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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Nov 23. 2020

이상한 졸업식

2. 당연하던 날들이 끝난 뒤(1)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의 졸업식을 겪는다.

나의 첫 졸업식은 어린이집 졸업식이었는데, 졸업식 사진은 있지만 졸업식 당일의 장면은 전혀 기억에 없다. 어린이집에 대한 기억 전반은 거의 사라져서 없지만 유일하게 엄마와의 분리가 두려워 울어 젖히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나의 두 번째 졸업식은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는데 당시 한창 사춘기이던 나는 난생처음 겪는 집단 이별에 대한 감수성이 유별나 졸업식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까운 사람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울어댄 통에 졸업식 사진 속 나는 전부 눈이 벌겋고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있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알 수 없다.

그때는 육 학년 삼반과 담임선생님과 정이 심하게 들고 반장으로서 그들에 대해 지닌 애착이 남달라 그렇게 울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울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걸 보면 혹 나는 이미 부모님이 헤어질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 없이 치른 중학교 졸업식이 초등학교 졸업식보다 훨씬 우울하고 슬펐어야 했는데, 졸업식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그럴 틈이 없었다.

큰엄마, 작은엄마, 아빠, 동생, 할머니가 찾아온 졸업식. 단발머리에 키가 큰 나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들러붙어 사진을 찍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친척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는 일이 의아하고 경황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졸업식이 슬프지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그들과 밥을 먹고 헤어져 돌아오던 길이었던가. 할머니와 동생, 나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차가 그만 수북이 쌓인 눈길을 오르다 무언가에 걸려 멈춰 선 일이 있었다. 우리 집은 밤동산이라고 불리던 언덕 위에 있었기에 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졸업식날 눈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결국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차를 뒤에서 몇 번을 밀고 눈을 조금 치운 뒤에야 움직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과 대학교 졸업식을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식에 대한 기억은 이상하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대학교 졸업식 때도 많은 사람들이 졸업을 축하해주러 왔던 기억이 난다. 주로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절친 등 대여섯 명이 축하를 해주러 왔고 아버지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던 기억. 무엇을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쩐지 다복한 분위기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시즌도 아닌데 갑자기 새벽예배를 드리던 중 졸업식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수많은 천사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성서에는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얼마나 살뜰히 생각하시고 돌보길 원하시는지에 대한 말씀이 많다.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신명기 10:18)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시기도 하는데,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를 고아로 여겨왔던 나지만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늘 내 곁에 엄마를 대신하여 나를 돌보아주고 도와줄 사람들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한다.

물론 그들이 결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동시에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기억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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