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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daeone Jun 29. 2023

훌리건:유니폼을 벗어던진 서포터즈 (하)

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13) "축구가 만든 서브컬처, 훌리건과 캐주얼"

(상)편에 이어


경기가 끝나고 지하철에 모인 리버풀의 훌리건들. 버리의 노바체크가 눈에 띈다. ©the firms


 훌리건들도 결국엔 축구팬인데, 유니폼이 아닌 명품이라니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훌리건들이 명품 옷을 입기 시작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tapatalk


 훌리건들이 캐주얼을 착용하게된 가장 큰 이유는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반, 스킨헤드족이 훌리건이 되면서부터 훌리건들의 폭력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경기장 내에서 갖가지 폭력 사태가 일어났고, 훌리건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도 속출했다. 이에 경찰은 스킨헤드나 유니폼을 입은 이들, 낡고 값싼 옷을 입고 있는 관중을 훌리건으로 예상하고 집중적으로 단속했다. 팀이 해외 원정을 떠날 때면 이러한 단속은 더욱 심해졌다.


 훌리건들은 이러한 편견을 역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렇게 낡은 옷과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에 들락거렸던 훌리건들은 명품 옷을 찾아입기 시작했다. (스킨헤드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스웨이드헤드와 스무디로 변화했던 것이나, 60년대 한국의 장발단속 을 피해 머리를 박박 밀고 다니는 청년들이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청춘들은 왜 하지 말라는 것에 더더욱 열을 올리는 것일까.)


©fourfourtwo ©the guardian

 

 소속감은 캐주얼을 착용하는 것의 또다른 이유였다. 옷은 훌리건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미국의 갱스터들이 반다나의 색깔로 소속을 구분지었던 것처럼 훌리건들은 브랜드를 통해 조직을 구별했다. 영화 <어웨이데이즈>의 훌리건들은 아디다스(Adidas), <더 펌>의 웨스트햄 훌리건들은 엘레세(Ellesse) 운동복을 단체로 입고 나온다. 이는 브랜드 구분을 통한 소속감 형성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캐주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도 점차적으로 변화했다. 80년대 초에는 브랜드 로고가 강조되는 화려한 색상의 운동복이 인기였고, 90년대 후반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명품 코트와 점퍼가 인기였다.


 또, 피아식별을 위해서도 이러한 구별은 필요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이라 하더라도 서포터즈와 훌리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했다. 경기장의 방문 목적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에 띄지 않으니 상대팀의 아지트에 잠입 공격을 하는 데도 요긴했다. 보통의 훌리건 폭동은 중립 지역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복 차림으로 중립 지역에 잠입한 훌리건들은 경쟁팀의 지지자들과 쉽게 육탄전을 벌일 수 있었다.


 55년도부터 시작된 유럽 대항전 ©FM korea

 

 마지막으로 훌리건의 캐주얼은 멋있고 실용적이었다. 유러피안 리그가 대중화되면서 축구팀들은 자국 리그를 넘어 외국의 축구팀과 경기를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팬들 역시 해외 원정을 많이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의 팬들은 해외의 멋진 브랜드들을 자연히 접하게 되었다. 항구 도시인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과 에버튼의 팬들이 유럽 대륙의 명품 브랜드 옷을 들여오게 되었고, 이는 곧이어 잉글랜드 전역으로 입소문을 타게된다.


©80s casual classic


 그 중에서도 특히, 마시모 오스티의 스톤아일랜드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인기가 좋았다. 이들 브랜드는 춥고 비가 자주 오는 영국의 기후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이야 난방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에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게 경기 관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장의 테라스가 외부로 노출되어 있었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열악한 시설을 극복하기에 이들 브랜드는 기능적이었다.


 훌리건들의 경제적 성장도 캐주얼 스타일의 변화에 한 몫을 했다. 가난했던 과거의 노동자 계층의 훌리건과는 달리 80년대부터의 훌리건은 중류층이 다수를 차지했다. 훌리건들이 경제적 안정을 갖추면서 상대적으로 고가의 브랜드들도 경기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쇼미더머니 6의 "요즘것들" 무대 모습. 차브족의 패션을 오마쥬한 것이 인상적이다. ©Mnet


 브랜드들은 캐주얼 스타일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하였다. 훌리건들이 아이템을 착용하고 각양각색의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버버리는 많은 곤욕을 치렀다. 버버리는 90년대 후반에 차브족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였다. (차브족은 서브컬쳐 사상 가장 난폭하고 문제가 많았던 종족이다.) 오죽하면 노바체크 문양의 볼캡이 훌리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였다.


©youtube 채널 별놈들

 요즘으로 치면 치면, 버버리의 노바체크 패턴의 아이템들이 스톤아일랜드 형광 반바지나 언더아머 티셔츠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브랜드 가치 하락을 우려한 버버리는 결국 노바체크 패턴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도 하였다.


©the firms


 훌리건의 캐주얼은 하위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대중매체가 보급된 이래로 수십 년 동안 축구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슈퍼스타들과 함께 축구산업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거대 자본은 사회와 문화에 파장을 주었다. 테라스웨어는 그러한 물결 중 하나다. 경기장의 훌리건들이 생존을 위해 추구하던 패션은 현대에 와서 트랜드가 되었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브랜드나 스타일의 역사엔 문화의 발전사가 들어있다. 브랜드의 역사는 브랜드 정체성에 드러나기 마련이니, 결국 브랜드의 정체성에는 문화가 투영되는 셈이다. 서브컬쳐를 탐구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동시대의 브랜드와 스타일의 저변에 어떠한 역사가 숨어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보다 넓고 깊은 식견으로 문화를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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