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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Apr 10. 2021

비움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소비를 멈추고 적게 소유할 수 있을까.

서른일곱. 이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소비의 공허함'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이 나이쯤 되면 적어도, (비혼으로 산다할지라도) 최소 20평대 아파트에서 살아갈 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복층형 원룸에 살아가고 있다. 말이 복층이지 사실상 다락에 가까운 2층에서는 잠만 잘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임대지만, 사실 나는 정부의 기준에 의하면 (다소 의아하게도) 1 주택자이다. 2018년에 은행 대출을 잔뜩 끼고 산 수익형 원룸 오피스텔이 하나 있는데, 스스로를 1 주택자라고 보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다. 5평 정도의 소형 원룸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과연 집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매월 대출 이자를 내면 실제로 수익형 오피스텔을 통해 손에 잡히는 수익은 미미하다. 위드 코로나 시대이므로 이마저도 감지덕지지만, 앞으로 내야 할 세금들을 생각하면 과연 그 미미한 수익이 얼마나 남을 지도 미지수다.


지금 나는 내가 소유한 원룸 오피스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글을 쓰는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무주택자'라고 생각한다.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무주택자로, 작은 중고차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경제적 수준으로 살아간다는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던 건 아닌데,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을 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사실상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을 냈고 그 결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기여해왔다. '빈익빈 부익부'를 강화하는 나의 소비패턴은 정확히 나를 부하게 하는 대신, 점차 빈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이 사실을 30대에 들어서기 전에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벌써 7년이 지났다.




어떻게 해야 이 시스템을 공고하게 만드는 소비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내가 내린 답은 '재활용'과 '중고상품'이다. 이 두 가지 답은 너무 뻔해 보이지만, 이 두 가지를 실천하지 못해 왔던 이유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소비=나다움'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삶. 특정 나이가 되면 최소한 어떤 가격 이상의 브랜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편견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심지어 내일이면 불필요해질 물건들을) 소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결심하기로 한다. 돈, 주식, 부동산, 차, 생필품 및 소모품 외에는 절대로(라고는 단정 짓기 어렵지만) 사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사지 말기로 결심한 목록들은 다음과 같다.


- 책 : 나는 정말 책을 많이 사는 장서가이다.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모으는 속도가 더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기 시작했고, 이로써 책을 사는 빈도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책들이 쌓여가는 동안 나는 책을 되팔지는 못했고, 그 결과 나의 작은 집은 점점 지저분해지고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꼭 필요한 20권 정도만 남기고 책을 팔거나 나누어주기로 말이다.


- 옷 : 나는 옷을 정말 잘 못 버리면서도 새 옷을 사는 걸 좋아했다. 외모에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옷이라도 잘 입어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그게 얼마나 덧없는 소비들을 부추겼는지, 1~2년밖에 입지 못할 저품질의 옷들을 사들이게 만들었는지를 깨달았고, 이제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재질의 옷이 아니면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갖고 있는 옷들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옷을 줄이고 차라리 스타일러를 들여서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아니, 스타일러는 지금 당장은 사지 않을 것이다.)


- 문구류 : 집에 여러모로 선물 받거나 스스로 구입한 수첩과 노트가 수두룩하고, 언제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펜들이 가득하다. 이게 과연 내게 다 필요한 것인가. 이걸 다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이 또한 되팔거나 나눌 예정이다.


- 굿즈들 : 스타벅스 텀블러를 비롯해 온갖 굿즈들. 많이 버렸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많은 듯하다. 그중에서 내가 사용하는 비율은 아마도 5~10%에 불과할 것이다. 다 찬장에 모셔두고 있다. (아, 나는 알라딘 등에서 책을 살 때 굿즈를 선택한 적이 거의 없음에도, 어째서 굿즈가 이토록 많은 걸까.)


정리하자면 이 정도의 목록들.




비움의 삶에 가까워 지기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일들 중 하나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사지 않고 빌려 쓰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요 며칠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천천히, 꾸준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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