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ng Juha Dec 10. 2020

아빠나 엄마이기 이전의, 당신

2. 당연하던 날들이 끝난 뒤(2)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는 날 때부터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태어나기를 어머니로 태어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니깐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부성애와 모성애 또한 모든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사랑의 형태라고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애정은커녕 심하게 야박한 부모의 태도에 곧잘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화가 기억난다. 철이 빨리 들어, 그들이 나를 무한정, 조건 없이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님을 그때 이미 깨달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당시의 나는, 난생처음 학교에서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있는 수련관으로 2박 3일의 수련회를 갔는데, 남녀 가리지 않고 어찌나 단체 기압을 많이 주던지 '엎드려뻗쳐'와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던 기억밖에 없는 끔찍한 수련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교육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기에 그런 수련회 기획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순전히 군부독재의 잔재처럼 느껴지는 권위주의적 수련 방식이 아닌가. )

수련회를 마친 뒤 집에 오는 길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 같은 근육통에 시달렸고, 심지어 걸을 때마다 골반에서 연골이 어긋나 부딪히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내 몸은 녹초가 되었고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마친 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달까. 정말이지 난생처음 겪은 죽도록 힘든 수련회였다.

그런 수련회를 마치고 온 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부엌에서 한창 설거지 중인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엄마가 무척 반가웠고 고생으로 인한 서러움이 밀려와 힘겹게 "엄마, 나 왔어. (나 좀 봐. 나 진짜 고생했어. 엄마.)"라고 말했다. 그때 엄마는 마치 수련회가 아닌 그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대하듯 "어, 왔니?"하고 잠깐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그 뒤에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현관에 서서 엉엉 울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부분에 있어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서럽게 울었고 엄마는 우는 내 모습에 놀라 당황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조금은 의아하지만 엄마는 2박 3일 만에 만난 딸을 어떻게 그렇게 시크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이년 뒤 엄마가 이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엄마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십사 년간 유지해온 엄마나 아내로서의 역할이 그녀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던 걸까, 하고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역할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나의 부모가 그 역할로부터 도망치거나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역할을 아주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런 부모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아빠나 엄마이기 이전에 어쩌면 자기 자신 한 사람을 온전히 건사하기도 힘겨웠을 연약한 당신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은 곧 서른 즈음에 발견한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부재, 그 속에서 발견한 예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