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에서 죽전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위해 오래되었지만 리모델링을 이쁘게 해 둔 아파트 1층으로 집을 얻었다. 우리 앞집은 영유아 가정 어린이집이었다. 맞벌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2010년 무렵 정부에서 보육료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덕분에 영유아를 키우는 가정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비 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어린이집도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원아가 늘어나고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거나 외벌이로 인해 소득이 적어 힘들어하던 주부들도 아이들을 맡기고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아침이면 둘째 아이를 둘러업고 큰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들어오다 자연스럽게 앞집 원장님과 마주치면 항상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사를 나누는데 이렇게 이야기한다.
ㅇㅇ엄마. ㅇㅇ이 왜 어린이집 안 보내요. 잠깐이라도 보내고 좀 쉬어요. 종일 보내기 뭐 하면 특강이라도 보내 보세요. 남자아이는 좀 일찍 보내는 게 좋아요. 요즘은 정부 지원금도 다 나오는데....
생각해 보겠다 하고 들어왔지만 듣자마자 마음이 요동쳤다. 체력이 막 좋은 편이 아닌 나는 사실 에너자이저 우리 아들 육아가 너무 힘들고 벅차던 차였고, 멀리 이사 온 터라 조력자도 친구도 없이 독박육아에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바로 다음 주 우리 ㅇㅇ이는 집 앞 새싹어린이집의 원생이 되었다. 두 아이를 모두 기관에 보내고 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스멀스멀 무료함과 뭔가 잉여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존재의 의미가 부정당하고 있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밀려온다. 어느샌가 인터넷 구직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나는 아마도 전생에 일만 하다 죽은 나인이던가 노비였나 보다. 내가 꼭 일하러 나가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꾸역꾸역 찾아내어 앞으로 2~3년 뒤면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학교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점심을 혼자 먹고 2시쯤 교육청 누리집 구인 페이지를 뒤적거렸다.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코디네이터를 뽑는 구인 글이 있었다. 서류제출 기한이 바로 오늘 오후 4시 반까지였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깊이 생각도 안 하고 30분 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를 준비했다. 서류를 제출하러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4시 교무실에 들어가 서류를 제출하고 막 나서는데 교무실에 하얀 흰 바지에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잔뜩 나름의 멋을 부린 누가 봐도 시골에 키작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급히 들어오더니 서류들을 건네받아 급히 검토했다. 근무하던 교무보조 선생님이 이분도 서류 제출하러 오셨다고 나를 소개했다. 내 서류를 보면서 몇 마디 질문을 던졌다. 월요일부터 일 할 수 있냐고 대뜸 물었다. 나는 당장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전화로 방과 후 부장님을 호출하더니 나를 월요일부터 근무하기로 한 방과 후 코디 선생님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면접과 취업이었다. 뭔가에 홀린 듯했고, 기분이 좋기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한테 전화했다.
여보 나 취업했어. 집 근처 초등학교에 월요일부터 일하기로 했는데 사실 정말로 된 건지 헷갈리는 게 여기는 면접을 경비아저씨가 보네~ 일단 월요일 출근해 봐야 알겠어. 하여튼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나는 정말 경비아저씨인 줄 알았다. 월요일에 출근해서야 나는 면접을 보신 분이 6학년 아이들과 경주 수학여행을 막 다녀오는 길인 교감 선생님이었음을 알았다.
교감 선생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유머러스하고 원리원칙보다는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부 행사를 따라 나가실 때는 흰 바지에 빽 구두 또는 청바지로 한껏 멋을 부리고 구수한 사투리와 트로트 노래를 즐겨 부른다. 새벽마다 가락시장에서 장을 봐서 막내며느리지만 시어머님을 모시는 아내와 함께 사는 노모를 위해 아침상을 손수 차려드리고 오는 효자이고, 출근해서는 오늘 아침에는 두부를 사서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왔고, 어제는 감자와 돼지등뼈를 우려 감자탕을 준비하고 왔다며 매일 그날의 메뉴를 알려주곤 했다. 반주를 즐기고 음주와 가무에 능하신 정 많고 독특하신 분이었다. 직원들이 조퇴나 결근등의 복무를 올리고 인사하러 오면 이유를 듣지도 않고 손짓으로 가라고 하신다. 이유는 집에 일이 있어서 온 마음이 집에 있는데 아그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느냐이다. 일반적인 관리자 마인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교감선생님 덕분? 때문이었는지 당시 내가 근무하던 초등학교는 여러모로 좋은 실적을 내고 교직원 관계도 나름 좋아 대부분의 교직원이 우리 학교로 아이들을 전학시켜 출근과 육아를 같이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어 편히 근무할 수 있었다.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로 채용되었는데 교감선생님이 자꾸 이것저것 시킨다. 학교의 나이스, 에듀파인 등의 시스템도 배우란다. 그러면서 방과후 업무 뿐아니라 일반적인 교무행정업무지원일을 하나둘씩 떠넘긴다. ‘저놈의 영감탱이 곰 탈을 쓴 여우였구나!’ 매일 저녁 남편에게 교감 선생님을 흉을 봤던 것 같다. 그로부터 1년 뒤 경기도 모든 학교에 정규 실무직 제도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나는 모든 시스템을 배워둔 덕분에 교감 선생님 추천으로 자연스럽게 실무사로 채용될 수 있었다.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과 또다른 교무실무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근무를 했다.
교무실무사님 또한 만만치 않게 독특한 분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한참 많았는데 아직 올드미스였고, 항상 아이러니하게 초긍정이지만 투덜이였다. 당시 내 주위에선 처음 보는 채식주의자이었고, 살이 찐다며 점심 급식은 안 먹었는데 술을 좋아해서 빼빼 마르진 않았다. 가끔은 미니스커트에 숫자와 알파벳이 써진 망사 쫄바지를 입고 학교에 출근하는 개성 있는 패션 감각도 보였다. 항상 병약해보이는 나와는 달리 으쌰으쌰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본인은 똑 부러지게 일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격이 조금 급해서 허점이 가끔 보이고 귀엽다. 무엇보다 나를 많이 도와주고 좋아해 주는 의리파이지만 행동이 앞서서 가끔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 실무사님이었다. 언제나 내편이었다. 독신주의자였지만 마흔 넘어 와인과 야구를 좋아하는 영혼의 단짝을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모든걸 지켜봤다. 출산 이틀전까지 야구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을 하고, 육아도 주로 야구장에서 한듯하여 아이가 뽀로로보다는 야구중계를 더 좋아했다. 지금은 나에게 언니같은 사람이다.
하여튼 내 기준에 독특한 두 분과 교무실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알게된 사실인데 우리 셋 모두 혈액형이 AB형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나도 독특했을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쓰면서 생각하니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내 주위 모든 AB형은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정 많고 개성 있는 AB형들. 요즘은 혈액형보다는 성격의 유형을 검사하는 MBTI가 인기란다. 내 주변 AB형이었던 그들의 MBTI도 궁금하다. 참고로 나는 엔프제(ENFJ)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추억 속 AB형 지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특별히 기억나는 지인이 있다면 부디 댓글로 남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