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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y 06. 2021

내 상사였던 사람의 뒷모습(전편)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하여


그는 나의 


직속상사였습니다. 나의 보호막이기도 했고 나를 키워야 하는, 더 나아가 본인의 자리매김을 위해 나를 잘 활용해야만 하는 상사이기도 했습니다.


2008년 회사에서 부서를 옮겨야만 했을 때 나는 그가 팀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재무팀을 택했습니다. 그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공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방임형 상사였습니다. 조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타입이었죠. 꼭 필요한 지시 외에는 직원들이 알아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본인 말로는 방목형이라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일하며 좋았던 점은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를 택한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는 열린 마음을 가졌기에 제가 시도하는 것들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 바라봐 주었죠.



시간이 흘러


제가 재무팀장이 되고, 그는 부문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존이 시작되었습니다. 팀장과 부문장은 한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밀하고 끈끈한 팀웍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관계가 어긋난다면 팀웍은 깨어지게 되어 있고, 결국 누군가 하나 혹은 둘 모두는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렇게 뛰어난 팀장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팀장도 아니었죠. 물론 성과를 내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그에 따른 일정 수준의 성적을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에 띌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본인의 성장과 자기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할 수 있겠네요.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여 무언가(업무가 아닌)를 하고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책(경제)을 출간하며, 꾸준히 회사 게시판에 직원들을 위한 경제상식 글을 올리는 등의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부문장 입장에서는 팀장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제지를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업무에만 집중하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런 모습이 어느 정도의 인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할 때는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제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죠. 물론 공부라는 것이 업무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제 관련 책을 읽고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와 함께 했던 


일 중에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사 건물에 은행을 유치하는 일이었습니다. 거의 20년을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던 S은행이 어느날 갑자기 수지 타산을 이유로 그냥 방을 빼 나가 버린 후, 오너로부터 오더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건물의 품격(?)을 위해서는 역시나 1층에는 은행이 위치해야 좋다는 것이었죠. 소위 ‘뽀대’가 난다는 거였습니다. 그날로부터 부문장과 저는 주위 은행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이전을 권유하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 은행 이전은 지점 차원이 아닌 본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고, 상권과 입지 그리고 주변 지점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복합적인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은행의 지점장들과 미팅할 때마다 회사 건물에 입주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베네핏을 정리해 제시했고, 더 나아가 계열사까지 총동원한 데이터들을 내밀었습니다. 지점장들은 혹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시한 데이터는 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한단계 더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었죠.


몇 군데에서 본사에 의견을 개진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한군데에서는 상당히 희망적인 소식도 들었습니다. 특히나 이 은행의 경우 이미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죠. 더군다나 지점장이 매우 적극적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사의 반대로 인해 이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 건물로 입주할 경우 다른 지점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죠.



허무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너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옷 벗을 각오도 해야 했으니까요. 부문장과 저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주변 은행 지점장이 아닌, 이미 거래관계가 있던 모든 은행에 연락을 띄웠습니다. 그러던 중 한군데에서 본점 부사장에게 의견을 개진해 보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희망이 생겼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회사 근처에 이미 그 은행이 위치해 있었고, 이전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은행 이전은 불가능하지만, 출장소 개설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그럼에도 분명 은행은 은행이었죠. 회사만 바라보고 입주하기에 정상 은행의 규모는 너무 크기 때문에 본점에서도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습니다. 최종 결정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출장소 개설이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행이 다시 회사 건물 1층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오픈식 날, 재무팀장으로서 후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참 짠했습니다. 대체 이게 뭐라고... (건물 관리를 담당한 총무팀 말에 의하면 은행을 제외한 증권사나 다른 업종의 회사들 중에서 회사 건물에 입주를 하고 싶어한 회사들이 꽤 있었다고 하네요...)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m.cafe.daum.net/yoonjs/2Mhe/729)



☞ 내 상사였던 사람의 뒷모습(후편)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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