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12) "축구가 만든 서브컬처, 훌리건과 캐주얼"
얼마 전 기사를 통해 "블록코어"라는 신조어를 듣게 되었다. 축구 유니폼과 일상복을 매칭한 스타일링을 뜻한다고 한다. 메가 트렌드였던 고프코어에게 바통을 건네받은 스타일인 듯했다. 해외축구를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나에겐 그리 어색하지 않은 스타일링이었지만 신선하다는 반응이 제법 많았다.
사실 굳이 새롭게 명명하지 않더라도, 유니폼을 일상복으로 착용해 본 사람이라면 유니폼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멋스러운지 알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에 통기성과 디자인성을 갖춘 유니폼은 외출 시 최고의 선택이다. 아스널의 팬으로 알려진 감독 "스파이크 리"나, 토트넘의 팬이었던 주드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블록코어 스타일링을 즐겼다. 요컨대 축구장에서 만들어진 멋지고 편안한 스타일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도 축구장에서 시작된 스타일이 있었다. 바로 훌리건이 사랑했던 "캐주얼"이다.
훌리건은 축구장에서 난동을 일삼는 무리를 뜻한다. 본래 불량배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현대 축구장 폭력이 조직화ㆍ과격화되면서 폭력을 일삼는 극성 축구팬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훌리건은 "THE FIRM"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의 프로축구와 서포터즈 문화는 무려 19세기말부터 존재했다. 긴 역사로 미루어 훌리건의 등장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서포터즈가 집단폭력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70년대 영국은 경제적 암흑기를 걸었다. 과도한 사회복지 정책으로 인해 극소수를 제외한 영국 국민은 무력하고 가난했다. 수정자본주의 복지정책에 따라 경제활동에 대한 의욕이 감소했고, 이는 자발적 실업으로 이어졌다.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는 인종차별이나 폭동 같은 사회문제들을 야기했다. 영국의 청년들은 사회적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들의 스트레스는 영국의 제1 스포츠인 축구와 만나 훌리건이라는 집단 폭력 조직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상대팀 서포터즈와 폭력전을 치르며 화를 분출했다. 훌리건들의 난동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외축구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헤이젤 참사나 힐스버러 참사 역시 훌리건이 중심이 된 유혈사태였다.
주로 빈민가 출신이었던 훌리건은 축구장 폭력뿐 아니라 뒷거리의 여러 범죄에도 관여했다. 현재까지도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훌리건 방지를 위해 형법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이들은 유럽 사회의 큰 문제 여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던 훌리건들은 서브컬처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도 그럴 것이 훌리건의 주요한 활동무대였던 당대 영국은 각종 서브컬처의 산실이었다. 문화적 황금기를 보냈던 영국의 청년들은 바깥에서의 스타일을 경기장 안까지 가져왔다. 50년대에는 테디보이들이, 60년대에는 모드들이 훌리건이었다. 이후 70년대에 하드 모드족과 스킨헤드족, 차브족에 이르기까지 훌리건의 역사는 서브컬처의 역사와 맞닿아있었다
그리고 80년대 훌리건을 대표하는 스타일이 바로 "캐주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캐주얼이란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복장을 뜻한다. 하지만, 훌리건의 세계에서 캐주얼은 "훌리건들이 입지 않을 것 같은 비싼 명품 옷"을 뜻한다. 캐주얼을 입은 훌리건은 1980년대 초반부터 여러 클럽들의 연고지인 런던과 리버풀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캐주얼 훌리건은 일반인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했다. 그들은 축구와는 대단히 어울리지 옷을 입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아디다스 라코스테, 프레드페리 같은 스포츠 브랜드부터, cp컴퍼니, 스톤아일랜드와 노스페이스 등 기능성 브랜드, 아쿠아스텀, 버버리로 대표되는 클래식웨어까지. 캐주얼 훌리건이 애용한 브랜드는 참으로 다양했다. 훌리건의 캐주얼 스타일은 ‘테라스 웨어(Terrace culture)’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축구 관중석을 "테라스"라고 부르는데, 축구장 테라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옷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