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치고 싶다
집에 가려는 데 내 신발이 없다. 신발장을 뒤지다 눈을 떴다.
시험을 보는 데 시간이 모자라 동동거리다 깨어났다. 이즘 불안이 꿈속에서 민낯으로 나타난다.
연주회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곡은 완성되지 않았고 선생님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때리는 소리 말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라고, 한음 한 음 꾹꾹 누르는 연습만 하고 절대로 속도를 내지 말라고...
시간이 없는 데 정말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 한 들 이해를 하겠나 싶어 혼자 구시렁 대다 왕짜증을 부리다가, 연습실에서 장난 삼아 힘을 빼고 꾹꾹 누르며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공자도 힘들다는데 나에겐 험난한 코스다.
여전히 나의 과제이다.
연주회로 스트레스가 시작이다.
나는 피아노만큼은 진심이다. 맑은 소리를 다시 만드는 연습을 해서 정말 잘 치고 싶다.
*월 *일
저녁에 레슨을 받았다. 직장 다니는 청춘들이 많아 연습실이 만 원이다. 엘리제를 치는 자. 쇼팽의 어마 무시 한 곡을 두드리는 자... 자리가 없어 대기까지 하는 걸 보면 피아노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역시 피아노가 최고다.
선생님은 칭찬이 많다.
'음악을 하셨다면 정말 잘하셨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아프다.
이제 뭔가 알 것 같은 맑은 소리가 나는 데, 나이가 많다. 다른 것에서는 나이 탓을 하고 싶지 않은 데 피아노는 정말 아쉽다. 쇼팽의 발라드를 칠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배우고 싶다.
피아노가 있어 내가 숨을 쉰다.
음악으로 살고 음악에 죽을 수 있을 만치 진심이다.
당분간은 약속 금지, 모임 금지, 피아노에 올인이다.
*월*일
그랜드 피아노 실이 비어있어 몰래 들어가 한 시간을 들입다 두드렸다. 그러고 다시 업라이트에서 두 시간을 연습하고 집에 와서 꼼짝없이 소파에 붙어버렸다. 중노동을 한 것 같은 피곤함으로 이즘 이러고 산다. 아마도 이 생활은 연주회가 끝나야 끝이 날 것이다. 악보를 스토리로 엮어 연습한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2번은 ff로 치다가 pp로 치는 밀고 당기는 부분을 이중인격자의 모습으로 쳐야 한다. 가벼울 때는 가볍게,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게 세게 그러나 힘 있게 그러다 아련하고 슬프게... 많은 이야기를 뿜어내야 하는 곡이다. 슈베르트의 심연이 궁금하다.
나는 잘 치고 싶다. 소리가 엉망이어도 다시 고쳐서라도 정말 잘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