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내가 반려동물 그것도 털 날림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고, 예민하기로 말하자면 입 아픈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6살 차이 내 막내 남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고 또 묻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어이없이 웃기도 하고 홀린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결국은 주말에 광교에서 김포까지 조카 두 명과 올케를 데리고 고양이를 보러 온 것인지 고양이를 키우는 나를 보러 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사실을 확인하러 온 것인지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남동생은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별일이 다 있다고 현실을 부정했다. 사실 나도 고양이를 3년째 키우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진짜 우리 집에 이 작고 귀엽고 소중한 생명체가 먹고, 똥을 싸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교감하며 같이 사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건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다는 게 신기하단다.
코로나(COVID-19)가 끝나갈 무렵 내 친구가 모처럼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친구는 스코티쉬폴드라고 순둥이 고양이 양순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장시간 집을 비우니 고양이가 걱정돼 난감해했다. 나는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지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양순이 우리 집에 맡겨 내가 봐줄게!!"라고 했다. 그렇게 양순이의 단기위탁모가 되었다. 김포공항에서 접선하여 양순이와 양순이 밥, 간식, 장난감, 화장실, 모래 등 생명체 하나 들이는데 짐이 한가득이다. 갑자 기 좀 부담스러워졌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고 친구를 배웅하고 양순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이 세상 어느 진공 캡슐 안에 양순이와 나만이 남겨진 듯했다. 투명 구슬 같은 땡그란 눈으로 나만을 바라보는 양순이. 집에 오자마자 친구의 가이드대로 물을 한 그릇 내어주니 이 녀석 단숨에 홀짝홀짝 핥아먹는다. 양순이도 예상하지 못한 먼 이동과 낯선 공간에 적잖이 긴장했었나 보다. 그러고는 내 다리 사이를 8 자 모양으로 왔다가 갔다가 한다. 녀석 믿을 게 이제 처음 보았지만 해치지 않을 것 같은 나밖에 없었나 보다. 양순이는 우리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몇 시간을 탐색하더니 피곤한지 몇 시간을 잠만 잤다. 오후 내내 저녁을 준비하고 애들을 기다리며 양순이 깰까 봐 발뒤꿈치를 들고 다녔던 것 같다. 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양순이를 둘러싸고 앉았다. 별말도 안 하는데 서로서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하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5박 6일 동안 양순이와 꿈같은 동거를 하였다. 온 가족이 모이기만 하면 양순이 얘기다. 당시 예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딸과 초등 고학년 아들 별다른 공통 주제가 없어 둘러앉아 이야기할 날이 드문데 특별한 경험이었다. 드디어 친구가 돌아오는 날. 나는 어릴 적 우리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양순이에게 예쁜 하늘색 레이스 원피스를 하나 사서 갈아입혀 데려다주었다.
처음 올 때처럼 내 옆자리에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
양순아~ 잘 가~ 만나서 반가웠어~
말하니 그 수정 같은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거다. 정말 너무 놀라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양순이를 보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 난다고 양순이가 가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텅 빈 것 같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언니~ 고양이 키워요? 우리 집에 친칠라 암컷 고양이 쿠키와 페르시안 수컷 고양이 린네를 키우는데 쿠키 중성화하기 전에 언니 원하면 분양해 줄까요?
충주에 사는 친한 동생이 내 카톡 프로필 사진 올려놓은 양순이 사진을 보고 전화가 왔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머릿속은 사고가 정지되었는데 입은 좋아서 귓가에 걸려있다. 내가 진짜 집사가 된다고?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감정이 몰려왔다. 우리 가족은 만장일치로 분양받기로 하고 새 식구를 기다렸다. 양순이가 쏘아 올린 공이었다. 봄에 전화를 받았는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 되도록 쿠키한테서 소식이 없다.
쿠키랑 린네가 어떻게 합방은 잘한 거야? 로맨틱한 분위기 만들어 줬어? 방해하고 막 그런 거 아니지?
한 번씩 전화해서 물어도 소식이 없다. 쿠키가 임신을 한 것도 같고 하지 않은 것도 같다며 워낙 말라서 잘 모르겠는데 배가 살짝 나온 것 같단다. 사람처럼 다달이 산부인과 가서 초음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기다리다 슬슬 잊고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새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침 일찍 충주 동생이 전화가 온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쿠키가 새벽에 기특하게 혼자서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단다.
크리스, 이브, 선물이에게 젖먹이는 쿠키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 같은 쿠키의 예쁜 새끼 고양이 출산소식이었다. 큰아들 크리스, 둘째 딸 이브, 막내딸 선물이 사진으로만 봐도 꼬물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언제 데려와야 하는지도 몰라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데 출산 소식 후 딱 한 달쯤 지났을까 충주 동생이 이브를 데려다주러 왔다. 직접 만든 이브 쿠션 침대랑 화장실, 사료 등등 또 한가득 싣고. 삼 형제 중에 가장 건강해 보이는 이브를 보내노라며 가장 이쁜 모습을 봐야 하니 일찍 데려왔단다. 이브가 떠나기 전 이브 엄마 쿠키가 마치 떠날 걸 알기라도 하듯 입으로 혀로 이브를 구석구석 핥아서 닦아주었다고 동영상까지 보여주는데 우리 이브 엄마 사랑 아주 듬뿍 받고 온몸으로 담아 왔구나 싶어 더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떨결에 나는 초보 집사가 되었다.
이브가 온다고 하니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돌돌이 밀대를 크기별로 방마다 구비하고, 청소포 밀대도 두 종류 더 샀다. 집에 사용하던 로봇 물걸레 청소기로는 부족해 가장 최신형 먼지와 물걸레 로봇 청소기를 샀다. 모터가 좋은 핸디형 청소기도 구비하고 아이들 뽈뽈 기어 다닐 때 잘 쓰다가 드림했던 스팀청소기도 최신형으로 다시 샀다. 우리 이브는 장모에 털 빠짐 끝판왕 페르시안이 아닌가!! 이제부터 이브와의 동거는 털과의 전쟁이야!! 이브도 나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야지!
이구역 멋쟁냥
도파민 중독된 이브 폰은 포기못해
이브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신생아랑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혼자 똥오줌을 싸고 처리하니 이건 정말 신기하다. '여기가 화장실이야~' 하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찌 쌀 자리를 잘 찾아가는지…. 내가 우리 이브는 천재라고 했더니 아들이 하버드에 보내란다. 우리 집에서 기대를 걸어볼 만한 애는 쟤밖에 없다며. 또 고양이는 사람보다 빨리 자란다. 1년 정도 되면 이미 성묘라니 사람의 20년이 고양이의 1년과 같은가 보다. 그러니 같이 보내는 아기 시절 1년이 더없이 소중하다. 충주 동생이 빨리 보라고 데려다준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 이브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이브는 종일 자는듯 하지만 종일 깨어있는듯 아주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우리 이브가 집에서 천둥번개소리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어지게 퍼질러서 꿈까지 꾸며 잤으면 좋겠다. 이브에게 우리가 우리집이 그런곳이면 좋겠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인스타에서 알고리즘을 타고 고양이 관련 콘텐츠들이 많이 보인다. 언젠가부터 가끔 보이는 반려동물 장례식 피드가 슬프다.
해피엔딩스토리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합니다.
사진 속 장례식장 벽에 쓰인 말이다. 먼저 간 반려동물들이 남겨진 주인들에게 하는 말인듯싶다. 그들의 켜켜이 쌓인 시간과 공유된 추억들 서로 교감한 감정의 농도를 알기에 피드 볼 때마다 눈물 콧물 질질이다. 그런데도 나는 감히 고양이 키우기를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그들이 툭 던지듯 내어주는 사랑에 거짓말처럼 받는 많은 위로와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특히 아들만 있는 집은 강력 추천이다. 여자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엄마의 이유 모를 짜증과 잔소리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들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