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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 Oct 18. 2024

얼떨결에 어느새 대학 입시 준비합니다.

고3 중3엄마의 일상, 그리고 쉼표

2025학년도 수능이 50일도 채 안 남았다. 대학별 수능 원서접수도 시작했다. 미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집 고3이는 원서는 어디를 쓸지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어봐도 몇 마디 대충 얼버무리다 마는 고3이. 미대 입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워낙 준비할 것도 많고 노출된 정보는 별로 없어서 나는 사실 어느 순간 살짝 손을 놓아버렸다. 누구보다 앞장서 달려 나가던 열정맘 스위치는 off 된 지 이미 오래다.

큰아이가 예고 입시를 준비할 때는 코로나 시절이었다. 정부의 집합금지명령과 식당조차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삼시세끼 도시락을 싸서 차에서 밥 먹이며 같이 입시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전직 영양사의 직업병이랄까 탄단지의 균형을 맞춰가며 매 끼니 정성을 쏟았다. 보약이며 남대문에 대형·  약국까지 찾아가 대치동 엄마들이 먹인다는 고함량 비타민을 열심히 사다 먹이는 열정을 보였다. 아침저녁 미술학원으로 학과학원으로 라이딩을 하며 꼭 2인 1조 파트너십을 최대치로 발휘해야만 그 결과가 합격이라는 훈장을 받을 것 같은 확신에 찼었던 것 같다. 아이는 결국 예고에 입학했고 3년이 훌쩍 지나 지금 대입을 코앞에 앞두고 있다.


딸아이는 서너 살 무렵부터 장래 희망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 초등시절 각종 예체능을 섭렵시키고 공부도 최고의 학원을 보내며 불철주야 관리했지만, 학업에서만큼은 내 욕심껏 최상위의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항상 아쉬웠다. 중학생이 되고 예고로 진학을 결정하고 나니 아이가 꿈을 위해 스스로 달리기 시작한다. 서울 소재 원하는 예고에 진학하려면 성적이 'All A'여야 한다고 하니 상위권을 유지하며 성적을 맞추고 하루 12시간씩 미술 실기를 준비한다. 어느 날 종일 실기를 마치고 밤 10시 이동하는 차에서 간식을 먹으며 영어 과외를 데려다주는데 딸아이가 무심코 툭 고백한다.

어렸을 때 나 땡땡이치고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으러 뽑기 하러 많이 다녔어. 그때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목표도 없었고 아무도 나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어. 아마 엄마가 더 많이 공부해라 몰아붙였어도 나는 공부 안 했을 거야.

그래서…. 재밌게는 놀았니?

어마어마했지~

그럼 되었다.


나의 물음에 딸아이가 대답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야기를 들었을 땐 쿨한 척 넘어갔지만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망치로 꿀밤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앞서가서 잡아 끌어당겨봤자 되는 게 아니구나. 자녀의 걸음에 뒤에서 조용히 뒤따라 가다 한 번씩 밀어주는 게 맞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


큰아이가 초등 입학해서 6, 중 고등 6년 합이 12년을 대학입시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와 인생의 중요한 또 한 번의 입시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복잡하다. 수많은 육아서에서 또는 인생 선배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아이를 믿고 기다려라. 응원만 해줘라. 다정하게 관찰만 해라.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하지만 부족한 엄마는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반평생 살았다고 세월만큼이나 쌓인 경험치가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그냥 두면 그 끝이 뻔히 보이는 데 가만두고 봐지지가 않는다. 우리나라 입시 판에선 저렇게 하다가는 쭉 낙오되기 딱 좋다. 자기 경험치를 살려주는 것도 좋고 꼭 제때 진학을 안 하면 어때?라고 말해 버릴 수도 있지만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에 또 어마어마한 금전적인 문제가 뒤따르기에 시간이 낭비되는 걸 쉬이 봐지지 않는다. 매 순간 개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타이밍을 보다가 한마디 하고선 예민한 시기 아이에게 갈등의 불씨를 심는다. 반복이다.  


                 '대학에 입학하면 이 모든 게 끝이 날까?'


나는 수능이 생긴 두 번째 해에 대학입시를 치렀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 직접 대학 입학처에 원서를 접수하고 눈치싸움도 상당했다. 요즘은 그 모든 걸 진학사 또는 유웨이어플라이이라는 사이트에서 원서접수를 한다. 이번 주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라 아이랑 원하는 대학 학교별 원서를 접수하고 있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 여간 떨리고 걱정되는 게 아니다. 학교별로 접수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인터넷을 찾아보고, 유튜브를 돌려보고 필기하고 혹여 놓치는 게 있을까 보고 보고 또 보고 이런 열정으로 공부했다면 법대나 의대를 갔을지도 모른다.  

눈알이 정말 빠질 지경이다. 나의 실수로 접수가 잘못될까 봐 심리적 압박감이 말도 못 한다. 수능 공부 마무리에 실기 준비까지 바쁜 딸과 또 2인 1조가 되었다. 원서접수에 함께 제출해야 하는 미술 활동 보고서가 있는데 작성이 꽤 까다롭다. 아이가 작성해서 평가 선생님의 첨삭과 지도를 받아 회신받은 걸 반영해서 수정해 주면 바쁜 아이 대신 편집하고 정리하느라 나는 요즘 매일 새벽 3시에 잔다. 다크서클이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또 수상실적 증빙서류를 파일형태로 제출해야 하는데 여러 개의 상장을 하나의 PDF 파일로 작성해 올리란다.  


'여러 갠데 하나래 하아~~'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으니 사고가 정지되었나 보다. 어지럽다. 분명 한글인데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많다. 그럼 또 온라인 이곳저곳을 찾아보고 입학처에 문의하고 돌다리를 만 번씩 두드린다. 상황이 이러니 중3이 우리 아들은 안중에도 없다. 사실 우리 둘째 중3도 예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입시로 따지면 아들은 10월 말에 결판이 나니 더 빠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누나에 밀려 아들은 뒷전이다. 내 신경이 거기까지 닿질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매일 고기를 열심히 구워준다. 아들은 그걸로도 충분한듯하다.  

엄마는 음식을 할테니 니들은 공부를 하거라... 눈물나는 고기와의 한판승부
나쁘지 않은 식사였어. 최고야


 쌍 엄지 업하는 리액션까지 해주는 단순하고  녀석이다. 중3 마지막 학기 중간고사 준비기간인데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모르고 잘 지내는 것만 겨우 확인한다. 딸 예고 입시와는 사뭇 다르다. 딸바보 아빠는 딸이 예고 입시를 하던 시절 1킬로 거리의 학원을 추울 때 추운지 모르고 더울 때 더운지 모르게 매일 라이딩했다. 반면 아들은 40도 육박하는 올여름방학 내내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 앞 학원으로 한 시간 반을 버스 타고 다녔다. 불평하고 비교하는 초 예민 아들이 아님에 감사할 뿐이다. 아이들 입시를 치르면서 나는 사실 불 안 하고 걱정되고 두렵고 힘들다. 아이들은 더 그럴 것이다.  


 차분히 다독이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봄날의 햇살처럼 응원만 해주는 엄마는 되어주지 못한다. 예민한 엄마인 건 이미 다 들켜버렸다. 그냥 아이들이 느끼는 걸 같이 느끼고 준비할 게 있으면 같이 준비한다. 완벽한 2인 1조 체제이다. 아이들이 태어나 서너 살 무렵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물었을 때 큰아이는 그림 그리는 사람, 둘째 아이는 영화감독이었다.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꼭 될 거하는 확신은 든다. 정말 잘할 것도 안다. 아이들의 어릴 적 꾸었던 장래 희망의 꿈을 위해 노력해서 이루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에 자리매김하고 살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이제 그만 나는 또 서류검토를 해야겠다.


PS. 신데렐라 엄마의 외출

이 와중에 지난 주말 학원에 열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우리 아이들에게 비밀로 하고 남편과 '성시경 콘서트 With friends, 자 오늘은'에 다녀왔다. 백지영, 이재훈, 조장혁, 윤종신, 김종서, 박정현, 양희은, 박진영 당대 최고 8명의 가수와 콜라보한 무대를 선보였다. 너무 즐겁다 못해 황홀한 공연이었다.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뜯기고 해져 너덜너덜한 지금의 마음 상태가 힐링되는 것만 같았다. 비밀은 금방 들통이 났다. 나는 마치 신데렐라가 잠시 호박 마차 타고 무도회에 다녀온 듯 꿈같은 3시간을 보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잠도 못 자고 대학입시를 공부하고 자료를 찾고 있다. 고3 엄마들 또는 중요한 일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중인 사람들에게 잠깐의 숨 쉴 수 있는 환기 타임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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