서 만들던 것을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중국의 인건비를 비롯한 제반경비들이 올라감에 따라 보다 저렴한 베트남으로 이전하여 그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함이죠. 이번 출장은 가방의 검수와 더불어 베트남 시장조사를 하기 위함이었고요.
베트남 땅은 이번에 처음 밟아 보았는데요, 몇가지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출퇴근길의 오토바이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물론 현지 사람들에게는 교통지옥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제 눈에 비친 도심의 오토바이 행렬은 일부러 전국의 오토바이족들을 한날한시에 모아 놓은 듯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베트남에 오토바이수가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현재 베트남의 인구는 약 9,400만명 수준이고, 오토바이 등록대수는 무려 4,000만대에 육박한다고 하는데요, 4인가족을 감안하면 한 가족당 1.7대로 거의 2대꼴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호찌민이나 하노이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에는 거의 1인당 1오토바이 수준에 해당될 정도라 하니, 베트남 국민들에게 있어 오토바이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그들만의 필수 생활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오토바이에서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
베트남에는 오토바이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에서 연애하고 결혼하며, 출산까지 한다.” 오토바이에 대해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없겠죠? 실제로 밤거리 공원 같은 곳에 보면 연인들이 오토바이 위에 앉아 데이트 즐기는 광경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3인 혹은 4인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꽤나 위험해보입니다만) 외식하러 가는 모습 또한 흔한 풍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자, 그렇다면 왜 베트남에는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은걸까요?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에 비해 도로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대중교통 사정 또한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는데요, 그나마 유일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은 2020년이 되어야 개통될 예정이라 하니 아무래도 당분간 오토바이는 계속하여 베트남 사람들의 충실한 발이 될 것 같습니다.
오토바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30만원대의 저가 중국 오토바이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하네요. 그전까지는 일본 오토바이(혼다, 스즈끼, 야마하 등)가 주류였지만, 비싼 까닭에 서민들이 쉽게 타고 다닐 수 없었답니다. 돈 없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자전거를 이용했고요. 하지만 저렴한 중국 오토바이가 등장하며 자전거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습니다. 불편하고 힘든 자전거를 타야 할 이유가 없어진거지요. 또한 많은 서민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게 됨으로써, 1순위로 오토바이를 장만하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적인 꿈이 된겁니다.
오토바이가 대세인 베트남에도 최근에는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합니다. 사람들의 경제 수준이 올라가다 보니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갈아 타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오토바이 판매대수는 점차 감소되는 반면, 자동차 판매대수는 늘고 있다고 하네요. 베트남 정부에서는 현재 2,200달러 수준인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대로 올라서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처음 가 본 베트남이지만, 오토바이 행렬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아마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의 발전 속도를 감안해 본다면, 몇 년 뒤에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며, 아마도 그때는 오토바이의 장관이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자동차의 기나긴 정체로 점차 바뀌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젊은이들의 최우선적인 꿈도 오토바이가 아닌 자동차로 조금씩 바뀌어 가겠죠. 한가지가 궁금해지네요. 지금 오토바이를 모는 젊은이들이 중년이 되어 자동차를 당연시하며 운전하게 될 때, 지금의 오토바이가 만들어 내는 풍광을 그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아련한 추억, 아니면 끔찍했던 일상? 과연 어느 쪽일까요?
※ 덧붙임
출장 이틀째 아침은 호찌민에서 제일 쌀국수를 맛있게 한다는 식당(허름한..)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65,000동(약 3,500원, 이 가격도 최근에 많이 올랐다는..)이었는데요, 헉! 국물이, 국물이... 끝내줬습니다. 또 먹고 싶어지네요.^^
※ 또 덧붙임
베트남 쌀국수가 그렇게 맛있는 이유는 2가지가 있다고 하는데요, 첫째는 우리나라 유명 설렁탕이나 곰탕처럼 24시간 이상, 진하게 국물을 우려내기 때문이고, 둘째는... 요게 아주 충격적이더군요. 베트남 국민들의 MSG(!) 사랑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는데요, 모든 음식에는 MSG(L-글루타민산나트륨, 식품첨가물)를 아주 아낌없이 팍팍 넣는다고 합니다. 진한 육수와 아낌없는 MSG, 이러니 어찌 맛없을 수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