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Like an Australian

by 지언 방혜린
TVN응답하라 1988 드라마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만원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덕선이와 친구들의 장면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나를 단숨에 고등학생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사람이 더 이상은 절대 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버스는 뒤집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주행하면서도 다음 정거장에서도 그다음 정거장에서도 또 사람을 태운다.

분명히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이 쪼그라드는 건지, 아니면 공간이 늘어나는 건지. 내릴 때가 되면 김밥 옆구리 터지듯, 밥알처럼 사람들 하나 둘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시간 버스를 놓치면 곧장 지각이기에, 직장인들과 고등학생들은 사활을 걸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도 3년을 등교했다.


만원 버스만 졸업하면 모든 혼잡도 끝날 줄 알았던 건 나만의 오산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출근길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1호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매일 행군하듯 걸었고, 가끔은 계단에서 밀려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지옥철 속으로 묵묵히 몸을 실었고,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목숨 걸고, 성실하게 해냈다.


드라마를 함께 보던 우리 아이들은, 만원 버스 장면이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집 앞에서 학교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는 등교 서비스에 익숙하니, 그런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그들의 반응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시절이 단지 힘들고 고달프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나름의 치열함과,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때로는 짜릿함도 있었다. 토요일도 출근하던 시절. 오후 1시에 퇴근하고는, 일부러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곤 했다. 조금 멀고 돌아가긴 했지만,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조는 그 맛이 꿀잠이었다. 나는 특히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긴 거리를 여행하듯 이동하는 걸 좋아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흔들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시간은 내게만 허락된 작은 여유 같았다.


지하철도 좋았다. 문 앞에 서서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조용한 시간. 특히 국철이라 불리던 1호선을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며 창밖으로 펼쳐지던 강물과 하늘, 그 풍경은 늘 잠시나마 현실에서 날 떼어놓았다.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잊고 지냈던 추억이 불쑥 떠오르기도 했고, 쓸데없는 걱정들도 조금은 사라졌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할 일이 많지 않지만, 그때 그 시절의 대중교통은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행을 가면 나는 그 도시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일부러 타게 된다. 그 속에서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마치 잠깐이지만 그곳 사람들처럼 리듬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한국에서는 언제 탔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대중교통을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이곳 호주에서 타다니 역시 여행은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을 하게 하는 듯하다.


시드니는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진 도시다. 트램, 버스, 기차, 페리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운영되며, 구간에 따라 약간의 추가 요금이 발생하긴 하지만 환승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트램을 타고 시드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운전기사나 누구도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는 일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운전기사는 운전에만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금을 제대로 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점을 악용하는 외국 관광객들도 있다고 들었고, 실제로도 요금을 내지 않고 승차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시드니의 트램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도심 명소부터 해변, 항구, 외곽까지 연결되어 있어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도시를 투어 하며, 발길이 닿는 대로 혹은 미리 정해 둔 목적지를 따라 이동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연인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정겹고 귀여웠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그렇게 아줌마의 호기심을 누르며, 우리는 타운홀(Town Hall)에서 내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하이드 파크로 향했다.

하이드 파크에는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공 분수 예술 작품’으로 손꼽히는 아치볼드 분수가 있다. 분수의 곡선이 아치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었다. 이 분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호주와 프랑스의 연합을 기념하기 위해 1932년경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르데코 양식의 분수로, 주변에는 다양한 청동상이 세워져 있고, 각 조각마다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이곳을 산책하거나 감상하며 여유로운 주말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하이드 파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곳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들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가지들이 든든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었고, 그 아래 마련된 벤치에서 한참을 쉬었다. 주일 오전이라 그런지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잠시 공원을 거닐고 난 뒤, 우리는 시드니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으로 향했다.


아치볼드 분수를 등지고 길을 하나 건너면 바로 마주하는 성당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석조 건물로, 시드니 사암으로 지어진 그 외관은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주춧돌은 1868년 당시 대주교였던 베데 폴딩에 의해 놓였으며, 그 자리는 원래 호주 최초의 가톨릭 성당이 있었던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성당은 186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같은 자리에 지금의 성당이 다시 세워진 것이다. 이곳은 영국과 프랑스 대성당의 특징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주일 미사가 막 끝난 후였고,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개인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내부를 둘러보며, 종교와 상관없이 한편에 앉아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당 내부는 예상보다 층고가 높았고,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창문에는 성경 속 장면들과 성모 마리아의 역할이 섬세하게 묘사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고 있었다. 공간 전체는 따뜻한 색감 속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고요하고도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래된 기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한 그 공간은, 신의 숨결이 나를 감싸 안는 듯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KakaoTalk_20250604_105803308_12.jpg

성당을 나와 거리를 걷다 보니, 주말을 맞아 차량이 통제되고 어딘가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닥과 깃발, 가로등 등 곳곳에는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불빛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행사는 ‘마르디 그라스(Mardi Gras)’라 불리는 세계 3대 퀴어 축제 중 하나였다.


마르디 그라스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축제이지만, 성별과 정체성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즐기는 문화행사다. 퍼레이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며, 구글, 메타(페이스북 모기업),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후원하고 있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만 명이 시드니를 찾고, 시에서도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얻는다고 한다. 거리에는 동성 커플들도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고,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롭고 과감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많이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우리 가족에게는 낯선 모습들이었고, 종교적인 신념과도 맞지 않아 우리는 혼잡한 축제의 중심지를 피해 잠시 조용한 식당에 들러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때 딸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나도 뒤따라 화장실 쪽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딸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식당에는 양쪽 끝과 중간, 총 세 군데에 화장실이 있었고, 딸아이가 간 곳은 유니섹스 화장실이었다.


처음 접하는 화장실 문화에 다소 당황했는지, 딸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돌아와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기에, 우리는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호주에 이런 축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뜻밖에 간접적으로나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문화의 차이를 실감한 순간이었지만, 낯섦 속에서 잠시 멈칫했던 그 경험마저 여행이 주는 특별한 의미처럼 다가왔다. 결국 그것도 우리가 세상을 배워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었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