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새로운 것을 배우면 자신의 세계가 '갑자기' 넓어진다. 수영을 좋아하게 된 이후 수영과 관련된 작품, 사람들이 내 눈에 쏟아져 들어왔다.
슬로바키아 사진작가 마리아 슈 바르보바(Maria Svarbova)의 수영장 사진들은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냈다. 청명한 수영장의 물색과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의 수영복들이 대비되는 사진은 언뜻 보면 그림 같다.
수영하면 으레 물이 사방으로 튀고 역동적인 팔 동작에 숨 가쁜 표정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슈 바르보바의 사진은 너무나 정적인 수영장을 담고 있다. 수영을 하기 전, 또는 이제 막 입수한 여성이 생각에 골똘히 잠겨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그는 주로 공공수영장과 여성들을 모델로 한다.
마리야 슈바르보바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aria.svarb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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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은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수영장 그림들은 쨍한 햇빛 아래 수영장 물이 반짝이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해서 당장 물에 뛰어들어가게 싶게 만든다. 슈바르보바의 사진이 주로 실내수영장인데 비해 호크니의 수영장은 야외라 수영 욕구를 고양시키기엔 더 적합하다.
특히 위 그림은 나이 든 호크니가 물속 젊은 시절 자유로운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경만 하지 말고 쟈켓을 벗고 풍덩 들어가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그림만 보면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개츠비가 총을 맞고 뒤로 쓰러진 뒤 사람들이 둘러싸 구경하는 모습 말이다. 데이지를 얻기까지 발버둥 쳤던 개츠비가 그제야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던.
인스타그램에서는 오영은 님의 수영 그림(인스타툰)을 즐겨 본다. '수영 일기'라는 그림 에세이도 펴낸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림체도 내 맘에 쏙 들뿐 아니라 수영 자세와 기술을 세밀하게 표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영 자세에서 눈앞에 고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듯이 팔과 머리를 넣으라는 그림은 '유레카'였다. '수모를 쓰는 위치는 어디가 적당한가', ' 평소 수영하면서 샤워를 자주 해서 수영 안 가는 날은 샤워를 아끼게 된다' 등 수영인만이 아는 재미난 에피소드도 가득하다.
오영은 님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o.young_eun/
지난 여름 책 '수영하는 여자들'을 읽으며 야외수영장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결국 혼자 여의도 한강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온통 가족, 애인, 친구들끼리 물놀이하러 온 사람들이었고, 나만 그 틈을 비집고 혼자 수영했다. 영국 브릭스턴의 리도 수영장에서 매일 아침 유유히 수영하는 로즈매리가 될 순 없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십 년 이용한 공공수영장을 잃게 된 86세 로즈매리와 이를 취재하는 기자 26세 케이트의 연대와 활동을 다룬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매일 찾았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난 로즈매리에게 리도 수영장은 삶 그 자체이다. 20대 근무하던 공공도서관을 비슷한 이유로 잃은 악몽을 재현하기 싫어 수영장 지키기에 나선다. 공황장애에 물 공포증이 있는 케이트는 로즈매리의 조언으로 수영을 다시 하게 되고 물속에 빠지듯 수영장 사수 운동에 빠져 맹활약한다.
소설도 재미있지만 작가 리비 페이지의 소개글에 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런던에 사는 작가는 새로운 수영 장소와 지역 공동체를 찾는 게 큰 즐거움이라 한다. 소설도 그렇게 출발했나 보다.
스포츠센터의 수영장, 가끔 여행길에 들르는 호텔 수영장 말고 세계 곳곳에 얼마나 근사한 수영장이 많을까. 그 수영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을까. 내 세계는 점점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