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이 취직을 했다.
그리고 난 취직한 아들을 둔 부모가 되었다.
기쁘다. 앓을 뻔했던 이가 빠진 듯 싶다. 너무 쉽게.
아들은 지난 2월에 졸업을 했다. 코로나 덕분에 졸업식조차 없이.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기에 그래도 취업은 잘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긴 했지만,
이렇듯 덜커덕 첫 면접을 본 회사에 취직까지 하다니 약간의 허무감(?)도 든다.
지도교수로부터 추천을 받고 지원서를 내더니
덜컥 면접오라는 연락을 받고,
그렇게 첫 면접을 다녀온 것이 지난 목요일(3/17)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날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화요일(3/22)부터 출근하라니.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정도다.
직원 50명에 보안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란다.
규모가 작아 그런지 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다만 3개월의 수습기간이 있다지만, 아무렴 어떠랴. 취직이 되었으니.
첫 출근을 하는 아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본다.
아들아.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엄밀히 말해서는 취직에 대한 축하도 있지만,
그보다는 네가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된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정규 교육을 받으며 성인이 될 준비, 더 나아가 경제적 독립을 할 준비를 하게 되지.
외국에서는 스무살이 기점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를 마치는 시점이 아닌가 싶구나.
독립은 상당히 중요해.
특히 경제적 독립은 그동안 부모 의존적 삶이었던 것을
내 스스로의 삶으로 바꾸게 되는 선언이라 할 수 있지.
또한 돈을 번다는 것은, 그래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어 간다는 것은
마음적으로도 진짜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너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단다.
아들아.
많이 힘들꺼다.
물론 군대에 비하면야 무엇인들 못하겠냐마는,
그럼에도 직장이란 곳은 보이지 않는 총성과 포연이 난무하는
그런 전쟁터라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끊임없는 경쟁과 압박, 성과에 대한 부담감은 널 계속해서 짓누를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직장이라 할 수 있지.
아빠는 직장인을 조금 과하게 표현해서 ‘시간제 노예’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직장에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급여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회사에 넘겨 주었기 때문에 ‘시간제 노예’라고 표현하는 거지.
즉 우리는 정해진 시간 동안은 무조건 회사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리 싫더라도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거지.
이게 바로 노예의 숙명이라 할 수밖에 없는 거고.
아빠도 지금의 너와 같은 나이인 스물 여섯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딱 오십까지 직장인으로 살았으니
무려 25년이란 시간을 시간제 노예로 지냈구나.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내왔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생각조차 제대로 못하다보니, 그리고 쏟아지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긴 시간을 보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한 마음도 있고, 또 아쉬운 점도 있다.
그렇게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그 돈을 받아 지금의 자산을 만들었고,
또 너와 동생을 큰 일없이 키워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무려 25년이란 긴 시간을
회사를 위해서 대부분 썼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아쉬운 마음도 든다.
조금 더 일찍 나 스스로의 길을 찾고 나의 일을 찾아 시작했더라면
직업에서도 그 만족도는 훨씬 올라갔을 것이며,
더불어 나 자신의 성장도 더 크게 이루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이라도 나의 길을 찾아 진짜 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나의 능력으로, 나의 생산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단다.
그래서 아들아.
첫 취직, 또 첫 출근을 하는 네게 2가지만 꼭 당부하고 싶구나.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단다. 물론 안 좋은 점도 있지.
후자는 빼고, 좋은 점은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그렇게 배워 너의 자산으로 차곡차곡 채워놓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사람은 한권의 책이라 생각한단다.
좋은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지.
우리는 그중에 좋은 부분만 취하면 되는 거야.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한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하고, 열심히 배우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거야.
그런 신입사원, 후배에게 상사, 선배란 사람들은 한없이 약해지는 법이란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배우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데 누가 딴지를 걸겠니.
오히려 자신의 가진 것을 탈탈털어 가르쳐 주려 할 거다.
신입사원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너는 좋은 것을 많이 배워 곡간 채우듯 많이 채워 놓으면 되는 거야.
그것들은 너의 성장에 필요한 거름으로 널 쑥쑥 크게 도와줄 거야.
어떤 사람은 주인의식에 대해 내가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지냐며 반발하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내가 말하는 주인의식은 그런게 아냐.
당연히 회사 직원이 어떻게 회사를 소유한 오너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니.
그건 말도 안되는 거지.
주인의식이란 비록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대신 나의 노동과 시간을 제공하는 건 맞지만,
그 체제 안에 있더라도, 모든 생각과 행동의 주체는 바로 나,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특히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라 생각하는 게 매우 중요해.
즉 나는 직원이 아닌(실제로는 직원이지만), 회사와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거야.
나의 스승이었던 구본형 선생님은 저서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직원들은 1인기업가의 마인드로 직장생활을 해야한다고 강조했어.
그래야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았지.
수평관계와 주인의식으로 일하는 직원은 절대 수동적이지 않아.
능동적이며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이 회사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훨씬 큰 도움이 되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 줄 수 있고.
아들아.
지금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네게는 그리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머리 속에 잘 기억하고 있으렴.
시간이 흐르며 더 새겨야 할 이야기니까 말이지.
그리고 추가적으로 조금씩 네게 더 해 줄 이야기들이 있을 거야.
부모가 아닌, 인생 선배, 직장인 선배로서 말이지.
아들아.
출근 첫 날, 정신없이 보낼 가능성이 클거야.
그래도 즐기며 많이 배우렴.
인간은 배움 속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동물이니까.
하루 잘 보내고,
저녁에 집에서 보자꾸나.
밝은 얼굴로.
2022. 3. 22
널 사랑하고 항상 응원하는 아빠가
(표지 이미지출처 : https://www.crowdpi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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