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아저씨의 패션이야기 11
(상)편에 이어
이러한 촐로족들의 문화는 미국 서/남부 다른 문화들과 융화하며 동시대의 주류 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스케이트보드는 대표적인 예다.
촐로들의 패션을 이야기 할때 치노팬츠와 플란넬 셔츠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아이템으로는 반다나, 야구모자, 긴 양말, 반스나 컨버스, 코르테즈를 비롯한 스니커즈가 있다. 이러한 촐로들의 스타일은 대부분 스케이트보드 문화와의 결합에서 파생된 것이다.
68년 결성된 Z-boys는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서 만들어진 서핑 크루였다. 73년도 우레탄 바퀴의 발명과 함께 탄생한 스케이트보드는 날씨와 바다의 유무에 크게 영향을 받는 서핑보드에 비해 제약이 작았고, Z-boys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 물이 빠져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본격적인 보급이 시작되었던 캠코더를 활용해 자신들이 스케이트 타는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 이름을 알렸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회를 휩쓸며 세력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이들 Z-boys 중심엔 한 치카노가 있었으니, 바로 멕시코계 미국인 “토니 알바”다.
1957년 맥시코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토니 알바는 멕시코 현대사를 직접 겪은 인물이었다. 촐로의 문화를 피부로 느끼며 자랐던 그는, 앞서 언급한 모든 아웃핏을 활용해 스케이트 보딩에 적합한 룩을 만들었다. 플란넬 셔츠와 치노팬츠를 입고 양말에 반스ㆍ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안 트레이드 마크인 자신의 아프로 머리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트러거 캡과 스냅백을 썼다. 종종 미국 남부 지역 갱단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반다나와 파추코의 상징이었던 페도라를 쓰기도 했다.
Z-boy는 또래집단이었기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의복문화를 공유했다. 그들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실력은 미디어의 영향력에 힘입여 퍼져나갔고, 그들의 복장은 스케이트보더라면 모름지기 따라야할 바이블 정도로 추앙받게 되었다. 특히, 토니 알바는 1970년대 반스의 디자인을 돕기도 하는데, (반스가 Z-boys가 만들어진 산타모니카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브랜드라는 것을 알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후 반스는 촐로 서브컬처를 다룰 때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아이템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스케이트보드로부터 시작된 스트릿 브랜드인 스투시, 슈프림 등 스트릿 브랜드는 치카노의 촐로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 시즌까지도 여전히 플란넬과 타탄체크는 스케이트보더들에게 사랑받는 디자인이다.
촐로 문화 재생산에 큰 역할을 또다른 하나는 웨스트코스트(W.C)의 힙합씬이다.
웨스트코스트 힙합 씬의 대부인 dr.dre의 가사에는 “로우 라이드”가 자주 등장한다.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로우라이드는 서스펜서를 손봐 차체를 낮게 만든 캐디락 자동차로, 치카노의 전유물이다. 이처럼 W.C 힙합 신에서 치카노의 문화는 하나의 클래식이었다.
비단 로우라이드 뿐만 아니다. W.C 힙합 씬에서 촐로 스타일은 상당한 애정의 대상이었다. W.C 힙합의 한 갈래 중에는 신디사이저 음향과 느린 템포를 특징으로 하는 G-funk가 있다. 닥터드레, 스눕독, 투팍, Eazy-E 등 W.C의 거물급 MC들을 이 장르의 아티스트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니 영향력이 대단한 장르였다. 이들 래퍼들은 기본적으로 갱단과의 커넥션이 있었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촐로 문화가 녹아든 맥시칸 갱스터들의 스타일을 즐겼다. 촐로 스타일은 이들 아티스트스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특히 크립스 갱스터였던 스눕독과 갱스터 랩의 대부로 알려진 eazy-e 뮤직비디오에서는 치카노 문화와 촐로 스타일을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스눕독과 투팍은 공식석상에서 주트수트를 착용하기도 했다.
여자와 마약, 갱스터의 삶을 랩으로 표현한 이들의 이미지는 강렬했고, 미디어의 보급을 통해 현 시대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촐로 문화의 영향력은 미주 지역에 그치지 않았다. 9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로우라이더 붐을 통해 아시아에 유입된 치카노의 서브컬쳐는 우라하라패션과 현대 일본 패션을 이끌어나가는 유수의 브랜드와 산업의 테마가 되었다.
특히 와코마리아의 경우 매 시즌 촐로 스타일을 재해석한 아웃핏을 컬렉션에 올린다. 앞주름이 들어간 넓은 폭의 울 팬츠에 오픈 카라 셔츠와 플란넬 셔츠, 페도라를 활용한 양아치스러운 룩이 아주 매력적이다.
캐피탈은 21ss 시즌 컬렉션에 스케이트보드를 주제로, 반바지에 긴 양말을 매칭하거나 주트 수트를 연출하는 등 촐로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미니멀한 고프코어 브랜드로 거듭난 더블탭스도 몇 년 전 까지 vatos 셔츠를 발매했다.
1920-70년대 빈티지를 다루는 드라이본즈에서도 치카노 룩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치카노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그들이 영위하던 삶의 방식은 동시대의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녹아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어지고 있는 문화산업들 중 대부분에서 치카노의 문화적 영향력이 컸던 이유가 크겠지만, 촐로 문화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쿨함과 멋스러움일테다.
글을 쓰면서 몇 편의 논문을 참조하였다. 촐로 스타일을 당대 노동자 계급이었던 멕시칸들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낸 표현이라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고,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복장에서 비롯돼 민족의 동질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는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특정한 갈래로서 정의하고 재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이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을 하는 것은 깊이를 위해 필요하며, 즐겁고 좋아하기 위한 깊이를 더하는 일인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