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ng Juha May 19. 2021

쉼표, 그리고 쉼표, 그리고 언젠간 마침표

천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삶에 대해

의욕적으로 살아가다가 한 번씩 의지가 크게 꺾이는 경우가 있다. 작년 7월부터 주기적으로 아프다가 요 근래 두어 달 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엊그제 저녁에 다시 경미하게 체했고, 체한 수준은 경미했지만 이러한 잔병으로 온몸이 무력해졌고 아주 날카로운 두통을 겪어야 했기에 정말이지 괴로웠다. 어제 기력을 조금 회복해서 다행히 출근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몇 달 만에 본죽에 오더를 넣었고 세 개로 소분된 죽 중 하나를 먹다가 그나마도 먹기가 힘에 겨워 남겨야 했다. (체했을 땐 허기가 느껴지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죽을 먹는 일도 정말이지 힘이 든다.) 정말이지 저녁에 있는 인디자인 수업을 빠지고 싶었지만, 결석 시 여러모로 불이익이 있으므로 간신히 힘겨운 몸을 이끌고 수업에 참석했다. 그나마 수업에 불참해야 할 만큼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다.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남들이 보면 그저 체했을 뿐인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하긴, 돌이켜보면 힘이 들 법도 하다. 몇 년간 꾸준히 운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7월부터 보름에 한 번씩 체했으니 9개월 동안, 그러니깐 약 270일 동안 나는 못해도 최소 10번에서 18번 정도를 체해서 앓아누웠었다고 볼 수 있다. 정말이지 지겹도록 끔찍하게 반복되어온 패턴이다. 이렇게 자주 아픈 원인을 찾으려고 몇 달 전 위내시경도 해보았지만 원인은 위에 있지 않다. 아무래도 조만간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봐야겠지만, 어쨌든 까다롭고 관리하기 힘든 내 몸을 어찌해야 할까. 


더 큰 문제는 이런 몸상태로 인해 자꾸만 죽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문득 예기 치도 못하게 이렇게 아프게 되면, 나는 삶에 대한 의욕과 의지를 통째로 잃는 기분이 든다. 사람은 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에 현재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나 아플 때면, 아파서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면, 미래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좋은 일들보다는 갖가지 질병에 노출될 위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까스로 지켜왔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다. '지쳤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멈추고 싶다.'라는 생각의 사이클이 내 머릿속에서 풀가동된다. 그러나 모두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모든 걸 멈추고 싶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의지적으로) 말한다. 


'이건 진짜 너의 생각이 아니야. 네가 지금 잠시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네 인생이 전부 뭐 같았고 힘들었었다고 착각하는 거야. 몸이 회복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다시 몸이 회복되면 내 삶이 다시 지속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잘 굴러가게 되는 걸까.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맞게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이미 여러 번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가봤기에, 지친다고 해서 중간에 놓아버리거나 멈추는 게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멈출 수가 없다. 긍정적인 사람이라, 인내와 끈기와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이라 계속하는 게 아니라, 멈췄을 때 벌어질 일들을 잘 알기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실은 고백하자면, 그렇다. 



삶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며칠 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봤는데, 비비안의 대단한 작품들이 그녀의 사후에 공개되어 찬사를 받았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그녀의 삶이 퍽이나 슬프게 느껴졌다. 비비안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았다. 자신의 가난을,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이 없는 외로운 처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았다. 그래서 베이비시터로 평생을 살며 남들이 모르게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사진을 찍었고 그걸 세상에 공개하지도 않은 채로 죽었다. 어떻게 살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는 것. 그리고 정작 죽은 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그게 심지어 비비안처럼 명성을 얻는 일일지언정, 죽은 이의 행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 죽은 이는 그저 죽은 이일 뿐이라는 점. 그런 게 나를 슬프게 했다.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는 이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죽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순 없을까.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막대한 부나 명예, 세상적인 성공은 아닌 것 같다.


- 좋은 친구들, 좋은 반려자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

-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자주 보고 누리는 것

- 맛있는 것을 자주 먹는 것

- 건강을 위한 취미를 갖는 것 


이런 것들을 위해 지금의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건 무엇일까. 일단은 지금의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을 하나, 둘씩 정리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비움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