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처럼 감사함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많이 설레었네요. 다만 좀 피곤했습니다. 잠을 설쳤거든요. 새벽 4시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전 회사에서의 강의라는 부분이 제게는 살짝 긴장과 함께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 교안을 한번 더 들여다보고 이후에는 책을 좀 읽었죠. 그리고 중간에 잠깐이라도 다시 눈을 붙이려 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강의장이 있는 인재개발원은 행정구역상 양평이지만, 거의 강원도 홍천에 붙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먼 편입니다. 용인에서 출발하니 거의 2시간 가까이 소요되네요. 가다 보니 문득문득 예전에 다녔던 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교육받느라 이 길을 다니곤 했었지. 그 시절이 좋았었나? 살짝 의문이 들긴 하네요. 뭐 그래도 이렇듯 추억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원래 강의는 오후 4시 30분부터인데 서둘러 오다 보니 4시쯤 도착했습니다. 건물은 여전히 씩씩하게 자리 잡고 있네요. 약간 오래되어가는 티가 다소 나긴 하지만.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담당 임원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헐. 물론 아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대기업의 임원이 일개(?) 강사를 기다리고 있다니... 기분이 다소 묘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환대받아도 되나? 물론 처음이니까 이런 것이겠지만, 그래도 감사함과 겸연쩍음 그리고 살짝의 당황스러움이 몰려오네요.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습니다. 그는 방송까지 탄 유명 인물입니다. 장안의 화제였던 ‘꼬꼬면’을 개발한 사람이니까요. 저도 그렇지만 그도 역시나 세월의 흔적이 묻혀 있네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짧은 담소와 함께 부문장은 서울로 출발하고 이후에는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팀장 그리고 아는 후배 한 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렇듯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입니다. 어느 누가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지 예상이나 했을까요. 그래서 사람 관계는 항상 진솔해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강의장으로 이동합니다. 뒤쪽에 서서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갑작스레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겁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내가 강의를 한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이런 식이면 좀, 아니 많이 곤란한데. 어떻게든 진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와중에 강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북적북적 시끌시끌한 분위기. 아는 얼굴도 눈에 띕니다. 악수와 함께 인사를 나눕니다. 잘 지내고 있죠? 반갑네요. 아마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얼굴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강의장 앞으로 이동해 강의 준비를 합니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쿵쾅. 우짜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후배분 한 명이 제 책을 3권이나 가져오더니 사인을 해달라고 하네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나 강사이기 이전에 작가구나. 2권은 자신에게, 1권은 친구에게 줄 거라고 하네요. 잠깐 사이 사인 문구를 고민한 후 사인을 합니다. 그러면서 예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의 생물학자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를 이 곳, 인재개발원에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현역 팀장일 때였죠. 제가 생물학과 출신인지라 최재천 교수님의 이야기는 방송뿐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런 분을 직접 뵙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니. 그래서 읽은 책 2권(한 권은 아들이 읽었던 청소년 도서였습니다)을 가져와 사인을 받고자 했었죠. 강의가 끝난 후 부리나케 쫓아가 사인을 요청드렸습니다. 허허 웃으시며 천천히 사인을 해주셨는데, 특히나 제 아이도 교수님의 책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리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시네요.
강의장에서 사인할 일이 가끔 있곤 합니다. 그러면 괜스레 쑥스러워집니다. 내가 뭐라고. 그래서 일까요, 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전 직장의 후배가 가져온 책에 사인을 하며,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강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번 더 해보게 되네요.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진정되네요. 사인을 받기 위해 제 책을 가져온 후배의 열성을 보며,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나 봅니다. 잘할 거란 믿음 말이죠.
불태웠습니다. 목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했네요. 명강의는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제가 100이 아닌 200을 전한다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측에서 또한 노력하지 않으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죠. 40명 중 다만 몇 명에게라도 제 생각이 온전히 전달되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다소 앞서가고 있는 선배의 이야기가 충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활력소를 넘어 방향을 잡는 데 있어 나침반과 같은 역할이 되길 바래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올 때보다 더 피곤하네요. 그래도 이 피로가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라 다행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또 이런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말이죠. 하지만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제 할 일을 했고, 또 제 인생사에 한 획을 그은 것만큼은 분명하니까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제 존재의 가치를 다시 한번 느낀 것 같아 기쁘고 행복하네요.
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처럼 감사함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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