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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r 05. 2021

낯설고 원초적인 생명의 맛,
모리국수

#81, 땀을 뻘뻘 흘러가며 먹었던 모리국수의 추억


포항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아들 녀석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여기 말고 어디든 좀 데려가 달라는 아이에게 말문이 막혔다. 어르고 달래고 을러대고 엄마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설득의 수단을, 아이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고개를 떨구는 것만으로 물리쳤다. 이 미치고 팔짝 뛸 무저항의 저항에 두 손 두 발 든 나는 그냥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가, ‘끙’하고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가자, 포항으로! 아이는 두 말 하지 않고 물과 빵을 챙겨 메어준 가방을 지고 내 뒤를 따라 나섰다.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지(anywhere but here)’. 그런 영화 제목이 있었다. 고등학생인 미혼모가 아이를 낳겠다고 살던 곳을 떠나는 이야기였던가? 이제 그 영화주인공을 기껏 두세 살 차로  따라잡은 내 아들은 갑자기 품 안의 어린 아이에서 언제든 훌쩍 딴 세상으로 떠날 수도 있는, 낯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무작정 뛰쳐나가지 않고 내게 SOS를 보내는 아들의 손을 잡겠다고, 아이가 입은 옷과 비슷한 줄무늬 티셔츠에 남색 반바지를 일부러 찾아 입고,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메고 현관을 나섰다. 그까짓 학교 하루 건너뛴다고 뭐, 인생에 하자 없다! 없겠지…?


포항은 선택한 것은 순전히 시간 때문이었다. 40분 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달려온 노포동 종합고속터미널.  1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그 곳이 가장 적절한 선택 같았다. 떠나고 싶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이는 기다림을 힘겨워 할 터였다. 너무 지치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를 가진 종착지를 찾았다.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기에는 나도 아이도 멘붕이었다. 아이의 하루 가출에 동반자가 된 날, 우리는 포항에서 모리국수를 만났다. 끝없는 파도에 지쳐 돌아온 어부들의 헛헛한 속을 달래준다던 모리국수는, 생의 첫 사춘기를 만난 아들과 성년의 사춘기를 지나는 엄마를 붙들어 앉히고 타일렀다. 버텨. 조금만 더.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다 


한 마리의 용이 떨어져 구룡포라 이름했다는 그 곳은 포항의 끄트머리에 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포항 시내에서 약 한 시간을 버스로 더 달려야 한다. 작은 어선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는 포구를 끼고 돌아, 야트막한 동산 위를 향해 어지럽게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일제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을 만나게 된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선 2층 목조주택들은 소위 오까메집이라 부르는 낡은 일본식 주택들이다. 1920년대, 일제가 동해의 어업권마저 점령하고자 축항한 어업기지가 구룡포였다.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골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재현한 골목길은 이제 일본인 가옥거리란 이름의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한때 이 작은 어촌의 수탈에 앞장섰을 이들의 집들이 지금은 그저 추억의 구멍가게나 찻집, 그리고 대부분 동네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으로 쓰이고 있었다.


세월이 멈춘 듯한 그 골목을 아무 목적 없이, 아무 말도 없이 아들과 함께 걸었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골목을 쏘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비 오는 날이면 신이 나서 우산을 쓰고 인적 드문 골목길을 누볐다. 오래된 작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엉켜있는 골목 탐험은 아이의 취미이고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러다 골목 하나 찾을 길 없는 신시가지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부산에 와서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된 아이는 제 방을 무서워했다. 너무 높아서 엄마, 무서워. 그리고 거대하지만 철저하게 고립된 주상복합아파트단지를 낯설어했다. 이 곳은 엄마, 섬 같아. 이어지는 골목이 없어. 이상하고 외로운 곳이야. 돌아다닐 골목이 없어진 아이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온갖 놀이시설과 분수까지, 잘 가꾼 정원을 갖춘 삐까뻔적한 고층아파트단지를 왜 아이는 즐거워하지 않고 힘들어 할까. 답답했다. 아빠의 이직과 엄마의 퇴직으로 전격 결정한 이사였다. 아이는 꾸역꾸역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견뎌나갔다. 그러나 걱정했던 바와 달리 친구도 여럿 사귀고 학교생활도 큰 무리 없이 하는 것 같았는데. 맘 속으로 삭이고 삭이다 구조요청을 한 것이다. 여기 말고 아무 데나 엄마, 나 좀 데려가.


골목을 걸었다. 미로 같은 길들을 구비구비 따라 걸었다. 도중에 구멍가게에서 산 옥수수 쫀득이를 다 먹어 치우고도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골목벽에 붙은 까꾸네 모리국수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전부터 포항에 오면, 모리국수라는 걸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올 일이 없었다. 나는 퇴직을 하고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떨어지는 일들을 쳐내고 또 새로운 일거리에 정신을 빼앗겨 한 시간 거리의 포항에 올 생각을 못 했다. 나는 또, 모리국수를 생각하듯 간간히 아이를 생각하다 잊다 하였다. 집에 머물러, 매일 아침과 저녁을 차려주고, 준비물을 챙겨주면 나의 의무는 끝,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처럼 바쁜 직장에 다닐 때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시간할애가 아닌가. 이제 집에 있잖아, 나는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옆에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다.


작은 골목 안에 숨은 더 작은 골목 안에 그 국수집이 있었다. 벽에 붙은 메뉴는 2인분, 3인분, 4인분이라고만 써 있었다. 다른 메뉴가 없다는 얘기다. 식당 안에는 휠체어를 탄 여인을 데려온 가족과,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어색하게 낀, 아마도 고용주로 보이는 남녀 일행이 한 테이블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테이블 4개가 고작인 작은 식당은 꽉 찼다. 다들 막걸리에 소주까지 반주를 하는 눈치였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부산으로 가야 하는 일정만 아니라면, 나도 막걸리를 시켰을 것이다. 한잔만 마셔도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신세지만, 그때는 정말 술 생각이 났다. 아쉽지만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몸을 못 가누는 형편이 될 수는 없으니…  사이다와 2인분을 주문했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커다란 양푼에 담긴 국수와 김치 한 보시기가 나왔다. 마그마처럼 붉고 뜨겁게 끓어 오르는 국물을 훌훌 저어가며 국수를 양껏 대접에 퍼 담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매운탕이나 어탕 국수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게 걸죽한 국물과 제법 튼실한 생선 토막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와 내가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게 들어간 생선은 아귀였다. 쫄깃하고 탄탄한 생선살을 입안 가득 밀어 넣으며, 흐뭇하게 국수를 삼키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큰 녀석은 어릴 적부터 매운탕을 몹시 좋아했다. 사실 나이든 양반들이나 좋아하는 온갖 토속적인 음식을 다 좋아했다. 솥 단지 바닥을 박박 긁어 끓인 누룽지, 묵은지와 두부를 넣어 바글바글 끓인 김치찌개, 작은 아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군내 나는 멸치액젓 양념 따위를 아이는 즐겨먹었다. 그 애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열살 때쯤에 가보았던 해남의 어느 동네 식당에서 맛 본 잡생선 찌개였다. 시래기와 함께 끓인 생선살이 부서져 걸쭉해진 그 국물을 떠먹으며 아이는 감탄했다. 엄마, 엄마,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


콩나물, 그날 들어온 생선, 기계로 뽑은 납작한 칼국수면을 고춧가루 듬뿍 풀어 끓여낸 모리국수는 원래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주던 음식이다. 국물이 시뻘개지도록 투하한 고춧가루도 그렇지만 마늘을 듬뿍 넣어서, 생선과 국수의 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이 칼칼하고 든든하다. 거기에 2인분을 시키면 웬만한 3-4인분에 해당하는 푸짐한 양이 나온다. 함께 나온 김치는 살짝 익어 숨이 죽었지만 마늘을 듬뿍 넣어, 생선을 넣은 개성강한 칼국수와 함께 먹기에 적당하게 맛이 들었다. 반 세기 가깝게 한 자리에서 모리국수를 끓여냈다는 할머니는 정신 없이 국수를 들이키는 아이가 신기한 모양이다. 맛이 괜찮아? 네, 맛있어요, 후룩. 쩝. 아이는 얼얼한 혀를 사이다로 달래며 대접 한 가득 세 번이나 다시 퍼 담아준 국수를 국물까지 다 해치웠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국수를 먹고 나니, 부러 맞춰 입은 아이와 나의 줄무늬 티셔츠는 매운 국물이 사방으로 튀어 처참한 몰골이었다. 이 몰골이 되도록 모르고 참 신나게 먹어댔구나.            


누군가가 그랬다[1].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고. 육지의 생명인 나와 다른 세계, 비밀의 바다에서 온 생명을 먹는 행위는, 나라는 존재의 생존을 직시하는 행위다. 낯설고 원초적인 바다의 존재, 생선이 그득한 국수 냄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던가. 버텨. 불과 수 시간 전에도 넘치는 생명력으로 바다를 헤엄쳤을 아귀가 소근, 내게 던진 귓속말은 이랬다. 날 먹고 버텨 봐. 길게 가늘게 이어지는 국수발처럼 그렇게 버텨. 괜찮을 거야.


구룡포에서 포항 시내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귀가 나눠준 기운으로 내내 든든했다. 며칠간 밤에 잠을 못 이루던 아이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노곤하게 잠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아이는 또 학교에 가야 하고, 나는 또 내가 만든 일거리들과 씨름을 해야 한다.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져야 하는 건, 나와 아이다. 여행은, 가출은 그러라고 하는 거 아닌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은 상황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다른 눈으로, 달라진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함일 뿐이다. 그러니까 공중정원 같은 아파트에 현기증이 나는 날이면, 나는 아이의 가출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들, 국수 한 그릇의 감동으로 기운을 차릴 줄 아는 너라면, 괜찮을 꺼야. 다시 이 훵한 콘크리트의 섬이 답답해질 때면, 우리 매운 생선탕을 먹으러 가자. 지치고 헛헛한 맘까지 든든해지는, 칼칼하고 푸짐한 생명을 들이키러. 우리 또 가자.



[1] 고기는 남성적이고 강하지만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는 비밀의 바다라는 세계에서 왔다. 그것은 우리 현존의 절대적인 상대성을 증명해 보이지만 또한 미지의 나라를 한 순간 현시해줌으로써 우리에게 굴복한다… 그때 나는 다른 곳으로부터 온 감각과 마주하는 이 특별한 경험으로써 내가 나를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것, 이 대면이 내게 대조법으로써 나의 인간적 자질을 일깨워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한하고 잔인하고 원초적이고 고상한 바다여, 우리는 탐욕스러운 입으로 네 신비로운 활동의 산물을 덥석 문다. 구운 정어리는 직접적이고 이국적인 향기로 내 입천장을 장식했고 나는 한 입 먹을 때마다 자랐다. 잘 구워져서 껍질이 갈라져 터진 바다의 재가 내 혀를 애무할 때마다. -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 중에서, 민음사, 2011년)  



                                                                              2014년 9월 21일


                                                            -- 강종희(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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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모리국수가 됐을까.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몇 가지 설이 있다. 경상도 방언 중에 모디다(모이다)가 있는데 국수에 여러 가지 해물이 모디었다고 해서 모디국수로 불리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리국수로 굳어졌다는 것이 그 하나요. 이 음식을 본 사람들이 이름을 묻자 ‘내도 모린다’고 대답한 것이 그만 이름이 됐다는 설도 있다. 캥거루가 원주민 말로 ‘몰라’인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번외로 모리가 일본식 표기라는 말도 있다. 보통보다 많이 담는다는 뜻의 일본어 모리(もり)를 쓰고 있다는 주장인데, 구룡포가 일본강점기에 신사가 지어질 정도로 일본인 근거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럴 듯한 해석이다. 실제 커다란 양은솥 째 나오는 국수를 보면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푸짐하다. 경상도 방언에서 따왔든 일본말에서 유래가 됐든 모리국수는 이제 구룡포에서도 한두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추억의 음식이 됐다.


                                                       - '모리국수를 아십니까?'(경산신문, 2009년 11월 16일자) -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m.gsinews.com/view.php?idx=44199)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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