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게 없으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 기획자한텐 해당안된다.
“이 시스템은 그냥 이렇게 굴러온 거예요.”
“불편하긴 한데, 어쨌든 돌아가니까요.”
“아직 사용자 불만은 없었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머릿속에서 빨간 경고등이 켜집니다.
기획자라면 그런 말들 사이에서 ‘지금은 괜찮지만, 진짜 괜찮은 걸까?’를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쌓인 시스템은 반드시 단단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초기에 어떤 이유로 설계되었는지 맥락이 사라졌고,
사용자와 환경은 바뀌었는데도 로직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획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시스템은 가장 많은 개선 여지를 품고 있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불편은 쌓여도 티가 안 나고,
비효율은 ‘업무 숙련’으로 커버되고,
이상한 건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죠.
기획자는 바로 그 ‘눈에 안 띄는 비정상’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제가 기획자로서 자주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왜 이 과정은 필요한 거지?
자동화가 가능한 절차인데, 왜 수작업으로 처리하지?
연동 수단이 있는데도, 왜 엑셀로 주고받고 있지?
실제 액션과 내부 시스템 기록이 다른 건 왜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흔히 듣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냥 원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에요.”
기획자는 바로 그 순간,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획자가 개선 아이디어를 찾는 건 대단한 발명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사소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고객센터에서 자주 반복되는 불만
테스트 중 반복적으로 튕기는 시나리오
협업 부서에서 매번 묻는 같은 질문
연동 수단 도입 때마다 겪는 비슷한 오류
“이거 왜 매번 이래요?”라는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거기서 작은 개선의 출발점이 나옵니다.
문서 정리하다가 오래된 로직과 지금 조건이 어긋나 있다는 걸 발견할 때
팀 회의 중, 아무도 기억 못 하는 기능의 잔재 로직이 거슬릴 때
테스트하다 보니 성공 케이스만 돌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예외 시나리오를 다시 설계할 때
외부 연동 파트너와 대화 중, 내부에 공유되지 않았던 운영 이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순간들은 기획서에 쓰여 있지 않지만,
기획자가 책임지고 발견해야 할 부분입니다.
1. 자주 멈추는 구간을 의심하기
익숙한 흐름보다, 자꾸 버벅이는 경로를 메모
2. 운영팀/현업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말에 귀 기울이기
“이거 또 그 문제예요”라는 말 = 기획자가 들어야 할 신호
3. 테스트 시, 정상 시나리오보다 실패 흐름에 집중하기
‘되면 좋은 것’보다 ‘안 될 때 어떻게 되는지’가 진짜 실무입니다
4. 없어도 돌아가는 기능은 없앨 수 없는지 고민하기
쓸모없는 기능도 복잡성 유지비를 계속 발생시키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시스템은 오래될수록, 잘 돌아갈수록 고치기 어려워집니다.
불편은 익숙해질수록 불편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죠.
기획자는 그 안에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는 건 맞는데, 진짜 이게 최선입니까?”
이건 귀찮아서 아무도 안 하는 질문이고,
그래서 기획자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기획자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스템은 멈추지 않아도 정체됩니다. 잘 돌아가는 시스템일수록, 더 잘 돌아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기획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큰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