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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05. 2021

웨딩사진 속 나 그리고 우리

#79, 상대를 포용하고 공감하는 법에 대하여


지난 일요일


부산 송정에 있는 결혼 사진 전문 OO스튜디오를 다녀왔다. 지난 9월 17일 꼬박 네 시간 반 동안 촬영했던 수 많은 웨딩 사진들 가운데 앨범으로 만들 사진들을 고르는 날이었다. 미리 약속한 시간 보다 30분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 날도 다른 신랑 신부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컨셉의 사진을 찍는 것은 작가는 물론 신랑 신부 역시 많은 에너지를 소모 하는 일이었다. 특히 어려운 것은 잘 웃는 것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짓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사진 작가들은 큰 소리로 옳지 옳지 하며 연신 신랑 신부의 웃음을 유도 한다. 흡사 아기 돌 사진 찍을 때 비슷하다. 대기 하는 동안 다른 예비 신랑 신부의 촬영을 곁눈질로 보며 나도 저랬었나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우리를 별도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당일 찍었던 사진들을 열어 보는데 모두 580여 장이었다. 이 가운데서 앨범에 들어갈 20장을 골라야 한다. 100장 가운데 남는 사진이 3~4장에 불과하다. 스튜디오에서는 일차적으로 신랑 신부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천천히 골라 보라며 한 시간의 여유를 주었다. 여자 친구는 이미 의자를 당겨 고쳐 앉았고, 나는 옆에서 그저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은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탐탁지 않았고, 내가 예쁘다고 하는 사진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두고 둘 다 서로의 모습을 먼저 보았던 것이었다. 각자가 잘 나온 사진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더 많이 우겼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소에도 그랬던 것 같다. 여행지에 가서 함께 찍은 사진을 봐도 내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먼저 보고 나서야, 그 다음에 그녀를 포함한 전체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 속에서 함께 있는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나를 먼저 보았던 것이다.



문득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서로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두려운 마음은 아마 여전히 신부 쪽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시집 간다’는 표현만 봐도 그렇다. 원래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두려움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아직은 서툴고 두려운 결혼을 앞두고 사진으로나마 더 예쁜 자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을 그녀에게 그게 뭣이 중하다고 나는 내가 잘 나온 사진을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강점혁명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 그 결과로 나온 나의 다섯 가지 테마 가운데 『포용』과 『공감』이 있었다. 나는 『존재감』이나 『배움』, 『적응』과 같은 테마를 예상했던 나는 이 두 가지 테마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려고 한다. 사람의 천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정말 『포용』과 『공감』의 재능이 있다면 이 재능을 누구에게 가장 많이 써야 할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녀와 앞으로도 함께 많은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찍은 사진을 볼 때 마다 내가 아닌 그녀를 먼저 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함께 있는 우리를 볼 것이다. 그렇게 나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보지 않고, 함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서로를 『포용』하고 더 많이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아, 그리고 내가 바득바득 우겨가며 겨우 예선을 통과시킨 웨딩 사진들의 대부분은 최종 결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남자 매니저가 보기에도 그녀가 고른 사진이 더 낫다고 한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냥 웃었다.




                                                                              2017년 10월 9일


                                                                   -- 윤정욱(변화경영연구소 11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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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보니 저도 야외촬영 할 때가 기억나네요. 


3월 첫주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햇살은 좋았지만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여서 제법 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야 턱시도를 입었으니 조금 덜했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아내는 추위에 꽤 고생을 했죠. 살짝 그때 사진 하나만 공개할까요?^^



오래되기도 했지만(1996년) 흑백이라 더 빈티지한 느낌이 있네요. ㅎㅎ


사진도 중요하지만 결혼생활은 실전이죠. 위 글을 쓴 윤정욱 연구원도 결혼 후 공감과 소통을 하며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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